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elle Riyoung Han May 28. 2017

파리의 이방인, 한국의 국외 거주자의 모놀로그

파리(Paris) 일상, 2017년 5월..


얼마만인가, 이게.
블로그 뿐만이 아니라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의무적으로 라도 글을 올려야 했던 '브런치'에도 

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럴 만큼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는게 핑계이긴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프로페셔널이 되지 못하는 

나를 확인하며 한동안 깊은 한숨만 쉬다 오늘은 모처럼 만에 마음 잡고 일상 블로깅.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체질이라며 오랜 시간동안 아침형 인간의 생활 패턴은 포기하고 살았었는데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지 한달이 되어간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졸음을 깨워줄 에스프레소와 쿠키나 비스킷 몇조각의 단것들을 찾게 되는데 
얼마전 부턴 오랜 동안 먹지 않았던 누텔라와 버터를 가득 바른 브리오슈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 프랑스 생활을 시작하던 때, 부르고뉴 대학 부속의 국제 학생 Residence에서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텔라와 버터, 그 열량 높은 두가지를 바르지 않아도 충분히 달달했던 브리오슈.
요리하기 싫어했던 유학 생활 초기에 한참을 먹던 것들이었는데, 살찌기 전에 얼른 끊어야지.



내 삶속에,  인생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견디고, 버티고, 지나왔을까 싶다.
상황이 좋을 때나 평안할 때엔 나는 줄곧, 하나님은 뒷전인 채로 내 의지와 계획대로 살았었고
인생의 주기적인 시기처럼 찾아 들던 고비이든, 고난이든, 예고치 못한 삶의 상황에서 당황할때면 
어찌할바 모른채 하나님께로 숨어 버리곤 했다.
아침에 눈뜨면 기도하고, 하루를 살다 문득 마음이 아려오면 다시 기도하고,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고 현관문을 열고 돌아 오면 마음이 무너지듯 기도에 매어달리다 잠이 드는 요즘.
힘든 시기 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할때, 언제나 내가 가장 단단했고 강했더라는걸 기억하며 잘 지나가고 있다. 



혼자 먹는 점심.
페타 치즈를 넣은 살라드와 올리브 오일과 검은깨와 참깨만을 뿌린 뇨끼.
복잡한 조리 과정 없이 먹을수 있는 아삭아삭 살라드는 언제나 나의 가장 페이보릿 메뉴.
얼마전 누군가가 내게 무얼 제일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채식주의자' 라고 했더니 영국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두 유형 중의 
한 유형이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했었다. 채식주의자 만큼 속을 알수 없는 인물이 없다고.
채식주의자가 왜?...?
나 자신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서도 표리부동한 모습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라 

경계할 만한게 내겐 전혀 없는데.




프렌치 토스트를 구웠다.
미국에서 지내던 때가 떠올랐다. 
켈리포니아의 산호세에서 지내던  그 시기, 매일 아침 마다 프렌치 토스트를 구워서 혼자 식사를 했더랬지.
두달에 한번 격으로 만난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했던 날에도 프렌치 토스트나 팬케이크 만을 주문 했더랬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프렌치 토스트를 굽는 날에는 
켈리포니아에서 지내던 산호세의 아침이 떠오른다. 
버터가 푸라이팬에 지글거리며 녹아 내릴 때 풍겨나던 향과 함께 느껴지던 

그 시기의 짙은 쓸쓸함과 외로움도.
후각과 청각, 시각이 모두 버무려진 그 짙은 감각적 기억으로 인해서인지 
프렌치 토스트는 '외로운 식사'로 각인이 되어 버린듯 하다. 



혼자 있으면 참 먹는데 무신경하다.
밥도 먹기 싫고 빵도 먹기 싫지만 어느날 그가 장을 보아준것들 속에 끼어있던 연어 4조각 중에서 

한 조각만을 꺼내고 나머지 3조각은 모두 냉동실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그날의 점심으로 먹을 연어 한조각을 굽는 후라이팬에 감자와 아스파라거스를 넣고 

함께 구웠더랬다.
양념도 소스도 귀찮아 노르망디 여행중에 사왔던 천일염과 허브향이 짙은 오리겅만 조금씩 뿌려 

간을 하고서.
이렇게 간단하고 쉽게 먹는 것도 내겐 전혀 나쁘지 않은데..



늘 나 자신에게 못마땅하고 이것 만큼 되질 못하는것 같아 아픈 시기를 맞을 때가 있어도
뒤돌아 보면 꾸준하게 걸어오고 성장해 왔다는건 부인하지 않기로 하자.
처음 프랑스 생활을 시작했던 10여년전, 그때에 나는
'안녕..'이라는 인사 조차 프랑스어로 하기 어색해 하던 동양 여자 아이였다는 것.
프랑스어로 날아온 우편물도, 메일도 읽을줄 몰라 당황했었고 
휴대폰으로 주고 받는 프랑스어 문자도 보낼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는걸 기억하기로.
어쩌면 그 기억이 지금의 나에겐 도리어 도움이 될지도 모를테니까.

2017년 3월부터 다시 시작했던 프랑스어 공부.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모두가 의무적으로 매일 매일 돌아가며 한사람씩 자신의 주제로 30분동안 해야 하는 
Presentation을 하기 위해 혼자 원고를 쓰고 짧지 않은 그 문장들을 기억해 Presentation을 해냈다는것 만으로도 내게는 발전이라고도 할수 있는 거니까.
여전히 나는 더디겠지만 꾸준하게 걸어갈테고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나 자신을 너무 몰아치지 않기로.



빨강.. 그리고 파랑..
영화가 상영 되기를 기다리던 극장안에 붙여져 있던 원색의 포스터들을 보며 생각해봤다.
원색의 옷을 입고 길을 나선다면? 내겐 그 일이 가능할까?
아... 생각하기 싫다, 지금의 성향과 어두움을 밀어내기 위한 처방이 될수 있는 거라고 해도.
그냥 모노 톤의 내가 좋다는 고집으로, 시도 하지 않겠다며 마음을 접는다.



파리 국립 발레 오페라단의 무대 뒤를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영화 '오페라'를 보러갔었었다.
프랑스 생활을 하고 난 이래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던 적은 그날이 처음.
상영 시간보다 30여분을 일찍 도착해 티켓을 끊고 영화관 주변을 산책했었다.
생제르망 데프레 지역에 주르륵 붙어 있는 영화관들 세곳.
영화관 이름은 일일히 기억 나지 않지만  파리의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필모 시네마' 앞을 잠시 서성였는데 
흑백 영화들이나 오래된 프랑스 영화들을 볼수 있는 이 영화관은 왠지 늘 쓸쓸한 느낌이다.
나만 그러나? 왜 그러지?
 




영화관 앞의 작은 골목길 천천히 걷기.
골목이 끝나는 지점엔 상업 지구로 이어지지만 그 길을 따라 나가지 않았던, 

지극히 단순하고 짧았던 그날의 동선.



슬프게... 왜 이런, 문패를 걸어두었을까..

ICI HABITA
UNE FEMME
DONT LE NOM M'ECHAPPE
이곳의 거주자, 한 여자
이름을 기억할수 없는




그날, 영화관을 끼고 있는 작은 골목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잿빛의 벽.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않았었는데 그 벽위에 붙은 노란 스티커 위의 작은 문패에 눈이 갔다.

ICI HABITA, UNE FEMME DONT LE NOM M'ECHAPPE
이곳의 거주자, 한 여자. 이름을 기억할수 없는




벽에 붙여 놓은 존재감.
파리 5구의 샴펠리옹 거리의 15번지 우편함.
벽이 지닌 차가운 느낌이 아파 한동안을 이곳에서 서성이고.



다르긴 해도 이것 역시 유리 타일이 붙은 또 다른 벽.
타일 하나하나에 그려진 낙서가 불안의 표출인것 마냥 위태롭게 느껴지던.




그 옆에 나란히 있던 같은 형태의 또 하나의 벽.
차라리 누군가의 흔적이 적은 상태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더 나은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문득 
이 유리 타일의 벽을 보며 했었다.
덜 위태해 보이고, 덜 쓸쓸해 보이기에.



그렇게 한동안을 벽 앞에서 서성이다 보니 벽과 같은 인생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던 순간.
생뚱맞은 느낌이기를 바라면서도 대체로 벽에 대한 발견은 그랬던 것 같다. 
확고한 존재감이 있는 지역에서 생성때 부터 정확한 캐릭터나 목적을 잡고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거리의 벽은 항상 지나가는 행인들에 의해 결정 되어졌고 그 느낌이 나에게는 언제나 

늘 불편하고 아프더라는.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지는 건지, 삶을 좀더 정확하게 직시하라는 내면의 소리들을 외면하다 

이제는 받아 들이고 있는건지 모르겠으나
기존의 내가 깨져가며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틀을 잡아 가는것 같다.



벽은 여전히
차.갑.고. 아.픈.
주체적이지 못하고 그럴 수도 없어 가혹하게 존재되는 대상.



답답한 마음에 올려다 본 하늘.
건물 사이에 가려진 골목길이라 하늘 풍경 대신 들어 온 창문을 보며
누군가의 공간이라는 경계 너머의 은밀한 꿈틀거림을 만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는 관음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랄까.
소통을 향한 소극적인 염원을 창문을 통해 느끼게 되는 .



20여분 동안 이 작은 골목 길을 작은 보폭으로, 여러갈래의 생각들로, 
걷다.. 멈추었다.. 생각했다.. 한숨지었다.. 아팠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필모 시네마테크 앞의 포스터 하나.
COMPEXES.
복잡한 그날의 내 마음을 집어내는 딱 하나의 단어, COMPLEXES.



화창하게 쏟아지던 햇살을 받으며 발레를 갔던 또 다른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댄스 에꼴.
파리에서 살아 가는 동안은 물론, 앞으로도 최소 5년 이상은 이곳에서 꾸준하게 발레 수업을 받을수 있기를 기원한다.
몇년도에 지어진 건축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19세기 이전의 건축물 이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
언제 한번 내가 다니고 있는 댄스 스투디오 건축물에 대한 기원을 찾아 봐야겠다.



발레 수업을 화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2번씩 듣고 있는데 
화요일엔 다니엘라 선생님의 수업을, 토요일엔 프레데릭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
스타일은 두 선생님이 참 다르지만 장점 또한 확연하게 틀려, 어느 한분도 놓치고 싶지가 않다. 



화요일이었던 이날은 수업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스투디오 전체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토요일 마다 프레데릭 선생님의 수업을 받는 베토벤 홀에선 여전히 프레데릭 선생님의 수업이 

진행중이었는데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귀에 익은 피아노 반주 소리와 프레데릭 선생님의 수업 진행 

목소리가 꼭 닫혀진 홀안에서 들려왔었다.



수업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정원에 앉아 햇살을 받고 계시던 다니엘라 선생님.
수업을 하는 건물의 다른 방향으로 들러가려 하자 수업은 그쪽이 아니라고 하시기에 
"이 건물에 먼저 들렸다가 늦지 않게 수업에 들어갈게요" 라며 베토벤 스투디오 쪽으로 올라왔었다.



창문 너머로 발레리노 제자와 이야기 하시던 다니엘라 선생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더니 

감지하시고는 싱긋 웃어 주신다.




"안녕, 오랜만이야"
나에게 건네는 인사.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 홀로 향하는 건물의 층계.
출입문 앞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데 댄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라면 연주해도 괜찮다.



화요일 정오가 되기 이전의 시각이라 군데군데 비워져 있던 댄스 스튜디오.
프레데릭 선생님과 다니엘라 선생님의 수업은 늘 커다란 홀에서 이루어지기에 
이런 작은 스튜디오에선 어떤 수업이 이루어질까 싶은 궁금함에 삐곰하게 들여다 보고.



건물 꼭대기 구석에 숨겨진듯 자리한 또다른 홀, 드뷔시.
"2017년 5월 26일의 11시 이전, 댄스 스투디오에서 나 이랬었어.." 라며, 

카메라 들고 거울 속에 흔적 새기기.


ㅁ자 모양의 건축물, 댄스 수투디오.
수업을 받다 보면 열려진 창문 너머로 정원안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맞은편 스투디오에서의 댄스 수업 풍경도 보게 된다.
그 느낌을 좋아 한다.



비어있는 스투디오 마다 들어서며 셀카 찍는데 재미들린 날.
재밌네... 재밌어..



발레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어서 댄스 스투디오 탐방은 여기까지만.
프레데릭 선생님의 수업이 끝나서 선생님과 마주치기 전에 얼른 다니엘라 선생님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살짝들었었는데, 나, 왜 이런 성격인지 모르겠다..
다니엘라 선생님 수업 듣는다고 프레데릭 선생님이 싫어하시는 것도 아닐텐데 혼자 찔려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일상, 다양한 일들과 만나며 6월의 일상에도 적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