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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스러운 곰 Apr 20. 2019

작품이 원작과 만나는 시간. 곰돌이 푸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디즈니는 우리의 어린 시절에 참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다 떠올리지 못하고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이는 상관없이 그때에 우리는 마음으로 전하는 진실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닌,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고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역시나 영화나 소설과는 또다른 재미가 많았습니다.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쉽고 간단한 내용으로도 마음에 바로 와 닿는 감동이 그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월트 디즈니




CHAPTER 1. 크리스토퍼 로빈. 길을 잃기 시작하다.



어린 시절 로빈은 늘 숲 속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동심과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는 동물 친구들은 언제나 로빈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찾아주는 것도 로빈의 역할이었죠. 그렇기에 그 시절의 로빈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놓지 않는 아이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이가 든 로빈은 드디어 숲을 떠날 때가 옵니다. 바로 부모님의 뜻대로 도시에 있는 기숙학교로 가게 되었던 것이죠. 원래 로빈은 학교를 다니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멀리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로빈에게 순수한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 친구들이 멀어진다는 것은 자연스레 로빈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복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로빈에게 2가지 시련이 찾아옵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전쟁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로빈은 마음속에 '책임'이란 무게를 지어주게 됩니다. 즉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책임감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린 시절 갑작스레 큰 충격으로 만들어진 책임감은, 슬프게도 자신의 순수한 행복을 발견하는 로빈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전쟁을 겪게 뒤의 로빈은 과묵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의 행복을 감추고 과감히 지워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죠.



취직을 해 일을 시작한 뒤로 그는 이제 가족과도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거의 매일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기에 가족과 같이 저녁을 먹기도 힘듭니다. 이때 즘되니 과연 그에게 무슨 행복이라 할 것이 남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는 가족을 지킨다는 행복이 남아있다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에게 책임감과 희생은 숭고한 가치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행복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이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도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지치고 삶에 치여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결국 저녁 식사를 같이 못해 남게 된 빈접시


로빈은 그러면서 항상 다음과 같은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아.
열심히 일을 해야 이루어져.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너무나도 맞는 말 입니다만 아무리 좋은 말도 방향이 올바르지 않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길을 잃기 시작한 로빈에게는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도 행복은 와 닿지 않았을 테니까요.








CHAPTER 2. 크리스토퍼 로빈.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다.



어린 시절 푸를 보았던 기억이 남아 계시는 분이라면 헤팔럼과 우즐이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헤팔럼이란 사람의 꿈을 먹는 코끼리 괴물입니다. 그렇기에 숲 속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헤팔럼을 만나 쫓기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죠. 위즐이란 우리를 괴롭히고 쫓아내며 소중한 친구들의 사이를 떨어트려 놓는 족제비 괴물로 설명됩니다.


때로는 백슨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괴물을 사실 등장하지는 않는 숲 속 친구들이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어린아이들이 만나면 안 되는 상징으로서 마음의 순수를 파괴하는 괴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로빈은 숲 속 친구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이런 괴물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자였죠.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이 된 사람들 마저도 여전히 헤팔럼과 위즐에게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과 꿈을 좇는 순수한 마음은 나이랑은 상관없으니까요.



친구들 집을 돌아다녀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가 흘러가다 푸가 갑자기 친구들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슬픔에 잠깁니다. 숲 속에는 짙은 안개가 드리우고, 순수한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 친구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로빈이 분명 지금 방황을 하고 잘 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죠.


즉 이것은 푸랑 동물 친구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로빈이 지금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푸는 어쩌면 헤팔럼과 위즐이 다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죠.


(좌) 거실에서 아내와 딸이 음악을 틀고 놀자 문을 달아버리는 로빈                                               (우) 로빈을 찾아 나서는 푸


로빈은 저때즘 가족과도 완전히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죠. 주말에 시골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는데 갑작스레 일이 생겨 아내에게 못 간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차피 못 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당신 짐은 어차피 챙기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잘 못 돌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죠. 그러던 중 숲 속 친구들이 사라져 찾아야 했던 푸는 로빈을 찾으러 갑니다. 언제나 자신들이 사라지고 헤맬 때 찾아줬던 것은 로빈이었으니까요. 왼쪽 사진은 행복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장면이고, 오른쪽 장면은 아직 남아있는 내면의 행복이 기웃거리는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즉 푸가 자신을 찾아옴으로써,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동심이 돌아왔다가 아닙니다. 너무 삶에 고통스러워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행복이라도 바라도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어른이 된 로빈은 푸가 너무 거슬렸습니다. 비합리적이고 본능에 충실하는 것 같은 푸는 한낱 쫑알거리는 꼬마 아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로빈과 함께 숲 속으로 돌아온 푸는 친구들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헤팔럼과 위즐이 있다고 적혀있다고 꽂아 놓은 팻말만을 피해 빙빙 돌고 있습니다. 이에 로빈은 나침반을 사용하지 않고 바보같이 행동하는 푸를 보고 '넌 생각이 작은 곰'이야 라고 마구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푸는 사라져 버리죠.


하지만 푸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체 하는 친구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좀 먹고 현실의 행복과 멀어지게 만드는 괴물들로부터 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친구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로빈은 그것을 깨닫기엔 너무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숲 속에선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금속소리가 들려옵니다. 마치 어린 시절 헤팔럼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소리가 말이죠. 로빈은 걸음이 빨라지고 이내 달리기 시작하더니 '그럴 리 없어, 존재하지 않아'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렇습니다. 로빈은 어린 시절의 마음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이 아닙니다. 잠시 눈이 멀어 길을 잃은 것뿐이죠. 그는 나이를 먹었음에도 헤팔럼과 위즐의 존재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파 놓았던 깊은 구덩이에 빠집니다. 푸와 친구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괴물들이 오면 가두기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 장면은 자신이 위즐이자 헤팔럼이 돼 버렸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CHAPTER 3. 크리스토퍼 로빈. 마음의 눈을 뜨다.



구덩이 빠지고 로빈은 잠시 동안 정신을 잃습니다. 그리고 헤팔럼이 등장하는 꿈을 꾸게 되죠. 로빈은 이때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실체와 마주치게 됩니다.


코끼리 괴물 헤팔럼


넌 책임을 져야 할 가장이야.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아.
넌 패배자인가 승리자 인가.
아무것도 그냥 되는 것은 없어.


그를 옭아매고 있는 말들이 그를 짓누릅니다. 저런 환청이 계속 들린 채 살아왔다는 것이 그가 자신을 얼마나 희생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와야 했는지 얘기해 줍니다.



그리고 마구 소리 지르면서 결국 푸를 떠나버리게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왜 나를 다시 찾아온 거야?  
난 더 이상 애가 아니야.
책임감이 막중한 어른이라고


푸가 반문합니다.


확실해? 하지만 넌 크리스토퍼 로빈이잖아.


푸의 눈에 로빈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시절의 로빈이나 다름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로빈은 아직도 겉으로 실존하고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질적 가치만 눈에 보이는 인물이었숩나다. 그렇기에 내면의 행복과 가치를 얘기하는 푸의 말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푸는 로빈이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였죠.


(좌) 로빈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아내 에블린                                                  (우) 꿀이 든 유리통이 깨저 버리는 장면


아내 에블린은 로빈이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없다고 통보했을 때 이것은 당신답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며 과거가 아니라고 말하죠. 주말도, 가족도 모두 당신의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나 에블린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푸나 숲 속 친구들처럼 내면의 행복과 순수를 상징하는 대상과는 다르죠. 그렇기에 에블린은 실제와 꿈 사이에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로빈이 길을 잃고 있지만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고 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빈에게 언제나 곁에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어릴 적 동물 친구들은 '난 세상에 하나뿐인 나' 이란 말을 달고 다닙니다. 항상 통통 튀고 어디로 쏘다니던 간에 저런 말을 떠들어 댑니다. 모든 동물친구들이 각자 개별적인 성격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로빈 안에 있는 여러가지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들 모두가 각자 의미 있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유일하게 자신만이 될 수 있는 그런 하나뿐인 나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로빈은 어른이 되어 그런 것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순수함의 회복을 위해 상징적으로 찾아온 푸가, 왜 등장했는지는 깨닫지 못한 채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나다우면 안 돼.
사람들은 다른 걸 싫어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면 안 돼.


하지만 악몽에서 깨어난 로빈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그렇게 사라진 친구들을 찾으며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 나갑니다.










CHAPTER 4. 크리스토퍼 로빈. 다시 꿈을 꾸다.



마침내 로빈은 숲 속 친구들을 모두 찾는 것에 성공합니다. 아까 소리치고 쫓아낸 푸만 빼면 말이죠. 처음에 숲 속 친구들은 어른이 돼서 돌아온 로빈을 보고 모두 헤팔럼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들 눈에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잃어버린 괴물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들을 진정시키고자 로빈은 헤팔럼을 쫓아내는 시늉을 합니다. 우산으로 서류가방을 찌르고 던지는 흉내를 내면서 자신이 괴물을 무찌르는 것처럼 말이죠. 일이 전부였던 그에게 있어서 서류가방을 내팽개치는 것은 그가 내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이요르는 "놀이를 하고 있어. 크리스토퍼 로빈이야. 너로구나"라고 말하죠. 그리고 혼자 앉아 있던 푸도 발견합니다. 그리고 사과를 합니다.



내가 잘 못했어 푸.
내가 어리석었어.
넌 생각이 작은 곰이 아니야.
마음이 아주 커다란 곰이야.


친구들을 다 찾은 시점에서 윌의 순수한 내면은 회복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죠. 바로 어릴 적 그 시절처럼 자신들을 위협하는 헤팔럼위즐을 쫓아내는 일 말입니다. 괴물처럼 되어버린 로빈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진짜로 로빈을 괴롭히는 그런 악당들이 존재했으니까 말이죠. 그들을 물리쳐야 비로소 로빈은 진짜 자신이 될 수 있었습니다.



로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로 혼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딸 메를린과 동물 친구들이 그를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달리는 기차 길에서 동물들은 하나씩 '본 대로 말하기' 놀이를 시작합니다.


구름 덤불 풍선 행복
혼란 걱정 재난
모험 도전 무모함
수치 부끄러움 모욕


저기 있는 말들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것들은 로빈의 감정과 생각을 대표하는 동물들이 솔직하게 내뱉은 말들이기 때문이죠. 있는 그대로 걸러지지 않고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은 로빈 내면의 순수한 정체성은 거의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로빈은 회사에서 헤팔럼과 우즐과 맞서게 됩니다. 직원들에겐 주말도 없이 일하게 하고 인원감축을 강요한 부사장을 말이죠. 게다가 그는 회사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주말에 골프를 치고 왔습니다. 그래 놓고 자신도 공을 세운 것 마냥 떠벌리고 있었죠.


남들을 부리면서 그들을 힘들게 하고 인생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존재. 바로 저런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헤팔럼과 우즐이었습니다. 로빈은 이전까지 저런 존재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로빈은 바뀌었습니다. 자기 회사의 수익 부진의 이유가 목표로 잡아놓은 고객층에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부유하고 사치를 누리는 그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위즐과 헤팔럼처럼 힘을 독점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죠.


로빈은 자신들의 고객이 그런 상류층이 아니라 여기 일하는 직원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올 필요가 있는 사람. 일과 별개로 순수하게 자신의 행복이 필요한 사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들을 고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이죠.



마음속과 현실의 괴물을 모두 물리친 로빈은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푸와 로빈은 숲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같이 앉았습니다. 평화로운 숲을 보며 둘은 대화를 나눕니다.



로빈,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오늘은 오늘이야.
그렇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
나도 그래. 푸.
로빈, 오늘이 어제였던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그렇습니다. 이제 로빈은 친구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길을 헤맨다 해도 찾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과거의 로빈은 아버지의 죽음, 가장으로서 책임감,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포 , 지켜야 할 가족 등에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현재의 행복을 잊은 채로 항상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 넣어 자신을 짓누르게 했습니다. 과거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안개가 되어 로빈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명확하고 당연한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에블린이 했던 말처럼 행복은 현재 진행형이죠. 과거의 행복을 좇는 것은 현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푸는 말합니다.



이젠 길을 잃지 마. 혹시 오늘의 너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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