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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영 Nov 11. 2024

배낭은 동키로 보내기로 했다2

23.09.21 에스테아 – 로스아르코스


  그러나 나는 작은 쥬스 병에 와인을 반 병 담아 갔다. 막 담근 신선한 와인 맛이었다. 숙성되기 전. 길 위라서 그랬는지, 그 신선함이 너무 맛있었다. 순례길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한참 되었는데, 가끔 그 와인이, 길이 생각나면 이라체 와인 CCTV를 본다. 이곳은 실시간 CCTV를 제공한다. 내가 볼 때면 시차 때문에 한 밤이거나 한 낮이라 순례객 한 명 보질 못했다. 참, 이곳에서는 와인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와인과 함께 물도 제공한다. 여기서 조금......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와인 한 모금만 더...!!


  다시 걸었다. 와인이 있어서 인지 기분이 가벼웠다. 걷다가 하늘 보고 걷다가 들판을 보고 걷다가 누군가 남겨놓은 돌을 모아 만든 화살표를 보고. 그때 마다 담아온 와인을 한 모금씩 마셨다. 내 걸음이 느린 건지 빠른 건지, 길 위에는 나 밖에 없었다. 내가 늦은 건가 생각이 들 때면 한두 명씩 뒤에서 나타나 나를 앞질렀다. 이때까지는 내가 빠른 건가 느린 건가 생각했던 것 같다. 날이 조금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오니, 아르체 와인에서 만났던 부부를 다시 만났다. 이들과도 순례길 내내 정겨운 동행이 되었고, 서울 와서도 다시 만나는 좋은 인연이 되었다.


  내가 혼자 있어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장보러 시옷샘과 함께 나왔다. 시옷샘은 어반스케치를 취미로 하고 있었고, 이 길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슈퍼로 가기 전에 잠깐 성당 구경도 하고 선생님의 그림 이야기도 듣고 좋았다. 슈퍼에서 냉동 빠에야와 고기 등 이것저것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음식을 만들어서 해 먹는 저녁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아저씨가 내가 만든 빠에야가 아주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두 분은 술을 잘 못하셔서 아르체에서 담아온 와인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식사주 삼아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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