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 푸엔테레이나 – 에스테아
이 마을에는 한국인이 살고 있다. 스페인 사람과 결혼했다는 그는 알베르게 겸 바르를 운영한다. 내가 걸음이 느려서일까, 길에서 기역언니와 지읒씨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또르띠아와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아아! 그리고 샐러드도 하나 주문했다. 스페인에서는 푸릇한 채소가 곁들여진 상큼한 샐러드를 먹기 힘들었다. 또르띠아와 샐러드 그리고 아아가 같이 있는 이 식탁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아 한 잔이 너무 소중해서 천천히 얼음이 녹을 때까지 아껴 마셨다.
그리고 다시 길 위.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각자 속도로 걸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결국 멀어지게 되는 길이지만 누구하나 아쉬워 하거나 시샘하지 않았다. 우리는 길 위에 있고 곧 다시 만날 것이니까. 도착지인 에스테아에 들어섰다. 이번에 숙소는 처음으로 여성전용 룸을 예약했다. 앞서 혼숙인 곳에서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 한 번 예약해 본 것이었다. 짐을 풀고 공용 거실과 주방을 둘러보는데, 아뿔싸. 푸엔테에서 만났던 대만인 아저씨를 만났다. 그도 이곳이 숙소라고 했다. 같이 저녁을 먹을거냐고 묻기에, 나는 주방에서 해 먹을 것이라고 좋게 인사하고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서로 교류될만한 접점이 없다보니 굳이 같이 저녁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들은 한동안 길에서 종종 만났다.
주방에서 저녁을 해 먹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이렇다하게 할 줄 아는 음식이 없다. 레시피 찾아보고 하면 만들수야 있지만 타국에서 뭘 찾아보고 만들랴. 게다가 하루 걷기에 지쳐 무엇을 만들어서 해 먹어야 겠다는 의욕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슈퍼에 가서 복숭아와 포도, 과일을 한가득 사왔다. 그리고 저녁으로 혼자 과일파티를 했다. 참 이상했다. 서울에서는 과일을 잘 먹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과일만 땡겼다. 몇 년 전 크게 아팠을 때도 그랬다. 회복기를 지나며 입에 먹히는 것은 과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과일은 나를 살리는 음식인가보다.
저녁을 먹고도 아직 해가지지 않아서 근처 성당을 둘러보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다. 숙소 앞에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광장이 있었다. 노란 불빛의 가로등이 켜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하늘이 어둑어둑 짙어질 때까지. 벤치 앉아 해지는 저녁을 즐겼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