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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Sep 07. 2022

고갈

떫소리_2021. 7. 9

이제 더는 울고 싶지도 않았다. 병든 몸이 차츰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이젠 울고 싶다는 감정 마저도 무미건조해져버린, 거였다.

국토대장정을 다녀오겠다며 한달 치 약을 어마무시하게 가득 받았다. 약봉지가 가득 차다 못해 꾸역꾸역 봉지 안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애써 길을 가며 쑤셔 넣었다. 오랜만에 본가로도 내려가겠지만, 이것저것 필요한 준비물들을 사면서 더욱이 신이 났다. 빨리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으면,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참이었다.

여기선 같이 가기로 했던 친한 언니를 B라고 간단하게 칭하겠다.

전화가 걸려온 B의 목소리에선 보지 않아도 울상이 되어있을 모습이 그려졌다. 자가, 격리라고?

일주일을 미루기로 했다. 뭐, 그 사이에 친구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는 거니까, 어찌되든 좋은 격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리려는데, 무슨 이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1200명이나 되는 그 수들이 정녕 인간들이 맞는 걸까? 대체 뭘 했기에 다들 어디서 감염되어 오는 건지, 지난 주에 친구들이랑 모여서 봤던 <새벽에 황당한 저주>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집밖으로 나갔다가는 어김없이 좀비 바이러스에 물린다. 세상은 인간보다 감염자가 더 많아진다. 그 B급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와 살아남았고, 정부는 연구를 통해 좀비들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평화롭게 지내는 것으로 끝이난다.

아니, 좀비는 살아있고 먹기라도 하지... 코로나는 그냥 감염되면 폐가 썩잖아. 이 생각을 하면서 어이 없게도 돛담들을 고이 넣어둔 틴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달을 준비하고 계획해오던 둘만의 국토대장정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무산되어버렸다. 나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갈거라며 입을 털대로 털어놓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전했다. 그리고 자가격리 중일 B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뭐하고 있었어?"

"누워 있었어..."

나돈데. 나는 자가격리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누워있어. 우리는 몇 초간의 짧은 침묵을 가졌다. 서로는 말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공허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거다.

몸조리 잘하고, 그래도 집이 그나마 가까우니 4단계 격상해도 서로의 집에 왔다갔다하며 의지하자, 라는 희망은 차는 뜻의 말이지만 풀이 죽은 힘으로 건넨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모험을 떠난다며 엄마에게 한달치나 가불받았던 생활비, 를 여태 빚을 진 친구들에게 갚을 수 있는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겼다. 완전히도 아니고 어느 정도다.

심지어 소장본 제작을 할 때도 엄마 돈을 빌렸다. 자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선뜻 돈을 지불해주는 그 마음에 적잖이 감동했었다. 갚아야하는 상황이 오면 더 눈물이 나겠지만 말이다.

그 말 그대로, 지금은 완전히 적자다. 돈이 생길 기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헬게이트 같은 곳에서 내 몸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한 장보기는 커녕 국토대장정을 위해 사놓았던 단백질 바, 같은 비상식량이나 뜯어서 먹을 판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돈에 궁해본 적이 없다.

비가 쏟아지면, 나에게는 허무함이 그만큼이나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젠장, 이젠 글도 안 써진다. 구상도 하기 싫고, 그냥 그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의무적으로 무언가를 입안에 우겨넣고, 노트북을 키면 자연스럽게 게임 두판 정도 하다 넋을 놓는다. 보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봐도 감흥이 없다. 아, 이 작품 진짜 재밌어 너무 좋아~하던 것도 이틀이나 가면 긴 편이었다. 또 그런다, 또.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다며 자연스레 과거를 떠올린다. 그만하자, 제발.

뭐 근데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니, 아무래도 이미 내 무의식은 자신감을 잔뜩 잃었다.

게으르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비판하기에 바쁜데, 어떻게 스터디에서 남의 글을 피드백 해주고 내 피드백을 받고 잘 인용해 글을 수정하고 글을 쓰고, 계속 글을 써나가고....

그게 되냔 말이다. 안 되지, 절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블로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였던 글들을 대충 훑어보면 하나 같이 이런 글들이었다. 나 자신도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글, 투성이다.

돈이 없으니 병원도 가지 않는다. 이미 한달치 약을 받아버렸으니, 2주에 한번 씩 보자던 상담도 이렇게 한달은 지나쳐버리자, 하는 마인드.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이번 여름만의 내 계획들이 전부 무산되어 버렸으니,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내가 펜을 잡는 것이였고, 펜을 잡았다가도 계속 책상 위에서 굴리고 딴 짓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퍽이나 글쟁이 같겠다.

내 계획이 모두 무너져서 이렇다는 건 또 핑계일 거다. 아무튼 간에 스스로에게도 변명은 꼭 잘한다.

난 그냥 힘도 없고, 가면 갈수록 의지도 점점 사라질 뿐인 것 같다. 험하고 힘든 일이라도 누군가 고용해줬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으며 내 인생 망했어 하고 뒹굴거리는 인간 보다는.

에휴, 내가 인간이냐? 아, 인간은 인간이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툭하면 울고 싶은 감정이 하루 내내 싸여있던 정신은, 이젠 그럴 기력도 없는지 감정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이 없으면,

글은 어떻게 쓸래?

쓰긴 쓸거니?

라고 나에게 묻는다.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려 귀를 기울여 보지만 고른 숨소리 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닿지 않는 목소리였는지, 침묵이였는지, 어떤 대답이었든 간에,

나는 일단은 '한다'라는 항목에 체크를 했다.

쟤, 글 쓰긴 쓴다는데요?

꼼짝없이 갇힌 이 공간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창작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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