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ナミヤ雜貨店の奇蹟)
판타지 장르의 영화는 새로운 세계라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재미를 안겨줍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는 없는 세계를 가져와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이 뭘까?
어쩌면 우리는 어느 날 새로운 눈을 뜨게 될지 모릅니다. 내 영혼을 두드리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요.
이 책에서는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문체가 두드러집니다. 단서 설명, 상황의 추리, 서로의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화에서는 드라마 같은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렇기에 보다 감성적인 측면을 많이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는 아무래도 추리소설을 오랫동안 써서 그런지 장르가 바뀌어도 그 특징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시간, 장소 등을 잘 정리하시면서 보는 것도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딱 3가지, 마을과 보육원 그리고 도쿄만 연결시키면서 생각하면 됩니다. 그 외의 장소는 소설에서 가볍게 언급은 되지만 내용이 나오지 않으므로 무시하셔도 됩니다. 모든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저 장소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언급하고 나서 뒤에 다시 Topic3. 소설과 영화의 내용 차이와 이동 동선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뤄 볼 것입니다.
[마을]
이 이야기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나미야 잡화점이 있는 마을입니다. 원래 저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는 물건의 입고나 발주 관련 상담을 한다고 써놨습니다. 그런데 동네 꼬마들이 이 말을 잘 몰라서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상담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 뒤로 이 곳은 마을의 명소가 됩니다. 여기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잡화점에서 상담을 받은 사람, 또는 그 상담을 받은 사람의 지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보육원]
마을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아동 보호시설입니다. 대부분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학대 또는 가출 등으로 사연이 다양합니다. 구성은 젖먹이부터 18세 청소년까지 두루 모여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불후한 과거를 가진 이들은 전부 이 보육원을 통해 자랍니다.
[도쿄]
고향인 마을을 떠나면서 삶의 목적을 가진 인물들은 전부 도쿄에 와 있습니다. 그들에게 도쿄는 좌절을 겪는 공간이자 동시에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이루는 장소입니다.
위의 3 공간은 모두 현실의 공간입니다.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장소이며 소위 '기적'이라고 부르는 곳은 아닙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다음으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나 미래의 사람들이 저 우편함으로 편지를 넣을 수 있습니다. 즉 시공간을 초월해서 상대방에게 전해집니다. 작품에서는 두 가지 상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기적의 하룻밤-
1) 나미야 할아버지가 33년 뒤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는다.
2) 집에 몰래 들어온 말썽쟁이들(아쓰야, 쇼타, 고헤이)이 33년 전 사람들의 편지를 받는다.
이 소설에서 시간이란 것은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개념이랑 다릅니다. 소설의 구성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떻게 짜여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첫 번째 설정은 잡화점 내부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입니다. 체감상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시계를 확인해보면 수 분 밖에 지나가 있지 않습니다. 이 설정의 주 된 이유는 이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현실에서보다 많은 고민을 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다음으로 두 번째 설정은 잡화점 밖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간다 입니다. 잡화점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갑니다. 그렇기에 밖에 나갔다 온 사람이랑 계속 안에 있는 사람이랑은 느끼는 시간차가 발생합니다. 즉 밖에 나갔다 온 사람은 잠깐 다녀온 것이라 생각하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시간이 엄청 지나갔다고 얘기합니다.
이 부분에서 소설과 영화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저 잡화점 주위를 벗어날 수 없게끔 탈출해도 계속 근처를 맴돌게 됩니다. 즉 저기를 벗어나고 싶어도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저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저 말썽쟁이들 중 한 명이 도중에 나가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가지고 돌아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는 것인데 소설에서는 자발적 의사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기적의 우체함을 통해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싶어서입니다.
이것과 관련 있는 세 번째 설정이 있습니다. 잡화점의 문을 닫지 않고 열어두면 바깥의 시간 흐름과 비슷해진다. 즉 그냥 시간을 정상적으로 흘러가게 하고 싶으면 그냥 밖에 있던가 아니면 잡화점 안에서 문을 열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만일 문을 닫고 있는다면 내부에서 시간을 더 쓰고 싶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말썽쟁이들은 이미 이 원리를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의 우체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과 달리 빨리 탈출하고 싶어 하는 데다가, 이야기 흐름상 어차피 과거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집 안에 더 있고 싶은 지 아닌지는 전개에 딱히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준비한 네 번째 설정이 나옵니다. 과거의 아주 긴 시간은 잡화점에서는 한 순간이다. 이제부터 헷갈리실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설정은 잡화점 내외의 시간 설명은 '속도'의 개념입니다. 즉 얼마나 빨리 흐르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안이 바깥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것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설정 과거의 아주 긴 시간은 잡화점에서는 한 순간이다. 은 '길이'의 개념입니다. 아까 공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저 우체통을 통해서 말썽쟁이들이 33년 전의 상담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상담자들은 날마다 줄지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이 있을 때마다 오는 것이죠. 그것이 며칠에 한 번이 될지 아니면 몇 달에 한 번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말썽쟁이들이 머무르는 고작 하룻밤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들과 상담이 가능하려면 시간의 길이가 비대칭적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즉 예를 들자면, 과거의 상담자는 한 주에 한 번씩 총 4차례의 편지를 넣었다고 하면,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5분에 한 번씩 4번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과거랑 그냥 소통할 수 있다라는 설정 하나만 있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작 하룻밤이라는 시간 한계 때문에 이런 부가적인 설정이 많이 추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냥 말 그대로 '하룻밤의 기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설정은 잡화점의 우체통은 과거 또는 미래로 통한다 입니다. 여기서 과거라 함은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1980년 이전을 의미하고, 미래라 함은 33년 뒤인 2012년 즘을 의미합니다. 1980년도 이전은 나미야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때이고 2012년은 말썽쟁이가 살고 있는 시간입니다.
위의 시간에 대한 다섯째 설정을 이해하셨다면 분명 뭐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과거의 사람이고 그때 동네 사람들을 상담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미래의 누군가가 잡화점에 들어가 과거의 그 시대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시기(~1980)가 겹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재밌게도 이 부분은 영화를 같이 보면 문제가 없는데 소설만 읽게 되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우선 정답부터 얘기하자면 두 상담 시기는 겹치지 않습니다. 정확히 구분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할아버지의 상담은 암으로 입원해서 더 이상 상담을 받을 수 없었던 1979년 정도에 끝납니다. 그리고 그 가게는 비워둔 채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이 돼버립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그 뒤로도 상담의 편지를 잡화점에 넣게 됩니다. 따라서 말썽쟁이들이 상담을 맡게 되는 대상의 정확한 시기는 할아버지의 입원 ~ 1980년 9월 12일(할아버지의 사망 전날) 입니다.
[마을 <~> 보육원]
영화에서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눈에만 보이는 유키코라는 젊은 여성이 나옵니다. 유키코는 보육원의 초대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와 유키코는 서로 젊었을 때 사랑을 했지만 신분과 집안이 맞지 않아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몸이 약해 일찍 죽은 여성이라고 소개되죠. 그래서 영화를 봤을 때는 할아버지의 까마득한 젊은 날의 기억인 어느 사랑했던 여성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선 다릅니다. 둘이 사랑하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건 맞는데 여자가 그렇다고 일찍 죽은 건 아닙니다. 애초에 영화와 달리 아프지도 않았고 보육원을 잘 운영하다 동생에게 물려주고 죽습니다. 게다가 보육원이랑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도 엄청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서로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비극적 로맨스가 아니었습니다.
[마을 ~> 도쿄]
할아버지는 자기를 '그린 리버'라고 소개한 여성의 상담을 받았습니다.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어떻게 하냐는 내용이었죠. 영화에서는 여성에게 답장을 해주고 얼마 뒤에 할아버지가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신문으로 이 여성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 할아버지는 자신의 상담이 이 여자를 혹시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아닐까 하고 크게 비통해합니다.
소설에서는 시간 순서가 좀 다릅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상담해준 미혼모의 자살 소식을 본 것은 입원 전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적 소식을 접한 뒤로는 가게를 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도쿄로 옮겨가 같이 살다가 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이 시기는 말썽쟁이들이 상담을 펼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보육원 ~> 마을 ~> 도쿄]
말썽쟁이들이 상담을 해준 대상 중에 하루미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친척들에게 거둬들여져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친척 집은 큰 경제적 위기를 겪게 되고 그녀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에 있는 작은 문구 회사에 들어가서 사무 잡일을 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돈을 더 벌기 위해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을 하고 있다 나오고 이에 대해서 말썽쟁이들은 그녀를 크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더러운 일이 아니고 서비스직에 가깝다고 생각하죠. 그녀는 상담 편지에 자신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친척분들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상담이 오가면서, 이미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말썽쟁이들은 하루미에게 구체적인 경제적 조언을 해줍니다. 부동산, 주식 등등
영화에서는 하루미가 이런 조언을 잘 듣고 성공하게 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소설에서는 그녀는 경제적 도움이 되는 상담을 받게 된 뒤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호스티스 일에 전념하고 돈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도쿄에서 작은 맨션을 구입합니다. 그 뒤로 일본에서는 부동산 붐이 터지고 그녀는 자신의 부동산 자산을 바탕으로 대출을 받아 또 투자하고 계속 돈을 불려 나가게 되죠.
그러던 중 은행 직원은 하루미가 회사를 세우면 대출을 받는데 더 유리할 것이라 얘기합니다. 이때 하루미는 자신이 했던 호스티스 일의 경험을 살려 이벤트 회사를 설립하게 되고 지금 그녀가 사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그 후로는 홈페이지 제작, 컨설팅, IT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회사를 키워 나갑니다.
[마을 ~> 도쿄 ~> 보육원]
하루미와 마찬가지로 미래로부터 상담을 받은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생선가게 뮤지션입니다. 그는 상담을 통해 본인의 음악은 미래에 남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정작 본인은 유명해지지도 못하고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떠나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는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쳐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소설을 읽게 되니 그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왔으며, 비록 큰 부와 명예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성공은 거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지만 곧 그만두고 음악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 아마추어 콘테스트부터 시작해서 많은 대회에 끝없이 도전하며 실력을 가다듬었고 몇 번은 입선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에서 일하면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낮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금씩 성과를 보여도 그를 찾아주는 음악 관계자는 없었습니다. 데모 곡을 보내기도 했지만 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에서 한 손님이 자신의 보육원에 위문 공연을 하러 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때부터 이 음악가는 전국의 보육원 시설을 돌며 위문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습니다. 비록 난 저기 도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여기 보육원 아이들은 진심으로 나의 음악을 들어준다고. 이들과 함께 소통하고 내 음악을 하는 이 공간이 바로 라이브 공연이나 다를 바 없다고.
그는 자신이 죽는 화재 사건에서 짧은 미래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던 도쿄에서, 자신의 성공하지 못했던 자작곡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을요. 자신이 위문 공연을 했던 보육원의 어떤 여자아이를 통해 그토록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자신의 진지한 음악이 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1979년
나미야 잡화점의 운영 및 상담
가게 중단 및 할아버지의 도쿄 상경
시한부 선고 및 입원
기적의 하룻밤 : 할아버지가 상담해줬던 사람들이 보내준 미래의 편지를 받음
* 이 사이 기간의 상담은 미래에서 아쓰야, 쇼타, 고헤이가 맡게 됨
1980년
나미야 할아버지 별세
2012년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부활
말썽쟁이들의 잡화점 무단 침입
기적의 하룻밤 :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온 편지 상담을 해주게 됨.
전 위에서 기적의 하룻밤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저 초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썼을 뿐, 그 자체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진짜 '기적'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소설 역시 제가 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그들이 풀어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존재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다 알려드릴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시면 그런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우연의 연속과 사람들의 인연을 보면 이 또한 대단한 확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제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 속의 '기적'은 아닙니다.
판타지 장르를 보면 때때로 주목해야 할 것은 판타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현실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소설에서의 주제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만 초점에서는 약간 차이가 존재합니다. 영화에서는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인연과 그 따뜻함을 느끼시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쭉 읽다 보면 이것은 상담의 형식을 띤 자신과의 대화라는 느낌이 듭니다. 즉 누군가와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뭐 철학자처럼 '산다는 건 무엇인가'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먹고살기도 힘든 현실에서 그런 깊은 고민을 갖는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죠. 하지만 이 작품의 인물들은 그런 힘든 세상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물들은 전부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고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의미란
안개 같은 현실 속에서 진짜 자신과 조우하는 시간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