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디터람스를 만날 때
애플의 디자인을 이끄는 조나단 아이브의 우상인 디터 람스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은 디터 람스가 함께했던 브랜드들과 주요 사례를 보면서 그의 디자인철학이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32년 5월 20일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난 디터 람스는 중대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자랐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그에 따른 국가 재건 및 경제 회복을 경험했으며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능적이고 미니멀하며 사용자 중심적인 디자인을 창조하려는 그의 노력에 유년시절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했던 유명한 디자인 철학이 있죠. 바로 'Less, but better(최소한, 하지만 더 나은)'입니다. 'Less, but better'은 단순함, 미니멀리즘의 기초하여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강조하는 디자인 철학입니다. 이는 현대 디자인을 단순한 행위가 아닌 태도로 바꿔준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림 1. 디터람스의 사진)
아마도 당신은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SNS에 핫한 공간에선 주로 그의 제품들을 인테리어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디터람스의 제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림 2. 디터람스가 만든 제품이 전시된 4050 디자인하우스)
혹시 여러분은 브라운(Braun)에 대해 아시나요? 현재는 미국의 질레트와 P&G 산하의 남성 면도기 브랜드로 유명한데요.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남성 면도기 브랜드 이미지와 달리, 과거 브라운은 '전기면도기, 핸드 블렌더, 커피 메이커, 음향기기 등' 거의 모든 소비자용 가전기기를 생산했습니다.
(그림 3. Braun의 남성면도기 제품들)
이 브라운과 디터람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 브라운의 황금기에 디터람스가 함께했기 때문이죠.
그는 1961년부터 1995년까지 브라운(Braun)에서 디자인 총괄로 일했고, 이 기간에 그와 그의 팀은 라디오, 레코드플레이어, 계산기, 가전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디터 람스가 만들었던 제품들은 여전히 사랑받을 정도로 제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요. 깔끔한 선, 단순한 형태, 사용 편의성에 중점을 둔 특징이 그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브라운의 제품은 집안 어느 곳에 두어도 미학을 헤치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외형뿐만 아니라 사용성, 기능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브라운의 제품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브랜드 가치를 제공합니다.
(그림 4. 왼쪽 브라운 로고, 오른쪽 Braun의 첫 번째 디자인 책임자인 프리츠 아이클러와 디터람스)
(그림 5. 디터 람스가 제작한 Braun의 제품들 1)
디터람스가 브라운과 함께하던 시절, 그와 브라운의 CEO는 로고 사이즈에 대한 언쟁을 자주 나눴다고 합니다. 브라운의 대표는 제품에 로고를 크게 넣길 원했고, 디터람스는 가능한 작게 넣길 원했기 때문이죠.
디터람스가 브라운 제품에 로고를 작은 크기로 넣기 원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는데요.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 혹은 당신이 방에 들어가서 '나는 어떠하다'하고 말할 때 소리치지는 않잖아요? 조용히 말해야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제품들이 '나는 브라운이다!'라고 소리치는 모습을요. 그건 분명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할 거예요."
이는 제품에 새긴 큰 로고로 브랜드를 강조하기보다, 제품과 사용자의 공간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걸 원했던 것이죠. 그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했고, 그에 맞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디터람스가 만든 브라운 제품들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런 철학이 잘 녹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림 6. 디터 람스가 제작한 Braun의 제품들 2)
1950년대 초에 디터 람스는 자신의 집에 둘 고퀄리티의 모듈식 가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구들이 그의 디자인 감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는 기능적이고 심미적으로 만족스러운 가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그는 덴마크의 가구를 판매하고 있는 닐스 비초에(Niels Vitsœ)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 디터람스는 닐스 비초에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가구 디자인의 품질과 단순성의 비전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림 7. 디터 람스와 닐스 비초에)
그리고 1959년 닐스 비초에는 디터 람스와 함께 그의 디자인 원칙을 기반으로 한 비초에(Vitsoe)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후 그들은 가구끼리 결합할 수 있는 모듈성, 오래 사용될 수 있는 지속성, 필요한 기능과 절제된 미를 보여주는 단순성, 사용친화성을 기반으로 606 선반 시스템, 620 비초에 체어, 621 비초에 테이블 등 여러 가구를 출시하기 시작합니다. 이 제품들은 현대 가구에 큰 영향을 끼치며, 평생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모듈성 가구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림 8. 디터람스의 모듈 가구 스케치와 606 선반 시스템)
(그림 9. 비초에의 620 체어와 621 테이블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모습)
디터람스가 남긴 유산의 본질은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에 남겨 있습니다.
디터람스가 남긴 원칙은 서양 건축의 바이블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세 가지 일반원칙부터 시작하는데요.
(그림 10. 건축을 염두하여 만들어졌던 비트루비우스의 세 가지 일반원칙)
디터람스는 위 원칙에 속성을 결합해 좋은 디자인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상세히 적어나갔습니다.
1985년, 디터람스가 오랜 수정을 거쳐 만들어낸 원칙이 바로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 (10 Principles for Good design)'입니다.
디터람스는 '지금 시대는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급격히 변하는 현대사회는 트렌디하고, 쉽게 망가지며, 금세 바꿔야 하는 제품들이 넘쳐납니다. 이러한 시대 반영을 통해 그는 단순히 소비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닌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공헌하는 디자인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 법칙은 오늘날의 수많은 브랜드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림 11.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는 디터람스를 "영감의 원천이자,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알다시피 애플의 유려하고 사용자친화적인 디자인은 디터람스의 제품 디자인과 유사합니다. 애플의 제품부터 인터페이스까지 곳곳에서 디터람스가 느껴지는데요. '불필요한 것을 덜고 최소한으로 디자인하는' 디터람스의 디자인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림 12. 위쪽 디터람스의 브라운 제품들과 아래쪽 조나단아이브스의 애플 인터페이스와 제품들)
MUJI는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의 두 음절을 사용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입니다. 일본어인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은 ‘상표가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MUJI는 과감하게 상표를 없애고, 미니멀한 제품으로 제조공정을 간소화하여, 판매가를 낮춘 전략으로 성공한 브랜드입니다. 그런 MUJI를 성공의 궤도에 올린 이가 바로 아트디렉터인 ‘후카사와 나오토’인데요. 그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제품에 녹여내는 디자인 철학을 가졌습니다. 또한 영국의 대표 산업 디자이너인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슈퍼노멀(Super Normal, 평범함 속에 존재하는 비범한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이 브랜드에서 디터람스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해하기 쉬운 디자인,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절제된 미학, 일상에서 찾은 가치. 이것들은 모두 디터람스가 말하는 굿디자인의 표본입니다.
(그림 13. 왼쪽 후카사와가 만든 MUJI의 CD 플레이어와 오른쪽 재스퍼가 만든 MUJI의 벽시계)
그가 현대 디자인을 넘어 다양한 브랜드에 영향을 끼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끝으로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아래 리스트를 남겨놓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리스트를 클릭해 주세요.
오늘은 디터람스의 디자인 철학이 브랜드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좋은 브랜딩은 단순한 제품과 디자인만이 아닌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국내의 브랜딩 성공사례를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