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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Aug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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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20 수

가끔은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빼고 다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까지 모든 사람들이 꼴보기가 싫고 신경 쓰인다면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결론적으로 ‘나’ 하나가 세상에 사라지는 게 명확한 답이 아닐까.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그냥 일이라던가, 현실적으로 당장에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진다.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계속 일이 들어오고 일에만 신경 쓰게 됐으면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한다. 책 같은 걸 읽는다거나 해선 안 된다. 책은 글이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체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청소나 집안일을 끊임없이 해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지도 모른다. 내 강박증은 항상 숨겨진 내면의 영향을 받아서였던 것만 같다.

그리고 솔직해지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 순간을 괜찮게 떠넘길 수 있어졌을 때, 그 때가 돼서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까진 자신이 없다. 무너지는 게 너무도 무섭거든.

엄청 아팠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렇게 잔인하게 아픈 게 아니라, 신체적으로 상처가 입혀지거나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몸살이 일어난다거나. 그렇다면 이 아픔보다 다른 아픔이 더 고통스러우니 그 아픔을 느끼는 데에 정신이 쏠리지 않을까.

그래서 굶는다. 식욕이 사라진 다기 보다는 배고픔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데도 굶는다. 그러다보면 배가 고프니 먹고 싶은 거라던가, 뭐 그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찰지도 몰라서.

그 방법은 얼마 못 가는 이유는 이렇게 괴로워서 계속 굶으면 내가 살이 빠질까? 라면서 극도로 바닥을 치고 있는 내 자존감에 대해 또 건드리기 시작한다. 끝없는 자기혐오.

못생겼고 몸매도 별로고 키도 작아 피부도 더럽고 예민해 머릿결도 별로고 몸에는 털도 많아 근데 심지어 성격도 더럽고 이렇게나 예민해서 혼자서도 지랄발광을 하는 데다 따지는 건 또 많고 현실적으로는 돈도 없는 거지에다가 그렇다고 능력이 엄청나게 있는 것도 아냐 그걸 뒷받침해줄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야 당장에 날 애정으로 감싸줄 큰 대상이 있지도 않아 경험도 많이 없어 덜 떨어져 융통성이 지독하게도 없어 무식해. 이렇게나 엉망인 나는 그럼 왜 살아가지? 라는 끝에 결국 도달해버린다.

괴로워죽겠는데 그걸로 인해 속이 답답하고 굶어서 건강을 해치는 걸로 조금이라도 외형이 괜찮아질까를 또 걱정하고 있는 이 새끼가 진짜 한심해서 미치겠는 거지.

또 이불 속에 잠겨 들어가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곤 눈을 감고 있었어.

잠은 오지만 당연히 또 잠에 쉽게 들지는 못하겠지. 아, 약에 의존하는 하찮은 몸뚱아리.

그렇게 잠겨있으면 어느 새 하늘도 어두워지고 조명 하나 켜지 않은 내 방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1분 1초까지도 고독을 곱씹으며 오한에 떤다. 그러다 토가 쏠리듯이 울컥 눈물이 나오기도,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한다.

그게 한계에 달할 때쯤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한다. 많이 지치면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요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었다. 그냥 밝고 희망찬 상상의 형태로 그려진 생생한 미디어.

고민을 하다 20살 때 격하게 벅차올랐던 겨울왕국2를 자세를 잡고 보기 시작했다. 거의 2~3년 만에 보는 거였다. 가만히 보는데 지나가는 대사 한 구절이 나 같이 방황하고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울컥울컥했다.

내용이 2막의 끝쯤 달했을 때, 안나가 엘사를 잃고 올라프를 잃어 앞으로는 혼자서 해내야만 한다는 암흑 속에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장면. 앞으로 뭘 해야만 하는 지, 방황하는 안나의 대사들이 주옥같아서 갑자기 미친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또 다른 길에 던져진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나아가면 되는 거라는 것. 여태까지 곁에 누군가가 있어줬으니, 내 성장을 위해선 나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

물론 안나는 혼자서 해내려고 할 때 자신의 사람들이 나타나 위기의 순간에 곁에서 구해준다.

겨울왕국2를 보길 잘했다, 라고 여기곤 몸을 씻고 엉망인 집안 청소를 하고 다시 누웠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나는 다시 좋아질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일을 하러 나가 하루를 보낼 거야.

2022. 04. 21 목

꿈을 꿨는데 어느 정도 아장아장 걸어 다닐 정도가 된 아기가 있었고, 그 아이는 내 자식이었다. 아이의 아빠가 되는 사람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과 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던 것 같다.

나는 학창시절 학교 대강당 같은 곳 앞에서 아이가 나한테 걸어왔을 때 안아 들어 꼬옥 끌어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이러저러 해서 사랑해, 사랑해, 등등. 계속 어떤 이유를 말하면서 사랑한다고 덧붙이며 울었다. 아주 서럽게 울었다. 품 안에 안긴 아이는 더 없이 해맑게 까르르대고 있었다.

그렇게 기상했을 때는 어젯밤에 잠들기 직전에 다짐했던 마음가짐과는 전혀 달랐다. 솔직히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데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는 건 솔직히 아니었다. 이랬던 적이 한 두 번도 아니니까. 어느 샌가부터 우울이 일상이 되는 모습이 이젠 익숙해서 놀랍고 불안하지도 않다. 다만 바깥에서 나를 비출 때 내 상태가 너무 현저히 드러나게 되면 주변인들이 축 처지고 불안해 할까봐 그게 걱정이 된다. 애써 숨겨보려 하지만 잘 안 될 것이 뻔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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