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우어엉 소리 내며 운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눈두덩이는 물론 눈썹까지 벌건 빛이 번져있다.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눈가 곳곳에 눌러 붙었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제발 나 좀 안아주세요.’라고 말하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도 운다.
턱 밑에서부터 가는 선들을 타고 뜨뜻한 무언가가 찌릿하게 올라온다. 오후 내내 메말랐던 눈은 뜨거운 물들로 가득 차 그 양을 이겨내지 못하고 뚝뚝 떨어뜨린다. 아이 앞에서 울지 말라는데,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별 일은 아니었다. 늘 그랬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나에게는 두 아이가 동시에 찾아왔다. 간절하게 바래왔고, 그만큼 감사했다. 하지만 두 생명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감사함을 덮을 만큼의 육체적, 정신적인 힘듦이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귓가를 울리는 울음소리, 그리고 그 울음을 온전히 달래주지 못하는 사실에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한 아이의 울음을 간신히 달래 주면, 또 다른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두 아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동시에 우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기 때의 울음보다 한 차원 높은, 그 뭐라 할까. 맞다. 징징거림이 시작되었다. 자기 말을 먼저 들어달라고, 본인 것을 먼저 해 달라고, 자기만 봐 달라고.
몸이 힘든 건 견딜만했다. 하지만,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엄마의 온전한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이, 죄책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죄책감이 이상한 순간에 뾰족하게 나와버리고 만다. 조금만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신경이 곤두선다. 울음소리가 귀로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참으려고 애써도 힘듦이 이내 얼굴로 드러나 버린다.
이날도 그랬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둔 덕에 주말에는 늘 혼자서 아이들을 본다. 멀리 나가지 못하니 가는 곳이라고는 도서관과 서점이고, 그조차 하지 못하면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두 아이들과 나, 모두 지독한 감기가 찾아와 바깥에 나갈 수도 없는 날이었다. 책과 영어 DVD로 시간을 채운 오전까지는 괜찮았다. 점심 이후부터 지겹다, 심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징징거림이 시작된 것이다. 집에 보유한 각종 보드게임을 하면서도, 레고 만들기를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경을 찌르는 그 징징 소리를 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견뎠다. 아직 아이니까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웅얼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되뇌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순간, 갑자기 속이 쓰려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 밥 준비, 설거지, 빨래, 바닥청소로 시리얼바와 과자로 끼니를 때웠으며, 그 속에 감기약을 털어 넣었다는 것을 말이다.
저녁만은 밥 한 톨이라도 입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미역국 한 그릇 데워 식탁에 앉아 밥 한술 뜨려는데,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른다. 몸을 베베 꼬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분명히 뭔가 잘 되지 않아 칭얼거리려는 것이다. '아, 또 시작이구나. 이제 좀 쉬려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꾹꾹 눌러왔던 뾰족한 감정들이 바깥으로 사정없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이에게 또박또박 말해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화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바닥에 앉아 다리를 구르기 시작했다.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점점 더 귓가로 가까워졌다. 안될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에 넣었던 밥을 그릇에 다시 뱉어내었다. 밥이 말린 미역국을 그대로 설거지 통으로 가지고 가 쏟아버렸다. 맨손으로 수세미에 거품을 내어 그릇들을 박박 씻어냈다. 굳이 닦지 않아도 되는 수저통이며, 물컵들을 꺼내어 닦고 또 닦았다. 그렇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화라는 녀석을 거품으로, 물로, 안감힘을 써서 흘려보냈다.
눈물이 떨어졌다. 뚝. 뚝.
누가 보더라도 울 상황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휘몰아치는 이 감정이 이상했고 두려웠다. 불안정한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어두운 곳으로 사정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거품이 곳곳에 묻은 손으로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얼굴에서 연신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꽉 붙들자. 넌 어른이다. 넌 엄마다.
하루 종일 집에 두 아이들과 있느라 힘들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몸도 안 좋으니. 그래도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자. 아이의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해 하자.
숨을 크게 한 번 더 내쉬었다. 수도꼭지의 물을 잠그고 벌게진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눈물이 그득하다. 울음을 삼키며 두 손으로 내 다리를 꼭 쥐고 있다.
눈앞이 번쩍 했다. 아. 내가 지금 뭘 한 것인가. 이 아이에게 부족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구나.
엄마를 사랑하는 작은 아이일 뿐이고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 할 가르쳐야 할 엄마인데, 자격이나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왜 잘못 얽히기 시작한 걸까.
그날 밤.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한없이 밀려왔다.
태생이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다. 자존감도 낮다. 그래서 내 아이는 더 밝고 긍정적으로 키우려고 했다. 그만큼 육아서를 수 없이 읽어댔고, 아침저녁으로 감사일기를 썼다. 책 읽기와 글쓰기도 틈틈이 하고 있다. 나름의 시간을 쪼개어 아등바등 노력을 해 온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쌓여서 그나마 아이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의 예쁜 말과 행동을 글로 옮기다 보면,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내 마음에 더 크게 담을 수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 쓰자. 일단 쓰자.
내 감정, 그리고 아이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깊이 감사해하며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을 말이다.
아이들을 낳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의 순간들을 적어내 보자. 아이의 눈빛, 행동, 그때의 내 모습과 감정 모두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일단 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