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2. 로스아르코스-비아나
늘 7시 전후로 알베르게를 나왔다. 이날은 유난히 밤하늘에 별이 많았다. 도시에서 자라나 친가외가 시골이 없어서, 도시 밖에 경험해본 적 없는 나는, 이렇게 많은 별은 매번 새롭다. 별이 많은 새벽은 걷다가 고개를 들면 아직 짙은 새벽이고, 뒤를 돌아보면 서서히 밝아지는 아침이다. 해가 언제 뜨나 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쯤 걷다보면 금세 해가 다 떴다. 그리고 아침이다, 할 쯤이면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이 날부터는 지나가는 마을마다 성당이 있으면 잠깐 들려 기도를 하고 다녔다.
어쨌든 걷기. 배낭도 메고 발걸음 가볍게 걸을 수 있었던 건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마다 흥흥 콧노래도 중얼거리며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볕은 강했다. 챙이 넓은 모자로도 부족했다. 선그라스를 썼다가 벗었다가. 나는 아직 선그라스가 익숙하지 않아서 햇볕에서는 쓰다가 그늘이 많이 진 곳에서는 벗었다. 그러다보니 선그라스가 애물단지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 그늘 한 켠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어제 미사에서 본 사람이었다.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려는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네 거 아니야?’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내 선그라스였다. 앗! 맞아. 내 선그라스야! 언제 떨어뜨렸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어제 네가 쓰고 지나가는 걸 봤어. 길에서 만날 것 같아서 주웠어. 너무 고마웠다. 그로부터 며칠 우리는 길에서, 성당에서 만났다. 나는 그녀를 나만의 별명으로 ‘선글라스 천사’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