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자유를 선물하다
서울의 한강을 걷다 보면 종종 클래식한 접이식 자전거를 보곤 하는데요. 오늘은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 아날로그 감성의 자전거 브롬톤에 대해 소개해보려 합니다. 접이식 자전거 제조업체가 어떻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했는지 알아봅시다.
(그림 1. 복잡한 런던의 도로 모습)
브롬톤의 창립자 앤드류 리치(Andrew Ritchie)는 런던에 이사했을 때 복잡한 교통에 관심을 갖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도시의 교통수단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의 고민은 버스와 지하철에서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도시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접이식 자전거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1975년 브롬톤 오라토리가 보이는 그의 침실에서 접이식 자전거인 브롬톤(Bronton)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림 2. 앤드루와 브롬톤의 도안)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브롬톤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건 아닙니다.
앤드류는 브롬톤 발명 후에도 10년간 작은 임대장에서 브롬톤을 만드는데요. 그는 고객이 주문한 접이식 자전거를 제작하며, 자전거를 만드는 기술을 연마합니다.
이런 노력과 수요에도 브롬톤에 투자하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림 3. 브롬톤의 투자를 거부하는 내용의 편지)
친애하는 리치 씨께,
제 동료들이 귀하의 휴대용 자전거의 새로운 디자인을 검토했습니다. 그들은 이 디자인이 매우 독창적인 공학적 접근 방식이라고 느끼지만, 판매 가격이 높아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를 귀하와 더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 브롬톤에 투자를 거부하는 편지 내용 중
그러던 중 앤드류는 런던 올림피아에서 열린 Cyclex Bike Show에 참가하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는 Best Product Award를 수상하게 됩니다. 이후 브롬톤은 첫 공장을 세우게 됩니다.
브롬톤의 첫 공장은 오래된 철도의 아치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이 팀은 한 달에 60대의 자전거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모두 강철로 제작되었으며, 검은색과 렉이 달린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3단과 5단 기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요. 이 매력적인 접이식 자전거의 메커니즘은 40년 동안 유지된 브롬톤의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어쩌면 앤드류가 전하고픈 '튼튼하고 기능적인 접이식 자전거'의 정신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죠.
(그림 4. 브롬톤의 첫 공장의 모습)
2002년 윌 버틀러 애덤스(Will Butler-Adams)는 궁금증을 가지고 브롬톤에 찾아갑니다.
당시 그가 맞닥뜨린 공장은 작고 체계가 없었다고 해요. 1975년 이후, 27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한 달 자전거 생산량은 60대였다고 합니다.
작은 규모에 실망하던 찰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펼쳐진 아름다운 브롬톤 자전거의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작게 접혀있던 자전거가 꽤 크게 펼쳐지는 걸 보고 놀랐어요. 몸체는 매끈하고, 바퀴는 조그마한 게 확실히 예쁘더군요. 처음엔 제게 너무 작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전 190cm가 넘으니까요. 그런데 길에 나가 한번 자전거를 타보니… 와우, 너무 가볍고 민첩했어요. 이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윌 버틀러 애덤스, 롱블랙 인터뷰 중
(그림 5. 브롬톤의 펼쳐진 모습)
그는 곧바로 브롬톤에 합류합니다. 가장 먼저 문제로 꼽았던 생산 공정을 효율화시켜 생산성을 높이는데요. 매뉴얼을 만들고, 공정을 자동화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2008년 브롬톤의 CEO가 됩니다.
이후 브롬톤은 단순히 자전거 제조업체로 머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벤트가 브롬톤 월드 챔피언십(Brompton World Championship)입니다. 브롬톤 월드 챔피언십은 전 세계 브롬톤 라이더들이 참가하는 자전거 레이스 대회인데요. 자전거 경주뿐만 아니라, 가장 빠르게 접는 대회와 베스트 드레서에게도 상이 수여됩니다.
(그림 6. BWC의 모습들)
저도 몇 년 전 브롬톤 월드 챔피언십 코리아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그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비를 맞으며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그림 7. BWCK 2023의 추억들. 개인촬영)
그래서 그런지 브롬톤을 떠올리면 자전거인 브롬톤보단 브롬톤을 가진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이 떠올라요. 이처럼 제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상 깊은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잘 만들어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브롬톤은 패셔니스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합니다. 아마 같은 모듈의 형태로 호환이 가능하단 점이 가장 큰 몫을 하는 것 같은데요. 원한다면 자유자재로 커스텀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키가 큰 사람을 위한 핸들, 여러 컬러를 믹스매치하여 조립한 형태, 나의 쓰임새에 맞게 붙일 수 있는 액세서리까지. 꾸미는 맛이 무궁무진한데요. 이는 소비자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아이템으로 활용이 됩니다.
(그림 8. 브롬톤의 바버에디션)
1992년, 브롬톤은 대만의 유로-타이(Euro-Tai)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네오바이크(Neobike)라는 합작 회사를 통해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브롬톤 자전거를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네오바이크가 브롬톤의 설계도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유사 제품을 생산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는데요. 2002년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네오바이크는 브롬톤과 유사한 자전거를 생산·판매하였고, 이에 따라 브롬톤은 네오바이크를 상대로 여러 국가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06년 네덜란드 흐로닝언 법원은 브롬톤의 디자인이 저작권으로 보호된다고 판결하였고, 2010년 스페인에서도 브롬톤이 승소하여 네오바이크의 제품 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때 생산된 네오바이크의 라인을 한국에선 대만톤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브롬톤은 한국의 체데크 자전거가 브롬톤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브롬톤은 네오바이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접이식 자전거의 디자인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체데크가 이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벨기에 법원에서 진행된 이 소송은, 브롬톤의 특허가 1999년에 만료되었기 때문에 디자인 저작권 주장이 부당하다는 근거와 함께 브롬톤의 디자인 저작권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사실 브롬톤의 초기 특허는 1981년에 등록되어 1999년에 만료되었는데요. 특허 만료 이후, 브롬톤의 접이식 메커니즘을 모방한 여러 유사 제품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제품 그 자체에 있는 경우, 특허가 얼마나 중요한 방어를 해주는지 알려주는 사례인데요.
그동안 타제품들과 큰 차별성을 갖고 있던 브롬톤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하네요.
(그림 9. 체데크 자전거의 모습)
이번 글도 재밌게 있으셨을까요? 창립자의 제품철학과 경험이 아우러져 강력한 브랜드가 구축된 사례로 보이는데요. 저도 브롬톤을 짧게나마 경험해 봤기 때문에 더 재밌게 글을 쓸 수 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헤쳐나갈 난관이 많아 보이지만, 여전히 슈퍼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역시 오리지널리티는 특별하다'는 문구가 떠오르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다음은 브랜딩 사례가 아닌 '컬러 브랜딩'이란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