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빛나는 밤에

기념일과 클래식(12) - 소설(첫눈을 기리며)

by 푸르름



추천곡 :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독서의 계절.

우리는 흔히 가을을 표현할 때 이와 같은 상투적인 어구를 사용한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된 이유는 의학적으로는 일조량의 감소로 인한 호르몬 감소로 사색에 빠진다거나, 역사적으로는 추수의 계절에 이르러 독서를 할 여유 덕분이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푸르른 하늘이 높아지자 생기는 공허함에, 무엇이라도 담고 싶어하는 심리적 이유가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하기에 날씨가 추워질수록 독서 이외에도 수많은 그림 그리고 음악들을 통해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잠에 못 들기도 한다. 또한 때로는 멜랑꼴리 한 기분으로 낮과 밤을 수많은 감정들을 헤엄치며 가을을 짙게 기억한다


올해는 특히나 이상 기후로 인해 가을을 누리기에 매우 짧아 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하기에 이미 겨울의 문이 열리는 입동(立冬)을 지나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늘.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늦가을을 마무리해보고자 클래식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을을 떠올렸을때 그 어느 작품보다 추천하고 싶은 곡은 그림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이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19세기 러시아 5인조로서 러시아의 영웅인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 1839년~1881년)는 민족주의 풍의 음악을 통해 러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영향을 작곡가이다. 후의 그의 투박한 곡과는 달리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6세부터 피아노를 배우는 등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듯해 보였지만, 예상과 달리 피아노 이외 어떠한 가르침도 받지 않은 채 13세 때 근위 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군인 생활은 그의 인생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했다. 그곳에서 화학자이기도 한 알렉사드르 보르딘, 후에 스승이 될 밀리 발리 키예프 등을 알게 되며 좋은 교우관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군대에서 그는 동시에 평생 그를 괴롭힌 알코올 중독 또한 얻게 되버리고 만다.

1858년 20세의 나이 때 군대에서 나온 무소륵스키는 발리 키예프에게 짧게 배운 음악 지식을 끝으로 독학으로만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는 1863년 5인의 동지들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1874년 전람회의 그림까지 짧은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이후 1880년 알코올 중독에 빠지며 공무원마저 해고된 뒤에는 수많은 발작 끝에 1년 만인 1881년 42세로 요절하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러시아 음악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앞서 설명하였듯 어린 시절 피아노만 잠시 배운 무소륵스키는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발리 키예프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 외에는 대부분을 독창으로 배운게 다였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대위법이라든지 화성학이 그의 음악에서는 괴랄하게 짜깁기되어있다 느껴진다. 그러나 이 덕분에 무소륵스키는 자신만의 놀라운 창의력을 악보에 그려내고 러시아 5인조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었다. 구성에 맞추어 표현을 하던 당시와 다르게 인상이란 부분을 탁월하게 음악으로 표현한 그의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20세기 러시아 작곡가(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며 지금까지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작품중에서도 불후의 명작인 ‘전람회의 그림’은 그의 친구 빅토르 알렌산드로 비치 하트만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곡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디자이너이자 화가인 하트만은 1873년 7월 23일 모스크바에서 갑자기 사망한다. 과거 이미 어머니를 1865년에 잃었던 무소륵스키는 이로 인해 기존에 가졌던 알코올 의존증이 극심해졌고 이를 보다 못한 친구들은 하트만을 기리는 전람회를 가지기로 한다.

하트만의 10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람회를 본 무소륵스키는 알코올 대신 ‘만약 이 전람회를 하트만이 보았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속에서 무소륵스키는 한 작품을 감상하고 다음 작품을 감상하려 이동하는 동안 갖게 되는 심리를 변주곡 형태의 ‘프롬나드’(Promenade: 산책이라는 뜻)라는 창의적인 작품을 사이사이 덧붙인다. 마치 작품과 작품 사이 거리에서 오는 수많은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듯한 프롬나드만 보더라도 그의 세심함에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곡에 등장하는 그림 작품들은 1. 난쟁이 2, 옛 성 3. 튈르리 궁전의 공연 4. 비드 위(커다란 폴란드의 우마차) 5.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춤 6. 폴란드의 어느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 7. 리모주의 시장 8. 카타콤(지하묘지) 죽은 언어로 죽은 사람과 함께 9. 닭발 위의 오두막집 10. 키예프의 대문 등이다.

이중 자세히 소개하고 싶은 곡은 두곡인데 그중 첫번째는 5곡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춤’이다. 이 음악은 마치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거리는 소리를 인상적으로 만드는 곡으로, 그림을 보아도 괴상한 달걀을 거꾸로 뒤집어쓴 무용수가 팔다리를 대자로 뻗은 모습이다. 지금 보기에도 해괴망측해 보이는 이 복장은 하트만이 안무가 마리우스 프타파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발레 의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타바의 ‘트릴비’에서 제국 발레 학생들은 여러 새들이나 나비 곤충 등의 옷을 입었으며 이중에 있던 것이 바로 이 방금 태어나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곡은 WWE의 제리 롤러의 주제곡으로도 더 많이 알려진 10곡 ‘키예프의 대문’이다. 클래식 적으로도 프롬나드 다음으로 유명한 이곡은 러시아만의 위엄과 장엄함이 화음으로 표현된 곡이다. 이 곡의 배경이 된 하트만의 그림 역시 거대한 크렘린을 떠올리게 한다.

하트만의 그림이 그려진 역사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로 2세는 공식적으로만 1866년부터 1880년까지 4차례나 있었다. 첫 번째 암살 시도는 1866년 4월 4일 키예프 시에서 벌어졌다. 당시 가까스로 위험을 모면한 그는 러시아 전역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 1866년을 기념하여 키예프 성의 대문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한 경진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하트만 역시 도전장을 내밀며 자신의 건출 감각을 뽐내고자 했지만 결국 대회는 취소되고 말았다. 비록 경진대회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지만 하트만은 자신의 모든 작업 중에서도 특히나 이 키예프 성 대문의 스케치한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하트만이 그렇게 좋아하였기에 무소륵스키 역시 이 곡에 대해 가장 많은 신경을 쓴듯해 보인다. 키예프의 대문은 러시아적 음률과 강렬한 음향으로 왕이 행차하는 듯한 웅장한 느낌을 주며 지금도 인기가 많은 곡이다.(약간의 첨언을 하자면 WWF에서 폴 헤이먼이 해고당하고 제리 롤러가 다시 복귀할 당시 이 곡을 틀고는 왕관을 쓴 채 위풍당당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곡의 숨겨진 묘미가 더 잘 다가온다.)

이처럼 뛰어난 감정선을 지닌 전람회의 그림은 처음에는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의 감상평처럼 만든 피아노 모음곡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이 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편곡을 시도하였고, 그중에서도 모리스 라벨의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더욱 유명해져 최근에는 이 관현악곡 버전이 폭넓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는 검붉게 빛나는 단풍과 주변을 밝게 하는 노란 은행잎 대신 새하얀 눈이 한해의 마지막 풍경을 색칠할 계절이 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수확의 계절’ ‘관광의 계절’그리고 ‘마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이 마감이라 함은 새해를 준비하는 ‘다음 해의 계절’인 겨울과 다르게 가을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이르기까지 3 계절을 정리하는 ‘올해의 계절’이라는데에서 더 도드라지는 의미이다.


오늘 하루 10편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으며 10개월 간의 추억을 회상하며 정리할수 있는 여유를 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떠나보내기 아쉽지만 짧은 가을을 놓아주며 1년간의 괴로움은 흘려보내고 소중함만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한 해 동안 겪은 감정과 경험을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늦가을에 가지는 특권이 아닐까?

keyword
이전 22화농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