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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Sep 06. 2022

돌덩어리

떫소리_2021. 5. 28

마음이 아프다. 시리게 아픈 건지 가시가 쿡쿡 찌르듯이 아픈 건지, 아니 둘 다 아니였다.

마음이, 마음이, 그러니까 감정이, 돌덩어리처럼 내 몸에 가득 들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난 그저 이 감정덩어리를 몸에서 끄집어내고 싶었다. 수술이든 뭐든. 감정이란 개념이 내 안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글을 쓸 수 있을까? 뭐가 어찌되든 간에 생존은 할 것이며, 이성이란 개념만 들어있는 '나'는 거의 빈껍데기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래, 그저 '이성'만 추구하며 살 때가 있다. 또는 성격 자체가 이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는 때론 그들이 한 없이 부러웠다. 그들의 입장에선 나같은 감성팔이를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그런 그들을 죽어라 이해하지 못했고, 메마른 사람들이라 취급했다. 그런데 가끔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부는 거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공허하면서도 그 자체만의 무게는 엄청난지 아주 무겁다.

나는 지나치게 예민하다. 예민하다는 것이 감정기복도 있지만 신체 자체도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뭐 예를 들면 남들 다 느끼는 차갑다, 뜨겁다의 기준이 몇배로 크다. 내 몸도 그에 맞춰져있기에 대부분 내가 호들갑을 떠는 줄로만 알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스스로가 고양이도 아니고, 소름이 끼치듯이 닿기도 전에 느껴지는 감들이 있다. 뜨거운 라면국물을 마셨다고 혓바닥이 일어나기도 하고, 하드를 베어먹었다고 잇몸부터 시리기도 하고, 뭐 그런 식이다. 나에게는 김이 풀풀 나고있는 음식은 무조건 내가 삼켰다간 목구멍을 불태워 없애버릴 수준의 뜨거움이고, 상큼한 샤베트류나 얼음을 입 안에서 깨 먹는 것은 이빨의 수명을 깎는 일이었다.

뭐 아무튼, 그 정도란 소리다. 심지어는 피해망상증인지 뭔지란 소리를 들으면서 살기도 한다. 누군가가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려고 팔을 들면 때리는 줄 알고 흠칫, 몸을 피하고 본다. 그러다보면 여태 맞고 살았냐, 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누군가가 나를 치거나 터치하기도 직전에 먼저 느끼고 아! 하곤 아픈 곡성을 내기도 한다. 친구들은 어이가 없지만 내 입장에선 때리지 않아도 그 타격이 얼핏이나마 느껴진단 말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마 얼굴을 못 본 지 2년은 되었을 터였다. 웃기는 건 그 정도로 서로 보지 못하는 기간을 만들어낸 것이 과거의 내 짓이라는 것.

무엇이 그렇게 짜증나고, 예민하고, 그랬는지...

당시 상반기부터 끝도 없는 인간관계의 더러움을 마주하며 온 덕에 연말까지의 나는 거의 인류애 상실 수준이었다.

초반에는 초기 우울증으로 몇 시간을 가끔 눈물을 흘리는 걸로 말았는데. 뒤에 가선 눈물도 나오지 않고 그저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정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물론 친구들에 대한 시기나, 의심. 당연히 포함되었다. 나는 생일을 축하한다고 내 생일 날짜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선물을 보내준 그 친구를 읽지도 않고 차단 박아버렸다. 그 친구가 더는 내 일상도 보지 못하게 sns도 차단했다.

그렇게 소식도 모르고 흘러간 세월이 2년이더란 거다.

지금쯤까지 와서야, 나는 다시 여유로운 생각을 가질 줄 알았다. 물론 그것도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정말 내 인생에 몇 없는 '차단'으로 취급해놓은 사람 목록을 원상태로 만들어두었다. 거기서 이 친구에게 다시 팔로우를 걸었다. 요즘엔 이렇게 가상 세계를 들이밀면서까지 사람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참 복잡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그 친구가 다음 날 내가 한 팔로우를 받아주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 이후 또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다,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에 대해 얘기를 나눌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큰맘 먹고, 내가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질까, 반성하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넣었다.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연락을 받아주었고, 심지어는 먼저 한 번 만나자는 제안까지 해주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마주치자마자 서로의 근황을 떠들어댔다. 카페에 앉아서는 시덥잖은 요즘 얘기를 섞다가도 아주 자연스럽게 깊은 얘기도 서로 꺼내들었다. 서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듯, 그 얘기들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좋은 시간을 보낸 뒤 귀가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멍하니 좀 뒤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앉아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은 생각하기 싫은 거였다.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환승을 하니 아주 먼 길을 걸어야했다. 나는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 땅 밑을 이렇게나 광활히 걷고있다는 게 새삼, 아직도 놀라웠다.

한발짝 집에 더 가까워지고 있을 때쯤 부터, 어딘가 시린 느낌이 들었다. 뭐지? 추운가, 하고 원인을 찾다가 발견한 건 나의 내면이었다. 갑자기 고개를 들 수가 없어졌다. 멀쩡하던 정신이 피해의식을 같기 시작했다. 젠장, 공황이 왔다. 단 한 번도 예측을 하지 못한 그 녀석은 깔끔하게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마스크 안의 공간으로, 산소가 모자란 것처럼 숨을 쉬어댔다. 물론 그 마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심호흡을 한다고 고생했다. 대체, 나를 평생은 모를 사람들 눈치를 그렇게도 보는 건지, 내 스스로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다행히 거의 집근처에 다다랐을 때라, 급한 발걸음으로 집까지 직진했다. 길을 걷는데 눈물이 나오려고만 했다. 아, 제발. 또 왜 이러는 거야. 이틀 전에 병원에 가서 상태가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저번주는 일주일 내내 한 번도 극심하게 우울하지도 않았어요! 라며 해맑게 천천히 약을 줄여가자고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었는데, 한심하다.

그 상태가 이틀도 못 갔다는 소리니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짐들을 널부러뜨리며 주저 앉았다. 와중에 찝찝한 기운이 있는 지 세수도 하고, 잠옷으로도 갈아입는 것까지 순식간에 마치고 잠자리에 쓰러졌다. 편안한 상태가 되서야 울기 시작했다.

만난 친구를 A라고 가정하자. 나는 A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서울에 있는 아는 인맥, 친구, 정도로 그쳤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친구들로부터 그건 이성적인 감정이 있는 게 확실하다며 내가 눈치가 없는 걸로 판단 됐다. 그것도 맞긴 하다. 그 때까지도 난 정신력이 어느 정도 튼튼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A와 연락도 잘하고 지냈다.

그러다 하반기에 접어들 때쯤부터 내 정신력은 감정과 동요하며 가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엉망진창이었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오는 어떤 연락들도 나는 고깝게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지난 번 친구들의 말을 믿으며 A가 찔끔찔끔 연락하는 모습에 오해를 하고는 그를 친구 대상으로 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리 둘은 당연하게도 만나면 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거라 예상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친구의 입장에선 분명히 어떤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맞았을 거다. 친구는 당시 내 상태의 얘기를 차근차근 들어주면서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해줬다. 날 단번에 용서해준 게 아닐까.

돌아보니 나는 자세히도 모르고 화가 나면 친구들과 당장에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이들을 입에 올려 험담을 했다.

그 당시에는 나의 논리가 백번도 맞았다.

난 내가 질색팔색하는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만들고 있었던 과거의 내 자신을 떠올렸고, 고통을 자아내듯 울어댔다.

멀쩡한 사람을 못된 취급 해놓고는, 나중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가 편할 때만 다가가고, 아니 이게 무슨 여우같은 짓이란 말인가.

그 부분부터 시작해서 끝없는 바보같은 생각이 도졌다. 만약 내가 친구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나, 어이가 없어서 스스로 헛웃음이 나왔다. 하다 못해 친구들을 탓하려 하다니.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또 울었다.

나는 A에게는 다시 관계가 좋아져도 이성적인 관계에 대한 건 단 일말도 없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정말 과거의 A가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착잡해졌다. 왜, 대체 왜.

어둠속에서 정신없이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끄집어내며 울더니 나는 미쳐갔다. 머리가 어질해지면서 빈혈이 왔다. 그러나 눈앞은 암흑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 틈 사이로 복도의 한줄기 빛이 유일하게 비쳤다. 나는 넋이 나간 몽유병 환자처럼 맨발로 신발장에 걸어갔다. 다른 세대에서 여자가 화를 잔뜩 내고 있는 소음이 들렸다. 멍하니 그걸 들으면서 복도를 작은 구멍으로 살펴봤다. 그러다 또 힘이 빠지자 다시 방안으로 어슬렁 들어가며, 그 작은 어둠 속에서 흐느적 흐느적, 좀비처럼 왔다갔다했다.

주변을 너무 의식하는 이유 때문인지 환청이 들릴 때가 있다. 사소한 것이며, 나 스스로도 금방 아니라는 것을 인지

할 정도이긴 하지만, 사람은 극심해지면 뭐든 믿는다.

나는 2년 전 A에게서 보고 느꼈던 화나는 감정들이, 설마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보곤 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결론까지 갔다. 몸 안에 묵직하게 들어 있는 감정덩어리에 성냥불을 붙인 듯 뜨겁고 아팠다. 완전히 정신 나간 환자처럼 나는 울어댔다. 그러다 문득, 그럼 왜 나를 사랑해주는 이성은 나타나지도 않는 걸까, 유치한 생각을 꺼내 먹었다.

그 생각을 또 씹어대니, 고통이 더 강해졌다.

외롭다. 미치도록 외롭다. 연인 상대를 만나고 싶은 건 줄 알았는데, 그저 감정이 고달픈 이기적인 거지였다.

엄마, 엄마를 조용히 불렀다. 어젯 밤을 억지로 떠올리며 엄마, 라는 단어를 적었더니 드라마 주인공처럼 눈물이 또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불투명한 화면을 보면서 나는 계속 타자를 치고 있다.

아, 시발.

와중에 메세지가 오는 인간도 눈엣가시인 놈이였다. 제발 연락 좀 그만해. 너같은 친구 필요없어.

그런데 이 생각조차도 또 나 혼자 오해한거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나는 내 감정을 함부로 쓸 줄도 모른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가뭄에 말라 비틀어진 걸 지도 몰랐다. 연애든 뭐든, 날 사랑해주는 이를 만나고 싶다. 내가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찾고 싶었다. 그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기에 이리도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냔 말이다.

새벽에 전화로 나를 위로해준 친구가 말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화가 나거나 울적하면 잠을 청해보라고.

난 그래서 대낮에 낮잠을 잤다. 그리고 글을 쓰려고 하니 어딘가 답답해서, 여기다 글을 쓰니 다시 우울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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