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냄비 속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
관계의 냄비 속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
당신과 나의 관계의 냄비가 부글부글 끓기 전에, 누군가는 확실히 뛰어올라야 한다. 필요하면 화를 낼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 순간만 참고 어찌어찌 넘기다 보면, 어느샌가 구워 삶긴 개구리가 되어 버릴지 모른다.
네가 또라이 짓을 하는데 나라고 같은 짓을 못 할 일이 뭐가 있나?
콱! 박차고 오르자. 개구리 등에도 날개를 달아보자. 아니면 적어도 냄비를 엎어 버리자.
때로는 이런 극단적인 방식도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 목소리를 내는 것. 설령 상대가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세상도 결국 그런 사람들이 좌지우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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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계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시점 의존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참을만한 온도가, 언젠가는 참을만했던 온도가, 비가 추적추적 오고 꾸질꾸질한 일들로 기분이 망가져 있는 오늘 같은 날에는 뜨겁고 견딜 수 없게 느껴진다.
참을 수 있는 일과 참을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냄비를 뛰어오를 필요는 있지만, 항상, 매번, 그런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조그만 대화가 과열돼도 성질부터 내는 인간군상들을 겪으면서, 이 방식이 항상 좋은 효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냄비를 뛰어나가기 전에, 객관적으로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나아가, 뛰어나감의 목적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냄비의 온도가 정말 못 견디게 뜨거운지, 그리고 뛰어나가서는 어디로 갈 건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똑똑한 개구리가 되려면 지도와 온도계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또라이를 만나지 않는 것.
당신의 남은 하루하루가 평안하기를. 혹시 빌런을 만난다 하더라도, 냄비가 끓어오르지 않고, 땀이 나서 힘들지만 적당히 자극을 주고 몸을 풀어주는 여느 사우나의 열탕 같은 곳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