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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12. 2022

떫은 일상 고찰

떫은 일상_ 2022. 3. 3


2019.11.12

1


이제 보니 그도 그럴 것이, 칫솔을 새로 뜯어 보관해두기로 할 때는 참 집처럼 드나들겠구나 싶지만 막상 한 번 그곳을 나가버리면 두고 온 칫솔에 대한 존재는 인지하고 있던 부분에서 까마득히 잊혀져버린다. 마치 앱으로 아이쇼핑을 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지만 지금 당장 사기엔 그렇다 싶을 때 좋아요만 눌러놓고 데리러 올게~ 하곤 잊어버리는 식과 같이 말이다. 아무튼 간에 다시는 돌아오고 있지 않은 저 칫솔들의 주인을 유다운과 유추하던 중에 그간 우리 집에 오갔던 이들이 참 많고도 다양했음을 떠올리게 됐다. 비록 각자의 바쁜 일상으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진 모르지만, 새 칫솔을 뜯어 두고 다녀야지란 다짐을 하면서까지 머물렀던 그 잠깐 동안의 시간을 찜해둔 상품처럼 어느 순간 불현 듯 떠올리기 바란다. 그 때 찾아오면 품절로 되어있을지,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진 장담 못하지만 말이다.




2


글쎄, 나는 왜 그리도 애매한지 모르겠다. 완벽함에 다다를라 치면, 또는 완벽하게 무언가를 끝내고 나면 이후에 약 2~3% 정도의 미흡함이 생겨버린다...그것이 내 인생...아무리 노력해도 왜 그런 것인지...


저번에도 설거지하다 그릇을 깼는데, 아주 깨면 모를까 그릇의 바닥 받침만 깨서...


제대로 서질 않으니 쓸 순 없지만 그릇자체는 멀쩡했다. 이 국자도 그렇다. 손잡이 끝부분만 깨져서 쓸 수는 있는데 국자를 어디 걸어놓질 못한다. 시원하게 버릴 수도 없게 사고쳐버리는 감떫음. 그래서 떫은가보다, 내 인생은.



3


나는 웬만한 교사들을 좋아하지만 가끔 가다 싫어하는 인간은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런 교수들의 수업일 경우 가끔 의식이 없어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나본데 주변인이 알아볼 정도로 티가 났었다니, 오늘도 떫은 감의 영향력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2022.2.28.


세상살이 모든 인연에 운명이란 실은 존재하고, 우리가 예측하지도 못하는 새에 사랑이란 것 또한 갑자기 불어오는 태풍처럼 닥쳐온다. 태풍의 한가운데는 태풍의 눈, 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센 태풍의 중심 부분은 실상 아주 고요하고 따듯하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가 사랑을 할 때는 그것이 짝사랑이든 어떤 사랑이든 간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한 감정을 나누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소모하게 되는 그러한 과정들은 얼핏 보면 고문과도 같이 잔인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놓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랑이 지니고 있는 가운데에는 진짜 무엇과도 비빌 수 없는 온화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란 게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알 수 없이 누군가에게 빠지며 상대가 무얼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일종의 감정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현실 속에서의 환상에 빠질 수 있다. 그게 바로 사랑의 매력이다. 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마법과도 같은 과학적인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면 꽤 무뎌지거나 익숙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익숙해지면 편안해지고, 당연시 되고 예전보다 관심을 덜 두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대상을 사랑했다는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사랑의 흔적은 강렬하기에 추억으로도 남고, 추억으로 꺼져버린 이후에도 향수병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훗날에도 마음을 간질인다. 나는 그를 봄이 올 때 마다 피는 벚꽃잎이 다 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재채기 날리는 꽃가루만 은은히 남아있다고 표현한다.


덕질이라고 표현하는 행위는 얼추도 아닌, 사랑과 100% 일치하는 감정에 대한 행동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동경하며 여러 섹슈얼 형태의 사랑을 느끼는 것을 행동에 옮기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 하는 수준으로 그 대상에 대해 없던 힘을 발휘하는 기적을 비추기도 한다. 그들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니기에 삭막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법을 안다.


우리들의 ‘그들’ 또한 그렇다. 가끔 그렇게 열렬했던 우리들의 감정과 노력을 배반해버리며 가치를 추락시키는 끔찍한 사태도 많지만 그들이 찬란할 때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 또한 눈부시게 빛이 났다. 덕분에 일 수도, 때문에 일수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도 그들의 사랑에 따른 어떤 방향성을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다. 헤어지는 것으로 슬픔을 안겨주면서도 마음 깊숙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이 상황에 맞닥뜨린 어색함. 소주에 음료수를 살짝 타 먹었을 때 느껴지는 쓰다 하기에도 달다 하기에도 미묘한 그 맛.


내가 살면서 언제 이런 맛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또 새로운 무언가를 다짐하고 또 옛 것을 추억해보겠는가, 하며 자주 먹지도 않는 쓴 소주를 물처럼 들이키던 친구를 바라보고 나는 밤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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