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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영 Nov 05. 2024

대략 7시 넘어 숙소를 나왔다1

23.09.20. 푸엔테레이나 – 에스테아


  대략 7시 넘어 숙소를 나왔다. 짙은 새벽이었다. 전날 만났던 대만, 홍콩인 순례객을 또 만나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길을 나섰던 마음도 있었다. 아직은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서 좋기 보다는, 사람을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는 이들을 굳이 계속 만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을 피하는 마음을 머금은 채 하루를 시작했다.


  길은 끝도 없는 들판이었다. 포도밭을 지나고 마을도 지나며 계속 걸었다. 햇볕은 내내 뜨거웠고 들판인 길에서도 지나가는 작은 마을에서도 앉아서 쉴 곳을 찾지 못했다. 걷고 걷기만 했다. 그러다 숲길로 들어서는 초입, 사람들이 둘셋 모여 있는 것이 앞에 보였다. 무엇인가 궁금해하며 다가가니 도네이션 간이 매점이었다. 길가에 세워진 간이 매점에는 과일과 간단한 과자, 음료 등이 있었다. 서서 먹어야 하면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등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거기에는 올리브나무 아래로 테이블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아싸. 나는 우선 1인이 쉴 수 있는 작은 의자 하나를 맡아두고 다시 간이 매점으로 왔다.


  과자는 먹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참크래커, 새우깡 등 과자를 종종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상하게 이 길에서는 과자가 먹고 싶지 않았다. 사과 하나를 사 들고 자리로 갔다. 거기서는 등산화도 잠시 벗었다. 솔바람이 젖은 발을 간지럽혔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참에 아는 이들이 등장했다. 미음씨와 기역언니였다. 지읒씨도 있었던 것 같다. 여튼,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먼저 일어섰다.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또 걸었다. 여전히 해는 높고 앉을 자리 하나 없는 길이었다. 고되고 지칠쯤 무인 도네이션 매점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조금 더 걸아야지, 걸어야지 걸음을 재촉했다. 왜냐하면 곧 지나갈 마을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에는 아이스 커피가 거의 없다. 카페 콘라체. 라떼와 같은 커피를 이들은 자주 마셨다. 따뜻한 라떼 같은? 나는 아아파이다.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 아니고서는 아아를 마신다. 그러니 이상 고온으로 한여름 무더위인 스페인 순례길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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