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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19. 2022

무의식에서 이어진 필름조각들(5)

떫소리_2022. 3. 30


상에 힘입어 꿈에 그리던 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자격을 터득한 나는 더 끝없이 노력했다. 이 기세로 말도 안 될 거지만 만약 학교를 합격한다면 부모님께 더 없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노력했다. 계속 글을 쓰고 예민해지면서 자신감, 자존감도 하락하고 감정은 불똥이 튀고 난리가 났지만 정체성 혼란이 오면서도 일단 하고 봐야 했으니 계속 공부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반 친구들과 대학 박람회에 가서 입시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을 땡볕에 거닐면서 수집하고 다녔다. 학교에서 빌린 버스를 타고 다시 동네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근처라서 밥 먹으러 오라고 부모님이 연락 오셨다. 간만의 외식에 신나서 뛰어갔다.



3년 전에도 그랬고, 그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이러이러하고, 사립이며 서울에 있고, 기숙사도 없고 등록금은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런데 내가 원서를 써도 되냐 계속해서 물었지만 아빠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아빠가 나를 믿어주는 것 같아서 계속 열심히 공부했다.



원서 쓰기 한 달 정도 남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식사를 하던 와중 아빠는 대뜸 집 주변에 아무 곳이나 다니면 안 되냐며 말을 꺼내셨다. 그간 내 모든 노력과 말을 무시하는 격이 되는 말이었다. 나는 울컥했지만 장난 치며 말했다. 나는 무조건 멀리 가고 볼 거라고.


그 한마디에 아빠가 외식자리에서 큰 소리를 지르실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옆자리의 엄마도, 내 옆의 동생도 덜컥 놀라서 모두 당황했다. 아빠는 아랑곳 않고 나는 영문 모를 소리들을 지르셨다. 갑자기 내년에 퇴직하신 댄다. 청천벽력이었다. 얼굴도 차마 들지 못하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빠가 한 번 큰 소리 치시면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져서 아무 말도 못하게 무섭다.



옆에 있는 엄마는 평상시에 내 얘기를 계속 들어주고 계셨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거들지 않고 가만히만 있는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왜 내 편 안 들어줘요? 이게 아니란 걸 알잖아요. 옆에 있는 동생한테는 괜히 미안하면서도 쪽팔렸다. 항상 본보기가 되어줬던 누나 꼴이 이게 뭐람. 좋은 모습 계속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 했다. 아빠 자리에선 내 화면이 보이지 않아서 당장에 국가장학금 제도부터 이것저것 찾아봤다. 음식을 도로 토하듯이 꾸역꾸역 집어넣고는 독서실에 가겠다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빠를 지나치는데 “열심히 해라.” 이 한 마디를 내던지셨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서둘러 가게를 나갔다. 독서실 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아 힘겹게 길을 걷다가 차이기라도 한 마냥 펑펑 울기 시작했다. 독서실에 도착해서 문을 닫은 학원 앞 복도에 주저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훌쩍이며 그저 오늘 있었던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새로 산 여름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독서실에는 전혀 안 어울리는 코디였지만 집에 갈 순 없었다. 고3이 당장에 도망 올 곳은 여기였다. 친구는 가만히 듣다가 자기네 부모님은 등록금도 안 내주실 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냈다. 거기서 갑자기 멍해지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냥 친구의 상황도 모르고 오히려 분에 겨운 투정만 한 것 같아서.




좀 진정된 다음 그냥 들어가자고 했다. 독서실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서 울지는 못하고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가 지쳐서 잠들고를 반복했다. 새벽2시, 독서실이 문을 닫을 때까지 버티다가 집에 들어가 잠만 잤다.


다음 날이 되면 도망치듯이 독서실로 향했다. 책상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평소처럼 복도에서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빈 종이에 허무맹랑한 글을 끄적이다가 그마저도 몇 단어 쓰고 놓고 엎드려 자고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다시 자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다가를 반복했다. 밥도 먹지 않고 그 상태로 밤까지 버텼다.



이틀 째 쯤에는 자다 일어나니 엄마가 점심 때 햄버거 사다줄까라고 문자가 왔었다. 그냥 무시하고 다시 엎드렸다. 엄마는 더 이상 연락이 없으셨다.



3일 동안 그렇게 물로만 배를 채우고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멍하니 있거나 잠만 자는 걸 반복했다. 당시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하필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공사 탓에 계단을 사용해야 했고, 억지로 운동을 하면서 21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했었다. 그래도 집에 가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준다는 점에서 내심 고마웠다.



하루는 여름 곤충 소리만 찌르르 맴도는 고요한 밤에 계단을 조용히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숨이 차서 멈춰 서서 창문을 내다봤다.


7살 때부터 아직까지도 마당처럼 드나드는 동네공원. 그 앞에는 반항을 시작하면서도 항상 쾌활하게 지냈던 중학교의 모습이 보이고, 저 너머에는 친구들과 자주 산책을 가던 곳, 그 위로는 캄캄하고 무더운 밤하늘. 갑자기 향수병이 가스처럼 밀려오듯이 닥쳐오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직 20년도 채 살지 않은 내 일상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에 올라가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하루는 독서실에 앉아있는데 눈앞이 핑 돌았다. 그럴 만도 했다. 도저히 앉아 있을 힘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꾸역꾸역 집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들어가자마자 후회했다. 집 안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뭐라도 넣어야 몸이 살 수는 있을 것 같아서, 먹지도 못하는 매운 컵라면을 꺼내다 먹었다. 굳이 방까지 들고 가서 먹는 게 더 꼴사나울 것 같아서 거실에 앉아 엄마가 틀어놓으신 TV를 보며 말없이 입에 넣었다. 엄마는 나를 등진 소파에 앉아서 말없이 TV를 보셨다. 무슨 맛이 나는 지도 모를 자극적인 라면을 씹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 외식에서 토하 듯이 먹던 그 모습과 같았다. 나는 엄마가 눈치 채지 못하게 매워서 들썩이는 것처럼 연기하며 눈물을 참아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 해치웠다. 그러곤 다시 독서실로 갔다.



4일째였다. 햇빛이 미친 듯이 짱짱한 대낮에 아파트 단지 내에 줄지어져있는 가로수 길을 따라 멍하니 독서실로 걸어갔다. 그러다 대뜸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매미들이 울기 시작했다. 바로 가로수 아래에 있는데 단체로 떼 지어 우니 고막이 터질 듯 깜짝 놀라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길에서 몇 초간 멈춰 서 있다가 빠른 걸음으로 독서실로 갔다.



매미는 땅 속에서만 6년을 지낸다. 그리고 나무에 올라와선 겨우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하다 가버린다. 일주일 뒤에 죽을 걸 알면서도, 알기에 오히려 그들은 끝까지 해온 것에 따라 짝을 찾기 위해 밤낮을 운다.


일기를 썼다. 매미 소리. 내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지난 시간 동안의 나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냥 해왔으니까 하던 대로 끝까지 해보면 대학은 안 되더라도 다른 길은 생기겠지. 그 순간부터 다시 길을 되찾은 양 하던 것들을 펼쳐 공부했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은 당연히 빠르게 흘러갔고 원서 쓰는 시점이 되어 몇몇 친구들에게 있었던 일을 터놓았다.



원서를 넣는 데만 또 담임하고 부딪혀서 바쁘게 학원에 뛰어가면서 짬 내서 울고 그랬다.


애들 다 지칠 때인데 교실에서도 잠깐 울었다. 미안했다.



그 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보러 다녔다. 전부 서울권이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차를 타고 길을 찾아 가야했다. 엄마가 함께 가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엄마는 간만에 멀리까지 나들이를 나온 것만 같아 신나하셨다.



한 번은 아빠가 역까지 엄마와 나를 데려다주셨는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제대로 된 결과 하나 나오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셨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아빠랑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을 다 치뤘다. 결과만 기다리는데 한 주 동안 차례대로 하나 씩 발표가 났다. 가장 가고 싶었고 합격을 한다 해도 말이 안 되는 학교는 제일 마지막에 발표가 난다. 그 앞에서부터 다른 학교들이 하나 둘 씩 떨여졌다. 이럴 줄 알았지만 조바심이 났다. 마지막 날 아침에 대뜸 수능특강을 펼쳐서 공부를 했다. 반 친구들은 내가 수특 공부를 아침부터 하는 광경을 보고 새삼 수능이 진짜 다가왔다는 걸 느꼈더랜다. 오후 2시 발표였다. 그 전까지 멍하니 책을 들여다보며 대학 안가면 뭐하고 살고 뭐하고 글을 쓰지라는 생각만 반복했다. 앞이 캄캄했다.



11시쯤 갑자기 옆반 친구가 방금까지도 자다가 일어난 모습으로 허겁지겁 나에게 달려왔다. 방금 잠을 자다가 내 꿈을 꿨댄다. 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내 꿈이랜다.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12시 이후에 오라고 돌려보냈다. 다시 돌아온 친구는 꿈 얘기를 했다.



교실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교실이 새하얀 시멘트 벽 공간으로 바뀌었고, 벽에는 복숭아들이 주렁주렁 열렸대. 거기서 태몽이냐고 물어봤다가 욕을 먹었다.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복숭아들을 구경하는데 그 모든 복숭아들이 갑자기 우수수하고 떨어져 너저분해졌다. 그런데 딱 하나만이 벽에 멀쩡히 붙어있었는데, 아주 예쁘고 빛이 나는...


‘감’ 이었대.


...진짜임.


암튼 친구는 그 가장 예쁜 감을 구경하다가 따내려는 순간 뒤에서 농장주인(?)이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대. 그리고는 저 친구가 제일 예쁘지? 라며 그 사람과 친구는 감을 구경하고 있다가 잠이 깼다고 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하고 잠깐 웃다가 다시 사색이 되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방방 뛰면서 웃고 떨다가 수업을 들어갔다. 그래봤자 자습이었다. 몰래 제출하지 않은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가장 마지막 구석 칸 변기위에 올라앉아 있다가 딱 2시가 되는 순간 조회를 눌렀다. 그 결과가 떴을 화면을 손으로 가리고 5분을 가만히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지내왔던 모든 순간들...주마등이 스쳐지나가며 내가 작가 되겠다고 천진난만하게 굴고 그러면서도 꿋꿋이 공부해내고 상 받고, 그러던 순간들.


정신 차리고 조심스레 손가락을 벌렸다. 파란색 글씨가 나와서 더듬더듬하며 화면을 마주했다.



합격이었다.



벌벌 떨다가 선생님께 연락했다.


그러곤 엄마한테 전화했다. 세 번을 해도 안 받으셨다. 급한 마음에 언니한테 전화했다.


안 받았다. 조금 뒤 카톡으로 왜 전화했냐고 언니한테서 답이 와서 대뜸 캡쳐본을 보냈다.


집전화로 전화했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받으셨다. 소식을 전하며 왜 전화 안 받느냐고 화를 내면서 울었다. 연락을 끝내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빠 생각이 났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가 복도에서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수업시간이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붙잡고 울어댔다. 반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맞이해줬다. 연락으로 5층에 있는 친구도 소식을 듣고, (우리는 6층이었다) 소리 지르는 걸 듣고 다른 반 친구들도 내 소식이라고 감지했는지 쉬는 시간이 되자 축하하러 친구들이 가득 몰려왔다. 아직도 울고 있던 나는 친구를 껴안고 울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우리 반 복도가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한테 응원을 받고 있었구나. 사랑 받고 있었구나,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가득했다.



저녁 시간쯤 되어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다. 소식 들었다고,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눈물이 나지도 않고 멍하니 그 문자를 들여다봤다.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집에 갔더니 평상시랑 똑같았다. 별 큰 경사가 나지도 않았다.


그 주 주말에 친구들한테 축하케이크를 받고 폭죽놀이를 했다.


집안은 늘 똑같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바깥에서 축하받고 응원 받고 사랑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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