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과 클래식(11) - 11.11 농업인의 날
추천곡 :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op.37 중 7번 ‘농부의 노래’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가 아니라 가래떡 데이입니다!’
학창 시절만 해도 이 문구를 처음 본 우리는 낯간지러움에 웃음을 멈추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이 표제가 진정으로 가래떡 데이를 홍보하는 것이 아닌, 빼빼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자조적인 모습을 유머로 승화하기 위한 문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빼빼로 데이가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로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되자 학교에서부터 가래떡 데이를 권장하는 모습이 보였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11월 11일에 빼빼로 데이와 더불어 가래떡 데이도 떠올리곤 한다.
11월 11일이 기념일로써 법적으로 지정된 사유는 빼빼로도, 가래떡도 아닌 농업인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다. 1996년 기념일로 지정된 농업인의 날은 1964년 원주시에서 11월 11일을 기념행사로 지정한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대한민국 정부 아니 일제 강점기부터 농업을 권장하는 ‘권농의 날’은 존재해 왔다. 이후 광복 당시 하루 늦춰 6월 15일에 시행한 것을 기점으로 1960, 1973년, 1984년에 각각 권농의 날은 기념 날짜를 변경해 왔다.
당시에는 11월 11일은 법적으로 기념해야 하는 날이라는 상념과 달리, 순수하게 농촌 일손 돕기가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모내기 시기가 빨라질수록 권농의 날도 점점 앞으로 당겨졌고, 1984년 마지막에는 5월 넷째 화요일을 권농의 날로 지정하였다. 이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농촌 일손 동원에 필요성이 적어짐에 따라 1996년 정부는 권농의 날을 폐지하고 법적으로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변경하였다.
이처럼 농업인의 날은 생각과는 달리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날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 초기부터 권농을 강조하였으며, 숙종 때부터는 농업을 권장하는 농업윤음을 매년 담화문 형식으로 반포하여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농업은 근본이자 전통이고, 농업인들의 노고를 기리는 농업인의 날은 보다 의의가 큰 날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뜻깊은 날 어떤곡을 들으면 좋을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곡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op.37 중 7번 ‘농부의 노래’이다.
사실 추수나 축제와 관련된 클래식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농부들을 소재로 만든 클래식 음악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농부와 관련된 곡으로 아는 것으로는
베토벤이 자연을 돌아보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곡한 교향곡 6번 '전원' 3악장(Lustiges Zusammensein Der Landleute,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을 꼽을 것이다. 이곡은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농부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고 춤추는 휴식의 장면을 묘사하며 베토벤의 하나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이와 견줄 만큼 대작으로 꼽히는 곡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사계이다. 앞서 직접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계’하면 비발디의 곡을 떠올린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듣고 나면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음율을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대부분이 강렬하고 격정적이던 기존의 차이코프스키의 곡과는 달리, 사계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우러나는 듯한 음율은 담았다. 피아노 모음곡으로 나온 ‘사계’는 12개월 간의 모습을 서정적인 시처럼 그려낸 명반 중 하나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출판업자 니콜라이 베르나르드가 러시아의 음악잡지 '누벨 리스트'에 싣기 위해 상당한 개런티와 함께 작품을 의뢰하자 이 작품을 작곡했다. 그는 사계에서 1월 화롯가에서부터 12월 크리스마스까지 각 달을 상징하는 12개의 곡을 모아 계절의 변화와 특징을 아름다운 선율을 담고자 했다.
당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차이콥스키는 베르나르드가 작곡의 대가로 지불한 후원금이 가뭄의 단비와 같았던 상황이었기에 고무된 그는 1876년 1월부터 매달 작곡한 곡의 스코어를 보내 누벨 리스트紙에 출판한다. 1875년 12월부터 1876년 11월에 완성된 그의 곡은 매달 어울리는 ‘시’들을 중점으로 작곡되었다. 1월 화롯가에서가 알렉사드르 푸시킨의 ‘화롯가에서’를 모티브로 한 것을 시작으로 12월 크리스마스가 바실리 주코프스키의 시를 배경으로 할 때까지, 러시아의 12개월을 12개의 명시에 맞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작품의 7월 July 'Song Of The Reaper'(농부의 노래)과 8월 'Harvest'(추수)에서 농부들에 대해 노고에 대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콜츠호프의 시를 배경으로 하는 7월 ‘농부의 노래’는 힘차고 빠른 템포의 2분 남짓한 짧은 곡이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서 단순 반복적인 우리의 노동요와 같이 고된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며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흔들어 일하는 모습과 한낮의 바람이 얼굴의 땀을 식혀 주는 상황을 묘사했다. 농촌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농업의 소중함과 노동의 즐거움을 지키는 농업인들의 아름다운 정신은 ‘농업인의 날’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 아닌가 싶다.
역시나 콜츠호프의 시를 배경으로 하는 8월 ‘추수’는 추수의 모습을 그린 곡이다. 10월에 본격적인 수확을 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러시아는 8월이면 수확의 계절이 찾아온다. '8월 추수'에서는 초반 바쁘게 수확을 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리고는 후반부 땀 흘려 수확한 기쁨을 노래하는 모습을 오곡백과의 감사한 맛과 느끼게 한다.
이처럼 1월에서 12월까지의 풍경과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이후 러시아의 글라주노프, 아르헨티나의 피아졸라 등이 작곡한 동명의 작품명에 이름을 올리며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행복한 계절의 감성을 들려주는 곡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농부들의 고단함과 희생, 그리고 농업이란 직업의 아름다움을 7월과 8월 부분에서 표현하며 그들의 노고를 기리며 우리에게 짧게나마 그 현장을 느끼게 하는 고마운 곡이다.
우리는 농업인의 소중함을 미디어에 노출하기보다는 11월 11일이 어떤 날이냐에 열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에 가치를 낮추며 11월 11일이 가지는 본질을 흐리는 모습도 존재한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빼빼로 데이의 상업성을 질타하며 몇몇 단체에서는 반대급부로 가래떡 데이를 과장되게 높이려는 일이 있었다. 농업인들을 위한날에 불필요한 갈등이 전면에 내세워지며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되었다. 나 역시 과거에는 이에 동조하며 여러 부정적인 생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1993년부터 시작된 빼빼로데이도, 2003년 안철수 연구소에서 처음 제안한 가래떡데이도 모두 제품들의 근본이 되는 농업인을 기리는 긍적적인 날이라 생각한다.
무엇을 추억하며 즐길지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러한 추억이 우리의 근본이자 정체성이었던 ‘농업’에서 나왔음을 떠올리며, 아주 잠시라도 농업인들에게 감사함을 떠올리면 모두 의의가 있지 않을까?
유독 추운 날이 다사와 가을이 조기 종영하는 아쉬운 지금. 차이코프스키가 선물해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인 사계 ‘7번 농부의 노래’를 들으며, 11월 11일이 고마움과 나눔이라는 즐거움속에 풍부한 날이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