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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Jul 19. 2022

줬다 뺏는 행복_코로나 격리 후기

떫은 일상_2022. 3. 21

사실 격리라는 게 별 거 없는 게 내 친구 왈 한 마디로

‘줬다 뺏는 행복’

같다.

일단 증상이 느껴지면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세상을 흉흉하게 만들어버린 바이러스 따위가 드디어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니. 뭐 짜릿함이라든가 벅차오름이라든가 마침내 마주치게 된 바이러스에 대해 그딴 변태 같은 희열은 전혀 없다. 더구나 요즘 같이 속속들이 오미크론에 감염되고 있는 시기 상, 나도 코로나 걸리면 어떡하지, 라기 보다는 나는 코로나 언제 걸리지? 와 같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하는 추세였는지라, 내가 걸렸다는 것에 놀랍지도 않았다. 증상이 하나 둘 맞아 떨어질 때 나와 지난날에 만난 친구들에게 오히려 미안했지 그냥 독감 또 걸려버렸네 아 곧 진짜 아프겠구나 벌써부터 피곤하네 그러고 보니 증상 있는 것부터 나 아프네 며칠 전에 꾼 꿈이 이 뜻이었던가 라며 주저리주저리 무의식을 이어나가보다 보면 어느 새 자가진단키트는 희미하지도 않고 아주 선명하게 두 줄을 보여준다. 양성이라는 결과가 떠도 정말 한 치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미건조했던 내 반응을 스스로 느끼길, 머릿속으로 ‘이게 임테기(임신 테스트기)’가 아닌 게 어디야. 같은 말도 안 되는 잡생각이나 들어찼다.

참나, 구석에 쓰지도 않는 콘돔이 가득이었다. 저거 다 유통기한도 지났을 텐데 확인해봐야지.

우선은 나와 만났던 친구들에게 한 번 씩 검사해보라는 연락을 보냈다. 그 핑계로 연락하고 싶은 친구에게도 문자를 넣을 수 있다는 게 내심 좋았던 것 같다. 이딴 걸 기회로 생각하다니. 아무튼 내가 연락 넣은 김에 내 생각 좀 해라 친구야.

그러고 나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가 양성이 떴다니까 좋아 죽는 듯이 웃어대셨다. 옆에서 아빠가 무슨 일이냐 건성으로 물어보고 덩달아 피식 웃으시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본가에서는 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이 제일 먼저 걸렸었고, 격리 기간이 끝나가는 사이에 엄마가 양성이 뜨면서 아빠는 바로 짐 싸서 집을 나가버리셨다. 알고 보니 본인도 잠복 기간 이었어서 이틀 뒤 양성이 뜨고 아빠는 다시 제 발로 집으로 들어오셨다는 얘기. 각자 다른 지역에 있는 언니와 나는 각자대로 지내고 있었고, 3차 접종도 맞았던 나는 애초에 평일에 전부 출근을 하는 데다 퇴근하고는 주구장창 약속에, 거의 내내 바깥에 나가있었으니 이쯤 되면 안 걸리는 게 대단하다 싶어 하던 참이었다. 고로 우리 가족 안에서 코로나가 걸린다는 건 이제 우스운 안부 정도가 되어버린 거다.

문제는 내가 혼자 사니까...평소에도 밥 해먹기를 그렇게 귀찮아하는데 아프다고 얼마나 해먹겠는가. 그렇지만 약을 먹기 위해선 당연히 끼니를 때워야하는 법이며...우선 초반이니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해 장을 보러 가기에도 무리였다. 격리해야 되는데 장보기는 무슨. 집 바로 앞 병원에 가서 2시간이나 걸려 PCR검사를 받고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았다. 병원에서 양성이세요, 하고 뭘 쓰라고 종이를 주시는데 새삼 나, 진짜 코로나 걸렸구나 했다. 되려 본인이 양성인 것에 놀라시는 분도 계셨는데 간호사들이 무미건조했다. 일상인 듯이. 20살 때 거의 병원을 기어가서는 독감 검사하고 독감인 게 판정 났을 때 간호사분들이 어머 어떻게 해, 라며 걱정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데 이젠 코로나가 걸려도 이런 장면이다. 세상 많이 변했다. 아주 짧은 사이에.

아무튼 또 코로나 핑계로 엄마에게 부탁해 쿠팡으로 식재료 몇 가지를 주문했다. 그래봤자 다 직접 해먹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즉석 식품을 부탁해봤자 엄마가 사주는 건 라면 정도이니, 식재료 사주는 것만 해도 만족해야한다. 생활비를 끊어버리겠다며 이판사판인 상황에 코로나가 걸린 핑계는 감지덕지였다. 계란 아껴 먹어야지.

시작된 고통은 2~3일 정도만 가고 그 이후로는 기침이 나오며 목이 아픈 게 다였다. 한 4일까지는 코가 막혔다. 다들 증상이 다른 것 같다.

난 집 안에서만 있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렇게 힘도 다 빠지고 돈도 없는 상황에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천국이었다. 우선 잠을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밥 해먹는 건 귀찮지만 일단 챙겨먹고, 못했던 게임하고, 책 보고, 그림 그리고, 큰 맘 먹고 안 본 드라마들을 한 번에 다 본다던가, 그런 잉여같은 짓들을 몰아서 했다. 그냥 자택 휴가였다. 개꿀. 그리고 6일차가 되었을 때 좌절했다. 무슨 일주일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 약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걸리면 나라에서 식량도 배달해주고, 약도 배달해주고, 적어도 2주는 격리하고 그러더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이 시기에 걸린 게 은근히 억울했다. 내 휴가, 가지 마. 그렇게 다시 출근해야하는 날이 다가오고, 그 꼴을 본 내 친구가 “줬다 뺏는 행복 같군.”이라고 한 마디 했다. 명확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격리기간이란 그렇다. 아프니까 맛이나 봐라, 하고 자유롭게 가둬놓고...이건 가둬놓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백신패스도 안하는데 내가 분리수거 하러 내려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판이었다. 단지 양심의 결정일 뿐. 일요일 밤 중에 부장님께 연락드렸을 때도 ‘별 거 없어, 나도 걸려봤거든.’ 이라는 답장에 허허실실 웃음이 났다. 우린 이제 바이러스에 감염 되도 이렇다 할 일상이지~라는 새 세상을 맞이했다. 격리하면, 그냥 그게 가장 크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는 배로 일하기 싫어진다는 의미. 한 번만, 한 번만 더 아팠으면 좋겠다. 한 번만 걸리고 끝나는 게 대체 뭐람. 그게 감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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