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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애 Jul 12. 2022

깨어나라 ‘안느’

내 감정을 조롱당한 후로 나도 사람들의 감정을 조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일단 예쁘고 애교가 있어야 한다. 다 그런 걸 좋아하거든. 내가 우위를 차지하려면 그런 게 있어야 해. 그렇지만 나는 뭐 대단한 걸 타고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불리해도 너무 불리해. 그 사실을 어떻게 모르겠어. 블레어가 시시각으로 알려주는데.      


슬프게도 나의 숭고한 ‘앤’이 사망한 후 나의 행적을 함께 한 것은 ‘안나’였다. 얘는 또 누구냐고? 새로 나온 애다. 이제 다들 궁금할걸? 얘는 또 어디서 나왔나.     

그 유명한 대사를 아는가.      

“저는 e를 붙인 Anne이예요.”     

그렇다. 바로 전에 태어났던 숭고한 앤 친구의 소설 속의 대사이다. e자를 붙이면 더 고상하다고 느꼈던 빨강머리 친구 ‘앤’. 그 친구는 죽었지만 다른 친구가 나타났으니 바로 e자를 붙인 ‘앤’,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안느’이다. 우와, 이름도 우아하지? 그 e자 하나가 붙은 것으로 이 친구의 성격은 매우 달랐다. 얘는 솔직하다기보다는 좀 위선적이었다. 상처받았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안느가 태어난 목적인 듯했다. 안느는 무조건 사랑받고 싶어 했고 그것을 즐기고 싶어 했다.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아야 해. 블레어가 입을 닥치도록.     


나는 그 후 사랑받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 해. 그리고 그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아보렴.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많은 남자들을 만나봤다. 나는 모두의 주목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 내가 다 좋은 사람들인지 어떻게 알았겠어. 그냥 리젯이 활동했을 뿐이다. 사람들 속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여자가 나만 있었겠어. 어디든 다른 예쁜 여자들도 많았지. 그들은 매력덩어리였다. 내 모든 매력을 다 발휘하여 주목을 받아야 해. 더 이상 블레어가 설치는 꼴을 두고 보기는 싫어. 

     

전에 들어보니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매력과 차별점을 가져야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쪽으로 갈고닦는다던데 나도 비슷했다. 아마 블레어를 닥치게 하고 싶어서 더 그랬겠지. 그래서 그때는 나에게 고백했던 남자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대단하다. 안느. 모두를 속이다니. 이때부터는 내가 나쁜 년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모두에게 여지를 주었다. 그것이 안느의 특성이었으니까. 안느와 동동이는 돌아다니면서 함께 놀았고 블레어랑은 적게 어울렸다. 남의 칭송을 받거나 귀여움을 받으면 자존감이 올라가는 법이니까.     

자, 그래서 여기서 나의 두 번째 남자 친구가 나온다.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골랐던 것인데, 이번에는 죽고 없는 ‘앤’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 따위를 신경 쓸 필요 없어. 인간의 사랑에 그런 것이 존재하겠어?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다들 나에게 자신의 멋짐을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원래 수컷의 특징은 멋진 깃털을 쭉 펴고 빙그르르 돌면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아니면 싸워서 이기거나 그런 건가? 어쨌든 이번에 내가 고른 기준은 깃털이 멋진 순서는 아니었다. 나도 몰라. 기준이 뭐였는지. 안느는 앤과 달랐다. 숭고함도 목적도 없었다.  

   

한 사람과 사귀었었는데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놓고 나는 그냥 그것을 즐겼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내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싶었고 남들이랑 똑같이 보이고 싶었다. 나는 정상적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병자니까. 그렇지만 나의 두 번째 남자 친구는 그런 마음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야. 내가 이상하잖아.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헤어지자고 했다. 와. 내가 먼저 얘기했어. 대단하지?

참 대단도 하다. 


그리고 남자 친구, 아니 전 남친은 술 마시면 울고 전화하고 나는 그걸 또 받아주고 하면서 그 관계는 지지부진하게 계속되다가 끝났다. 안느는 깨달았다.     

‘아, 이것도 아니네.’

참 대단한 진리였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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