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 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썼고, 같은 수만큼의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러던 중,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에서 서류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다음(DAUM) 사이트의 최업뽀개기 카페에 면접 준비용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모인 다섯 명의 면접 후보자들과(우리끼리는 예비 합격자 들이라 불렀다) 기출 질문과 영어 면접까지 연습했었다.
어중간했던 파마머리는 똑 단발로 잘랐으며, 땡그리 안경을 벗어던지고 난생처음 콘택트렌즈도 맞췄다. 물론, 정장과 구두까지 모두 새로 구입했다. '나'라는 사람에게 그토록 안팎으로 공들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날은 한 달간의, 아니, 본격적으로 취업을 시작한 1년 간의, 어쩌면 제대로 학업에 뛰어든 10여 년 간의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는 대망의 날이었던 것이다.
면접날 아침, 식탁 위에는 갓 구워진 생선과 브로콜리, 그리고 계란국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딸내미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소화 잘 되는 음식들로 정성껏 준비하셨을 테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간 내내 어느 누구도 그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수능 날 아침만큼이나 긴장감이 맴돌았다.
집 밖으로 나서는 길, 엄마와 동생의 하이파이브를 받고 활짝 웃기는 했지만, 덜덜 떨리는 입가는 감출 수가 없었다.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어째, 아빠 얼굴이 나보다 더 굳어있다.
경기도에 거주하기에, 서울로 나가는 고속국도를 타야 했다. 출근 시간 대라 예상 시간보다 약 한 시간 반 가량 일찍 나왔고, 나는 아빠의 강요에 밀려 소위 말하는 사장석에 앉았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아빠가 출근길에 늘 다니시던 길이었고 날씨도 화창했다. 하지만 서울로 넘어가는 중간 즈음, 갑자기 차의 시속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4차선 도로가 이내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아빠가 나를 힐끗 보시더니 '괜찮아, 이 길은 늘 밀려, 조금 있으면 풀릴 거야.'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손에 쥔 예상 질문들을 바라보고 중얼중얼 혼자 말하는 연습만 반복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면접 시작 40분 전인데, 아직도 제자리다. 이 상태로는 정상 속도로 가도 간신히 정시에 도착한다. 룸미러로 보이는 아빠의 눈썹이 한껏 가운데로 찌푸려져 갈매기가 내려앉은 듯하다. 이제는 괜찮다는 말씀도 안 하신다. (어쩌면 아무 말씀도 못하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분, 10분, 20분...
차의 평균 시속은 여전히 숫자 50 이하를 보이고 있었고, 아빠의 얼굴색은 이제 새하얘졌다. 내 손에 들린 예비 질문 용지는 어느새 절절하게 젖어있었다.
면접 시작 10분 전,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은 넓디넓은 코엑스, 주차장 입구가 한 개가 아니다. 북문, 서문 등 여러 개가 적혀있는데 면접 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인 지 도통 모르겠다. 아빠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단 내려, 그리고 그 앞에 안내 보이면 거기서 물어보고 가. 파이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에서 내려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인포메이션 글자가 하나 보인다. 회사 이름을 듣고 다행히 위치를 알려준다.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발에 맞지 않은 5센티 굽의 에나멜 구두가 자꾸만 뒤꿈치를 긁어댄다. 에스컬레이터도 두 칸씩, 아니, 세 칸 씩이었던 가. 아무튼 점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헉헉대며 도착한 면접 홀. 회사 푯말이 보인다. 시계를 보았다. 10시, 정각이다.
휴. 숨을 크게 고르고 치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흰색 셔츠를 안으로 쑤셔 넣었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은 손으로 쓱쓱 닦아내었다. 이곳이 진정 사우나로구나. 내 안의 모든 열기가 까만색 정장 안에 그득하게 담겨 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셔츠 밖으로 뜨끈한 김이 폴폴 뿜어졌다. 증기 목욕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자, 진정하자. 이곳은 면접장이다. 자신 있는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장착하고 세미나룸 안으로 들어갔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검은색 계열의 짙은 정장을 입고 앉아있는 수십 명의 후보자들이 보였다. '진행요원'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단 직원 분이 출석을 부르는 듯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 이름이 불렸다.
'OOO 님?'
'네!'
'3조로 오세요. 이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미소)'
한 조에 5명씩 꾸려졌고, 그곳에서 가장 첫번째 의자에 앉게 되었다. 면접 대기 중에도 평가가 되고 있다는 말을 유념하며 허리는 90도로 어깨는 슈퍼맨처럼 활짝 펴고 앉아있었다. 입가에 미소 장착은 뭐, 기본이었다.
그렇게 인성, 토론, 영어면접에 순서대로 임했고, 다음카페 취뽀(취업뽀개기)에서 만난 이들과 했던 연습량과는 반비례하게 버벅거렸다.
하지만 결론은. 합격. 이유가 뭐였을까. 운이었을까. 어쩌면 가장 앞 자리에 배정된 덕에 모든 면접실에 들어갈 때 마다 살면서 본인도 들어보지 못했던 가장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3조 입니다' 라고 외쳤는데, 그 덕분이었을까. 오로지 그 이유 때문 만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수십장의 자기소개서, 수백 번 거울 속 내 눈을 바라보며 목구멍이 마르도록 말했던 답변들, 이번에는 꼭 합격하겠다는 절실함이 똘똘 뭉쳐 낸 결과일 것이다.
날아갈듯 기뻤다. 온전한 내 힘으로 이룬 결과였다. 좀 식상한 표현이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그땐 정말 그랬다.
수천 개의 땀방울을 흘리며 도착한 이곳에서 진땀 나는 면접, 그리고 눈물나는 합격.
그렇게 나는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회사 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아빠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며 한 번씩 말씀하신다. 살면서 가장 긴장되는 날이었다고. 도착하고 나서 차에서 내려 몇 번 헛구역질까지 하셨다고.
그날 딸내미라는 사람은 면접에서 답할 것들을 외우느라 아빠가 그 정도로 힘드셨는지 몰랐다. 그저 찌푸린 눈썹과 약간 굳어진 얼굴만 기억할 뿐.
'아빠, 그날 아빠 덕분에 차에서 조금이나마 면접 연습을 더 할 수 있었어요. 내릴 때 파이팅이라고 외쳐주신 게 면접 내내 떠올랐어요. 아빠. 미안하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