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만 그렇다고 멀지 않은

기념일과 클래식(13) - 12.5 무역의 날

by 푸르름


추천곡 :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12월 5일이 무역의 날인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무역의 날은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가 무역의 균형적 발전과 무역입국의 의지를 다짐한다는 이유로 제정된 날이다. 그러나 과거 63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였을 때는 대통령이 홍보하여 대대적으로 국가적 축제 분위기를 가질 때와 달리, 지금은 대통령이 축사를 발표하여도 2011년 수출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그만큼 국가의 무역은 과거에 비하여 개인에게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더군다나 무역의 날은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 설날처럼 무언가 기념하기도 어렵고, 어린이날이나 과학의 날처럼 축제를 열기도 어려운 기념일이다. 시민 개개인이 무역의 날을 기리기에는 굉장히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그 어느 것보다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이 ‘무역’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세계사는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시작되어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던 동양과 서양을 이어준 것도 바로 ‘향신료’의 무역 덕분이었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중국 대륙이 붕괴한 것도 대중 무역에 극심한 은덩이의 적자를 본 영국의 ‘아편’ 때문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KOREA란 이름 자체도 고려와의 교역을 한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부르는데서 유래하였으니 무역이란 지금의 우리를 정의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무역의 날 소개하고 싶은 클래식 곡으로는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그중에서도 1악장 ‘신밧드의 모험’을 추천해주고 싶다. 흔히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롯데월드의 놀이기구로 더 유명한 ‘신밧드의 모험’은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한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동양에 대한 가지고 있던 관심을 관현악으로 풀어낸 명곡이다. 과연 이 곡은 어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무역의날 추천하게 된 것일까?

주타 하빈의 귀족 가문 출신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흔히 기본소양으로 배웠던 음악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9세 때 작곡을 배우며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집안 어른들의 전통을 따라 음악보단 우선 해군으로의 길을 따른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피아니스트 카닐레라의 소개로 밀리 발라키레프를 만나게 되며 음악의 즐거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음악클럽에 가입하여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면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18세 때부터 시작한 원양항해 도중 교향곡 1번 작곡하는 기염을 토하며, 당당히 러시아 5인조의 일원으로 주목받게 된다.


이후 발라키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인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업적을 쌓았다. 특히나 림스키는 러시아의 설화와 문학 작품에 화려하고 독특한 관현악 기법을 덧입혀 음악화하며 명성을 날렸다. 이러한 실력덕분에 비록 1881년 무소르그스키가 죽으며 5인조도 사라졌으나 벨라예프와 그의 손에서 국민주의 음악은 더욱 화려하게 계승될 수 있었다. 해군 군악대에서 배운 관악기의 지식을 통해 그는 ‘화성학 실습’과 같은 저서를 남길 수 있었고 그의 산하에서 스트라빈스키, 글라즈노프 등 러시아를 이끄는 뛰어난 작곡가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세헤라자데’는 이러한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열정적으로 창작을 하였던 1888년에 만들어진 그의 대표 관현악 곡이다. 이곡은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천일야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본래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에 크나큰 관심을 보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천일야화’ 부분에서 앞부분과 몇몇 이야기를 추려내어 ‘세헤라자데’라는 지극히 표제음악적인 관현악‘모음곡’을 만들었다.

천일야화는 본디 흔히 알려져 있듯 폭군 샤라아르 왕에게 세헤라자데라는 현명한 여인이 천일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며 폭정을 멈추게 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샤라아르 왕은 본래 평범한 군주였으나 그이 동생으로부터 왕비가 노예와 희롱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 왕비를 죽이고는 매일 처녀들과 동침하며 죽이기를 반복하는데 이른다. 이런 잔악무도한 왕의 마음을 돌리고자 세헤라자데는 자진하여 왕비에 지원하였고 밤마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로 왕을 사로잡아 천일을 이어가게 된다. 천일동안 이야기를 들은 왕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는 명군으로 일어선다는 것이 천일야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이 이야기의 감명받은 림스키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4개의 이야기를 소재로 4악장으로 구성하여 각 곡마다 표제를 달았다. 음악적 주제는 동양적 선율과 아라비아풍의 음조룰 서유럽적 기교로 빚어내어만들었다. 게다가 철저하게 표제적 내용을 중시하여 곡 전체를 들으며 이야기가 떠오를수있도록 의도적으로 작곡했다. 그리하여 림스키는 일관된 흐름이나 전개 등이 전통적인 4악장 교향곡과 비슷하지만 교향곡이 이닌 교향‘모음’ 곡으로 제목을 정한 것이다.

바그너풍의 서사성과 베를리오즈의 오케스트레이션 색채가 뒤 섞인 이 곡은 한 곡 한 곡씩 독특한 특색을 가진다. 각 곡은 소나타 형식에 가까운 튼튼한 구성을 갖추면서 다이내믹하고 음색의 변화가 다양한 관현악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기 고른 네 가지 이야기는 악장 간에는 유기적으로 내용이 이어지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트롬본을 통하여 샤라아르 왕을 어둡게 표현하고 바이올린 독주로 세헤라자데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는 공통점으로 곡을 이끌어간다.


1악장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는 샤라아 르와 세헤라자데의 만남을 제시하면서 첫 악장을 연다. 엄숙한 베이스 모티브가 샤라아르를 상징하면서 서주를 시작과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을 주며 폭군이자 국왕인 그의 위엄을 드러낸다. 정통적인 아랍풍의 멜로디를 사용한 1악장 곡은 세헤라자데가 풀어놓는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가 이어지며 몰입하는 왕의 호기심을 그려낸 것이 주요 포인트이다.

2악장 '칼렌다르 왕자 이야기'에서는 느리고 고요한 동양풍의 선율이 순례 여행에 나선 칼렌다르 왕자를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바순을 통하여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자유분방한 왕자의 이야기에 샤리아르가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3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는 서정적인 선율을 제시하면서 젊은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다운 현악기로 묘사한다.

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난파당하는 배'는 신드바드가 겪었던 거친 항해를 연상시킨다. 이윽고 샤라아르의 주제가 금관 성부에서 느리고 음산하게 반복되면서 배가 난파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마침내 세헤라자데의 이야기가 끝을 맺고, 세헤라자데의 주제와 샤리야르의 주제가 장조로 융합되면서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세헤라자데는 림스키가 남긴 많은 곡 중에서도 군계일학으로 꼽힐 만큼 명곡이다. 곡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무용가 포킨이 안무한 1막으로 된 발레로 재탄생 한 '세헤라자데'는, 1909년 ‘발레튀스’ 발레단을 창단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1910년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3악장만을 이용해 초연하며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림스키의 세헤라자데에 대해 생소한 우리에게도 이곡이 신문을 오르내린 적이 있다. 바로 수많은 클래식 곡을 통해 찬사를 받으며 현재까지 회자되는 김연아 선수가 편곡하여 200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사용한 덕분이다. 당시 세 번째 도전만에 한국인으로는 첫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한 김연아는 프리 곡으로 ‘세헤라자데’를 편곡하여 잊지 못할 선율을 표현해주었다. 4악장 전부를 듣기 어렵다면 당시 김연아 선수의 2009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며 4분 10여 초로 짧게 요약된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해당 곡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역의 날은 다시 생각해보아도 가장 딱딱하면서도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주제이다. 그리고 무역이 물자뿐만 아니라 갇혀 있던 세계인들에게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을 동시에 전해주며 우리의 바로 곁에서 세계의 흐름을 바꿔왔다고 하더라고, 바쁜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방대하면서도 지루한 역사나 제정 의의는 차지하고 눈에 익은 ‘신밧드의 모험’이란 제목과 아름다운 ‘세헤라자데’의 선율을 들으며 그냥 오늘 하루를 귀를 즐겁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서 아 무역의 날이 있구나란 존재 정도만 인식하는 것으로도 이 곡을 듣는데 상당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을 맞이하기까지 25일 정도 남지 않았다. 올해를 끝낸다는 두려움과 새해를 시작한다는 설렘이 교차하는 오늘.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선사한 ‘세헤라자데’를 들으며 자신만의 항해를 즐기실 수 있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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