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사이 어딘가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름 작가 행세를 하며 글을 쓰고 있지만, 아마추어인 작가로서 창작과 낙서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글들은 지금 보아도 여전히 부끄럽다. 그래서 나의 내적 친밀감이 매우 높은 몇몇 지인들에게만 내 브런치를 공개해 왔다.
얼마 전, 그 지인 중 한 명과 식사를 하게 되어 내 글을 읽어보았냐고 물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친구라 '몇 회쯤은 읽어줬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바빠서 못 읽었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참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주말마다 틈틈이 내 예전글까지 다 읽어봤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뜻밖이었다. 코끝이 시큰해 눈물이 핑 돌 뻔했다. 하지만 사회생활 15년차의 단련된 뻔뻔함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티 내지 않았다.
용기를 얻어, 그러면 내 글들에 대해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주변 사람들한테 제대로 된 피드백을 못 받아 봐서 갈증이 있었던 터였다. 친구는 크게 지적할 건 없다고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일상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어요. 한쪽에 집중하는 것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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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인사팀 경력을 이용하여 막연하게 '인간관계'에 대한 글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계에 대한 기대와 후회 같은 것들이 녹아버린 파인트 아이스크림처럼 뒤섞여 있던 시기였고, 각종 심리학과 뇌과학,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때였다. 가끔 책을 읽다가 '뭐야, 별거 없잖아'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잔소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계의 원칙이나 팁 같은 것들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당시의 글들도 나름의 시사점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백그라운드 없는 무명의 작가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쓴 글이라 썩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나 스스로가 글 쓰는 재미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부터는 그냥 일기 쓰듯이 내뱉어 보았다. 초등학교 때 미뤄뒀다 몰아 쓰던 일기를 20년 이상 또 미뤘다가 이제 쓰고 있는 셈이다. 감성 에세이 작가를 표방하며 절절한 글을 써보기도 하고, 삶의 단면을 끄집어내어 서사를 입혀 보기도 했다.
일상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 어느 장단에 맞춰서 써야 할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어렴풋이 그런 고민들을 해왔나보다. 이 글로써 연재를 마무리하는 두 번째 정이든 산문집의 주제인 '양면성'과 친구가 던진 화두가 맞닿아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일상과 교훈의 양면성.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 감정과 논리, 편도체와 전두엽, 열정과 냉정, 낮과 밤, 온탕과 냉탕 같은 것들.
아, 나는 온수와 냉수를 섞은 '미온탕' 같은 글을 쓰고 싶었나 보다. 목욕탕에 미온탕이 없는 것은 사람들은 더울 때 냉탕을 추울 때 온탕을 찾기 때문인데, 나는 찾지도 않을 미온탕만 우리고 있었다.
뭐 어떠랴. 우리들이 살면서 마주하는 순간들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미온적인 시간이다. 그러니 적당히 온수와 냉수를 이상적인 비율로 섞어 봐야겠다. 대중목욕탕은 아니라도 정든이들이 종종 찾아주는 작은 자쿠지가 되어야지.
그래도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선을 하나 정하기로 한 것인데, 앞으로는 좀더 일상적인 것에서 따뜻함을 전달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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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논리만으로 살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습관과 시간들이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아마 나는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연락하거나, 화내지 않으려고 꾹꾹 참았지만 바로 폭발하는 그 순간의 무기력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발적이고 감정적이며 충동적인 존재다. 불완전하여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함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일상에 꼭 의미를 찾을 필요 또한 없다. 물론 억지로 매 순간의 스냅샷들에 해시태그처럼 의미를 붙여볼 수는 있을 것이다. 통찰은 그 자체만으로 온전한 삶의 만족감을 줄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삶은 둥글게 계속 굴러가는 것이라 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위태롭게 외발자전거에 올라탄 방랑자들이다.
답은 현재로 귀결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만족과 평온함을 높일 줄 알아야 인생 전체의 평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 팔을 벌려 외발자전거의 균형을 잡는 동시에 손끝에서 존재의 분명함을 느끼며, 페달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겠다.
물론 삶의 진리나 원칙에 대해서 정의하는 과정은 인생의 나침반으로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규칙과 방향성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사이트를 좇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편안함을 역행할 수 있는 인간의 고귀함을 경외한다.
그러나 나침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막 한복판의 우리에게는 나침반 외에도 식량과 물, 담요, 그리고 좋은 동료가 꼭 필요하다.
얼음잔에 뜨거운 커피를 붓는 순간 타탁-하는 얼음 녹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커피향, 여름이 끝자락에 스미는 선선한 바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아귀찜을 먹으며 나누는 사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겹겹이 구성하는 진짜 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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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대체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 냉수와 온수를 섞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영상과 영하처럼 기준점을 두어 명확히 분리할 수 있는 것도 있으나, '낮과 밤'처럼 시작과 끝이 모호한 경우나 '꿈과 현실'처럼 주관적인 분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물을 끓이든 식히든, 그것 또한 삶의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 무엇이 옳다 그름을 가를 수 없으며 겸허히 존중할 따름이다. 나는 그냥 좋은 것들을 섞어보려 했던 것 같다. 어떠한 조합으로 글이 채워질지는 몰랐지만 채우고 나니 그것이 내 글인 것처럼 막 써보고 있다.
나는 낮에 밤을 그리워하고 밤에 낮을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 거울 속의 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느낀다. 낮인지 밤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일에 파묻혔다가 훌쩍 휴가를 내고 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중간 어딘가에서 삶의 균형점이 맞추질 것이다.
푹 자고 눈 뜬 아침, 옆으로 돌아누워 두 팔로 베개를 만들어 일어날지 잠들지를 고민하는 나의 몸과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 그리고 기지개.
fin.
그동안 '정이든 산문집2 : 양면거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삶의 양면성이라는 주제로 써보려고 했습니다만, 세상을 너무 앞면과 뒷면만 존재하는 이면지같이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던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각도와 방식으로 삶을 관찰하고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음 브런치북 발행 전까지는 일상적인 글이나 시 위주로 업로드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마침 다음 주부터 긴 휴가가 예정되어 있어 설렙니다. 리프레쉬하고 틈틈이 다음 글도 구상해 보고 새로운 곳에서 시야도 넓히고 오겠습니다.
무더운 여름동안 푹푹 찌는 날씨 버티느라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상의 평온함과 열정이, 원하시는 비율대로 착착 맞아떨어지는 날들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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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