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물의 재해석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호와 83호로 교과서 속 '역사적 가치'로만 주목받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사유의 방'을 공개합니다. 이후 반가사유상은 '교과서 속 유물'이 아닌 한국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요. 오늘은 이 '사유의 방'의 브랜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생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 미륵이 있는 사유의 방이 현실 세계와는 다른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원오원아키텍츠의 인터뷰 중
(그림 1. 사유의 방 전시실 미디어 아트)
반가사유상을 만나기 위해선 어둡고 좁은 긴 공간을 걸어야 합니다. 어두운 복도 끝에 다다르면 마주하게 되는 '사유의 방'은 큰 울림을 줍니다. 이 두 점의 불상은 제작시기가 달라 미묘한 차이점이 있는데요. 기존 전시 방식과 달리, 다양한 각도에서 이 작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치된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가지다'란 의미의 '사유'란 단어를 표방하여 공간의 깊이감을 더해줍니다.
(그림 2. 사유의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 두점)
'사유의 방'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굿즈입니다. 반가사유상을 모티브로 한 다채로운 문화상품을 선보이며 반가사유상의 가치를 일상 속으로 가져온 것인데요. 반가사유상을 재해석한 미니어처, 스마트톡, 열쇠고리 등 감각적인 디자인의 굿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참여형 상품인 ‘내가 그리는 반가사유상’ 컬러링 키트는 소비자가 직접 채색하여 작품과 교감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림 3. 내가 그리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모습)
이 브랜딩은 관람객 수와 매출 증가로 이어집니다.
2024년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의 외국인 관람객 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56% 증가했으며, 2023년 기록 대비 35% 더 많은 방문객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뮷즈 브랜드의 굿즈는 박물관 내 오프라인 스토어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높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그림 4. 전시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국인 관람객)
사유의 방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반가사유상이 역사적 자료와 함께 전시실 한편에 배치되었다면 이토록 사랑받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품이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겁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 하나가 큰 울림을 주는데요. 차고 넘치는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두루 헤아리고, 깊게 생각하다'의 의미인 사유는 반가사유상의 깨달음과 현대의 가치에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인 '사유'로 반가사유상을 표현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림 5. 사유의 방 입구. 개인촬영)
사유의 방은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에 두 점의 불상을 배치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어느 곳을 쳐다봐도 반가사유상에 시선이 닿도록 만든 공간 전략인데요. 온전히 반가사유상을 향유할 수 있게 공간을 구성한 것입니다. 또한 어둡고 좁은 복도에 끝에 두어 극적인 대비감을 주는데요. 이는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가치를 제안하는 것을 넘어서, 소유 하고 싶은 욕구마저 불러일으킵니다.
(그림 6.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 모습. 개인촬영)
사유의 방은 전시 경험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사유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여운은 다양한 굿즈로 해소할 수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미니어처, 귀여운 캐릭터를 활용한 방향제 등 MZ 세대가 열광하는 다양한 굿즈를 제공하는데요. 특히 반가사유상의 미니어처는 BTS의 멤버 'RM'이 소장한 걸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미니어처는 2024년도 기준 누적판매량 약 3만 2,000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흔쾌히 지불할 수 있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기성세대와 달리 1030세대는 박물관을 새로운 콘텐츠로 인식하기 때문인데요. 가치에 맞는 상품은 값이 비싸도 소비하는 이들의 성향에 딱 맞는 전략인 것입니다. 굿즈를 통해 소비자가 작품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한 접근법은 단순한 기념품 이상의 의미를 제공합니다.
(그림 7.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모습)
이번 브랜딩 사례도 재밌게 읽으셨나요? 저도 이 글을 준비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어 좋았는데요. 한 단어로 모든 가치를 표현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셨나요? 당신이 경험한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댓글로 표현해 주세요. 소통을 통해 더 깊은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이 글은 마무리 짓고, 다음 이 시간에는 아날로그 감성의 자전거 브랜드 '브롬톤 (Bromton)'의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