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두 번 가게 된 이유
“너는 나중에 우리가 없어도 전문직을 가져야 혼자서도 살 수 있어. 너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직장도 없으면 어떻게 하니.”
엄마는 외동딸인 나를 걱정하며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적성 검사에서 98퍼센트의 문과 성향을 보인 나를, 이과로 지원하셨더랬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과 성향이 분명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뭐, 이런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나는 수학을 못했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지 못하면 이과를 가는 것은 불리했다. 그때는 수학 1, 수학 2가 있었는데, 수학 1보다 더 어려운 수학 2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학 1도 못하는데, 수학 2는 어찌하리. 그런데도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반에 가야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문과에 체크하고 돌아온 날, 엄마는 내게 전문직을 가지려면 이과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나를 이과반으로 옮기셨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나에게 안 좋은 일을 하실 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고,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으리.’하며 도전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안 되는 일은 있었다. 나에게 안 되는 일이란 ‘재미가 없는 일’이다. ‘재미가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심어주신 것이다. 선물을 받지 않은 분야는 이해가 되지 않게 마련인데, 내게 수학이 그랬다. 처음에는 그냥 통째로 암기도 해보려고 했고 이해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입학시험 준비란 늘 시간에 쫓기는 것. 내가 이해를 할 시간은 없었다. 게다가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에 비싼 학원비나 과외비를 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나의 이 고충을 처음에는 이해를 잘 못하셨더랬다. 왜냐고? 우리 엄마는 수학 선생님이었으니까. 엄마에게는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쩔쩔매는 것을 보면 수학은 정말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깨달으면 진짜 재미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하도 고전을 하고 있으니 엄마는 없는 살림에 나를 위해 수학 과외선생님을 붙여주셨다. 선생님은 무척 좋은 분이셨지만 나의 이해력의 한계를 이겨내지는 못하셨다.
“신애야, 아직 모르겠니? 그래, 그럼, 이제 우체통에 편지를 넣지 말고 우체통을 한 번 뽑아보자.”
얼마나 답답했으면 선생님은 경우의 수를 가르치면서 우체통에 색색가지의 우편물을 넣는 것으로 이해를 못 하자 우체통을 뽑기까지 하셨다.
나의 깨달음은 고등학교 2학년 후반기에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쉬는 시간에 주변의 친구들이 공부를 하거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보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나는 포기를 했다.
중학교 때는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달랐다. 열심히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은 놀다가도 공부를 시작한다는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나는 내 인생 항로를 틀었다. 예측되듯이 나의 성적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지원하는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원하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은 의대를 가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싫었고 의대 갈 성적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심한 반항을 선택했다. 어차피 어디를 가도 망한 것, 나는 남자들 무더기 안으로 들어갔다. 공대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망했다.
공대에는 여학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각이나 결석에 대출도 불가능했다. 남자애들은 여자 목소리 흉내가 잘 안 되기도 했고, 교수님이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알아보셨다. 그것도 그런 것이 귀한 여학생이었으니까. 귀한 취급받는 건 좋은데, 전공 동아리에 들어가서 내용을 살펴보니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건 끝까지 버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시험을 봤고, 영어교육과로 지원하여 합격했다. 재능이 없는데 덤빈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크게 배웠다.
“남자애들은 이과계통을 가야 직업을 잘 가질 수 있어.”
이제는 내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은 그냥 봐도 나를 닮아서 이과계통의 아이가 아닌 듯싶다. 얘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너는 네가 알아서 살아라.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