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누군가 제게 "소설에서 영화를 만들 때 뭐가 빠지나요?" 물어본다면
우선 방대한 내용이 간추려질 것이고, 그다음으로 복잡한 인물관계가 정리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원작의 요약판인가요? 아니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 또한 소설에서 영화로 각색될 때 내용이 좀 빠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오히려 잘 됐다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자세하고 무거운 묘사보다는, 빠르고 유쾌한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완성도나 내용을 떠나서, 영화란 장르를 통해 유쾌하고 가벼운 코미디로 재조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 요나스 요나슨
[알란]
스웨덴의 말름셰핑이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알란이라는 이 노인은 올해 나이가 100살이 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할 때 그는 창문을 열고 도망쳐 버립니다. 아무래도 양로원이 지겨웠던 것 같은 그는 그대로 아무 버스나 잡고 훌훌 떠나버립니다.
전체적으로 소설과 영화의 전개는 현재와 과거에 알란의 에피소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의 성격과 살아온 인생을 알 수 있죠. 영화에서 본다면 그는 좀 더 괴짜 같은 이미지가 강합니다. 뭔가 진지하게 몰입한다기보다는 가볍고 충동적인 느낌입니다.
소설은 좀 다릅니다. 알란은 본능에 충실하고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무언가 꽂히는 일은 확실하게 빠져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한 마음의 선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나쁘다 좋다를 확실히 느끼며, 이것을 해야겠다 하지말아야 겠다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선 좀 더 우연적인 운명을 살아가는 괴짜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알란은 어릴 때부터 '폭발'에 흥미가 많습니다. 터트리고 부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성격이라는 말이겠죠. 그렇게 위험한 장난을 일삼던 그는 어느 날 사고로 마음의 식료품상 아저씨의 몸을 터트려버리게 됩니다.
그 길로 정신병원에 잡혀간 그는 여러 전문가들에게 조치를 당하고 몇 년 뒤에 풀려나게 되죠.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우리는 그를 폭발물에 집착하는 미치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선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흥미분야에 파고들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새로운 화약 제조 공식을 세우고 도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알른은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폭약 회사에 취직한 것뿐만이 아니라, 15살에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자신의 회사까지 창립하게 되죠. 영화에서는 폭약 회사에 들어간 것이 성인이 된 나중의 일로 나옵니다. 소설에 따르면 그의 회사는 그가 꾸준한 노력을 들인 결과 결국엔 꽤 고객을 확보하고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물론 그가 실험을 하기 위해 집 근처에 설치해둔 폭약에 마을의 식료품상 아저씨를 날려버리고 잡혀가기 전까지는요.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앨러모스의 핵개발 시설에서 일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폭발'에 관한 연구를 한다기에 흥미가 생겨 취직을 하게 된 것이죠. 물론 그는 학교를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커피를 서빙하거나 주위 정리를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핵개발을 코 앞두고 마지막 풀리지 않는 공식 해결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에 알란이 지나가다가 다이너마이트에 비유하며 핵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대충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단순히 툭 던진 말이 기가 막히게 해답을 주는 순간이었죠. 이것 또한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대로 그의 인생이 다시 한번 풀리는 우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워낙 빠른 전개라 그가 연구소에서 몇 년이나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없지만 알란은 무려 100년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소설에 따르면 연구소에서 그는 정확히 6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단순히 잡일만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남는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습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다뤄오던 폭약과 설립했던 회사에서 쓰던 화약과는 근본적으로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는 폭약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리와 화학을 기초부터 빠르게 섭렵합니다. 남들이 저녁에 퇴근하고 주말에 쉴 때 도서관에서 계속 공부를 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연구소라는 환경 덕분에 그의 실력과 지식은 나날이 확장돼 갑니다. 마침내 6년이 지났을 때 원래부터 재능을 갖췄던 그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죠. 위에서 핵개발의 결정적인 해결책을 영화에선 간단히 던진 말처럼 보였던 대사도, 사실은 소설에 따르면 그가 도서관에서 며칠 밤을 끙끙 싸매다 풀은 답이었습니다.
반대로 영화에서는 그가 그렇게 진지한 사람도 아니며 똑똑한 사람도 아니라고 나옵니다. 저 장면은 스웨덴의 수석 물리학자가 알란을 테스트해보는 장면입니다. 잘난 체하는 물리학자는 알란이 거의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가치를 무시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영화에 따르면 맞는 말입니다. 그는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핵개발도 우연히 일조하게 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소설에서 그는 일부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밥 먹는 자리를 포함해서 누군가랑 대화할 때는 항상 일상의 가벼운 얘기만을 늘어놓죠. 그것은 알란의 성격입니다. 이 배경에는 그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있습니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무엇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어머니의 저 마지막 말은 알란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주위에 나쁜 상황이나 힘든 일이 닥쳐도 화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춥니다. 오히려 사람들과는 편안하고 가벼운 얘기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즉 이것은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를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게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영화에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은 좀 다릅니다.
너무 고민하지 마.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고 세상은 살아가게 돼 있어
확실히 느낌과 맥락이 다릅니다. 소설에선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를 중심으로 살아가게 하는 말이었는데 영화의 대사는 그런 게 없죠. 그렇다고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를 수동적 성격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소설에 비해서 영화에서 알란은 확실히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개척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Fact1. 율리우스는 어쩌다 폐차역에 살게 됐을까?
율리우스는 알란이 말름셰핑을 떠나고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입니다. 여정에 처음으로 합류하게 된 일행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가 살고 있는 뷔링에 마을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조용한 시골 동네로 보입니다. 뭐 그도 알란만큼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살아도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우연의 진행이라는 성격을 더 강조하려 했듯이 율리우스에 대한 설명은 특별히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유 없는 설정은 존재하지 않죠.
소설에 따르면 율리우스는 경찰과 썩 친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전과가 많기 때문이죠. 농부의 아들로 자란 율리우스는 농사에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죽자 그는 자신의 집과 땅을 팔아버리게 되죠. 그리고 그는 목공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나무로 전봇대 5000개를 공급하는 큰 계약을 따내게 됩니다.
문제는 원래 설계했던 도면보다 1m 짧은 나무를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무가 충분히 자라지 않아 요구했던 길이를 맞추지 못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는 누가 눈치채지 못하겠지 하고 진행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전봇대의 높이도 낮아지고 전선줄 또한 낮아지게 됐죠. 덕분에 지나가는 큰 화물이나 마을의 이런저런 것들이 다 걸려서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마을의 전기가 끊어지는 사태를 만들고 큰 손해 또한 겪게 된 그는 마을의 원수 취급을 받습니다. 그렇게 그는 살던 마을을 떠나고 스톡홀름으로 도망칩니다. 그곳에서 그는 물건을 훔쳐 팔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 호텔에서 돈을 털어 지금의 뷔링에 폐차역을 사들여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떠나 조용한 마을로 들어와 깨끗하게 살면 됐는데 여전히 옆집 물건을 털어다가 팔면서 지내죠. 그것뿐만이 아니라 밤마다 계란까지 훔쳐 신선한 아침식사를 합니다. 알란이 방문했을 때 대접을 한 것도 그것이죠. 영화에서 보면 그의 집에 냉동창고가 있는데 전기도 옆집에서 몰래 끌어다 쓰기 때문에 혹시 들킬까 봐 조심조심 작동합니다.
경찰이 찾아와 이 집 사람에 대해서 묻자 옆집 사람은 욕과 저주를 있는 대로 퍼붓습니다. 그의 죄목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얼른 잡아가라고 얘기하죠. 즉 영화에서처럼 알란과 그의 트렁크에 있는 돈에 흥미가 보여 같이 떠나는 것도 맞지만 사실 그는 원래 마을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Fact2. 베니는 어쩌다 그렇게 공부만 하면서 살게 됐을까?
두 번째로 합류하게 된 일행은 식당에서 일하는 베니였습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 따르면 그는 너무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아 어디에 정착하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 공부를 했다가 저 공부를 했다가 하며 가방끈은 엄청 긴 샌님이 돼버린 것이죠. 공부만 하면 인생을 보냈기에 머리에 들은 지식만 많고, 말을 심하게 더듬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얼간이 같은 모습은 소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말도 더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감정 표현도 자신 있게 하죠. 나중에 오두막에서 만난 구닐라에게 고백을 하게 될 때에도 영화에서는 한참 꾸물거리다 하게 되지만 소설에서는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 지지고 볶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오래 공부한 것도 단순히 정착할 공부를 찾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소설에 따르면 그는 10개 정도의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의학부터 시작해서 의학, 종교, 문학까지 많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공부를 한 이유는 자신의 형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그의 형 보세가 있는데 유산의 상속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니와 보세 형제에게 유산을 남기신 분이 유언으로 다음과 같이 남깁니다.
둘이 같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학업을 먼저 마친 사람은 지원금이 중단된다. 두 명이 모두 학업을 마치게 되면 남은 유산을 모두 상속받는다.
즉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돈 걱정 없이 계속 생활할 수 있으며, 형제가 공부가 끝나게 되면 유산을 다 물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깁니다.
원래는 형제 둘 다 용접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동생 베니는 식물학을 배우러 대학을 가게 되죠. 결국 학업을 먼저 마친 형 보세는 지원금이 끊겨 동생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맞지만 괜히 시간이 길어진 것에 대해 형 보세는 화를 내죠.
결국 두 형제는 서로 화를 내며 티격태격 하다 형 보세가 동생 베니의 오토바이를 차 넘어뜨립니다. 이에 격분한 베니는 형에게 절대로 돈이 돌아가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죠.
영화의 베니가 학업의 길을 못 정해 방황하는 것과 달리 소설의 베니는 형을 골탕 먹이고 싶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죠. 어차피 유언대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지원금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의 학위가 끝나면 다른 학위를 시작해버립니다. 결국 그는 수십 년 동안 10개가 넘는 학위를 취득합니다.
세월이 흘러 남긴 유산은 모두 바닥이 나고 베니의 공부도 끝이 납니다. 당연히 형제가 같이 받아갈 유산 또한 남지 않은 것이죠.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보세는 동생을 원수처럼 취급하며 인연을 끊어버립니다. 영화에서는 보세를 등장시키지 않기에 이런 내용을 빼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Fact3. 알란은 대체 전 세계를 돌면서 얼마나 모험을 한 것일까?
이 소설에서 주인공 알란의 이동 동선이 매우 길고 장황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당연히 다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간추리다 보니 당연히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물관계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를 얼마나 돌아다녔는지는 다음의 지도에서 1번부터 보시면 됩니다.
소설에는 나오지만 영화에서 빠진 부분만을 하나씩 집어보겠습니다.
4번 :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국민당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면서 펼치는 사건(1945~1947)
5번 :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같이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 느낀 알란이 도망쳐 히말라야를 넘어감(1947)
6번 : 이란 테헤란에서 윈스턴 처칠의 암살 시도를 저지함(1947~1948)
* 그다음은 이란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의 힘으로 1번(본국인 스웨덴)으로 귀국함
7번에서 스탈린을 화나게 한 뒤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굴라그 수용소로 가는 것은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든 장면이 있었는데 스탈린에게 큰 모욕을 안겨주었는데도 바로 사형을 당하지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보면서 쓸모도 없는 알란을 죽이지 않은 것이 좀 의아했죠. 하지만 소설에 따르면 알란이 살아남은 이유는 영화와 달리 알란이 진짜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념에 관심이 없어 스탈린을 화나게 하긴 했지만 소련이 핵실험에 실패할지도 모르기에 마지막의 카드로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이죠. 그렇기에 그는 사형을 당하지 않고 수용소에 가게 된 것입니다.
9번 : 수용소를 탈출, 김일성 김정일을 만남. 마오쩌둥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남.(1953)
영화에선 수용소를 탈출하고 바로 11번으로 넘어갑니다. 소설에선 알란이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있는 남한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막상 탈출하여 소련의 군복을 훔치고 차를 훔치고 무작정 내려간 것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계속 내려가기에는 위험이 많았죠.
이 과정에서 한 민가에 들려 쉬어가게 되는데 쌀밥에 마늘과 콩으로 양념을 한 돼지고기, 그리고 소주를 같이 맛나게 먹었다고 나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침에는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 나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 중에 양념고기&쌀밥&소주&주유소..고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여하튼 재밌습니다.
10번 : 마오쩌둥이 보내준 발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냄(1953~1968)
영화에서 최종 목적지는 발리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발리로 가는 이유는 갱과 거래하는 마피아가 발리에 있기 때문인데 소설에서는 그런 마피아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발리로 가는 이유는 오랫동안 발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인이 많았기 때문이죠.
Fact4. 영화와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다를까?
결말의 느낌은 크게 다르지만 내용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언급했듯이 중간에 과정이 영화에서는 생략을 많이 시켰기 때문에 발리로 간 이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발리로 간 멤버들이 영화와 좀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 :
알란, 율리우스, 베니, 구닐라, 소냐(코끼리), 요르딘(갱 두목)
소설 :
알란, 율리우스, 베니, 보세(베니 형), 구닐라, 소냐(코끼리), 구닐라의 개, 요르딘(갱 두목), 요르딘의 어머니, 아론손(사건을 수사하던 반장)
영화만 보신 분이라면 소설에서 추가된 멤버에 대해서 뜬금없으실 겁니다. 베니의 형은 갑자기 무엇이고, 경찰은 왜 있는 거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갱 두목 요르딘부터 얘기를 해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사고를 당한 후 기억을 잃은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좀 아프긴 해도 기억은 멀쩡했죠. 그리고 알란과 그의 친구들은 숨을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베니의 형인 보세가 잘 부탁하면 들어줄 것 같았습니다.(물론 돈으로)
그래서 보세를 설득하게 되며 베니는 오랜만에 형제와의 대화를 하며 화해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요르단이 아픈 몸을 끌고 나와 모두를 처치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와보니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보세가 있었습니다. 둘은 오래전부터 동업을 하며 막연한 사이로 지내가 최근에 좀 뜸해진 사이였죠.
모든 연결고리가 이어진 구성원들은 술을 마시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실 서로 간에 죽이려 하고 죽일 번 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좀 공감이 안 되지만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이런 이유로 요르딘이 합류하게 되어 나중에 그의 어머니도 같이 갈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반장 아론손이 이들을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증거들이 기가막히게 사라져 죄를 물을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즉 사건의 주범들은 다 모아 놨는데도, 증거가 다 없어지고 모두가 알리바이가 생겼기에 이들은 무죄가 된 것이죠. 결국 반장 아론손도 손을 떼고 이들과 적당히 잡담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아론손 반장은 자신의 삶을 비관적을 돌아보게 되죠. 가족과 친구도 없이 일만 해왔던 과거를요. 그동안 고생은 다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나이가 드니 주위에 사람은 없고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저 구성원은 이런 아론손을 친구라 불러주며 환대했습니다. 그로서는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죠. 그런 그들이 발리로 간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그들을 부러워하며 한편으로 기대했던 아론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알란이 아론 손도 바쁘지 않다면 같이 가자고 하죠.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그는 알란 일당의 마지막 멤버가 되어 발리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알란이 마지막으로 무언가 또 하게 되는데 이것은 뒤의 Topic3. 소설과 영화의 주제 차이에서 다시 언급을 하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있으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끝이 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경험을 뒤로하고 드디어 종착지에 도착해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에는 영화에서 알란에게 부여한 성격의 영향이 큽니다. 인물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영화의 알란은 소설과 달리 삶을 진취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우연적 사건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 라기 보다는 [일이 일어나는 대로 살겠다]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 의미는 영화와 소설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가두고 있는 형식과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이겠죠. 하지만 영화는 그게 다였습니다. 폭약전문가와 원자폭탄이 제조 가능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괴짜에 더 가깝게 묘사했기 때문에 그는 진취적 인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창문을 넘고 나와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건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결국 무엇을 더 힐 것이라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휴양을 보내는 여생의 결말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소설의 그는 다릅니다. 스탈린이 미국의 핵개발에 결정적 영향을 준 알란을 포섭하려고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실은 복잡한 핵개발 같은 것은 모르는 알란이 술이나 먹고 싶어 합니다. 물론 말로는 돕겠다는 명분으로 말이죠.
소설에서도 돕겠다고 하며 술도 먹자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사상이 달라 불순하다 느끼며 격분하는 스탈린을 보며 알란은 당당히 돕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을 고려해 자신이 할 일과 그 상대방은 자신이 정한다는 것이죠. 영화와는 크게 다른 부분입니다.
영화에서만 나오는 대사가 있는데 '사람들이 나만 보면 소리를 지른다' 입니다. 사실 크게 의미가 있는 대사가 아닙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죠. 즉 소설보다는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대사입니다. 따라서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를 보고 재밌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있어서 알란 그 내면의 모습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저런 말들이 훨씬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이죠.
즉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영화에서의 의미는
내 인생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탈 이라는 의미라 생각합니다.
양로원에 있는 삶에 흥미가 없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그가 창문을 넘어 도망친 것은 바로 이 곳이 자신이 있을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실 그가 양로원에 간 이유도 영화랑 소설이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자신의 고양이를 죽인 여우를 잡기 위해 폭약을 터트렸고 그게 마을에 소동을 일으켜 끌려온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그가 어릴 때 폭약을 터트려 정신병원에 갇힌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가 양로원에 온 이유는 폭발이 너무 커서 집까지 날려버려서입니다. 영화처럼 소규모의 폭발이 아니었죠. 당분간 지낼 곳이 없었던 그는 마침 비워져 있던 양로원의 한 칸에 살게 된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여주는 영화랑은 역시 다른 부분입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양로원에 있는 알란의 독백 부분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나는 이곳에 들어와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원장이 진짜 나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알란은 발리에서 건너온 멤버들과 그곳의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알란을 찾아오죠. 왜냐하면 소설에서 알란은 미국에서 핵개발을 성공시킨 인물이자 소련의 최고 핵 물리학자의 친구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알란에게 자기네 나라에게도 도움이 돼 달라합니다.
그러자 알란이 그렇다면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정신상태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즉 자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과연 괜찮은 사람인지, 악인은 아닌지, 자신과 성격이 맞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꽤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듣고 흔쾌히 수락합니다.
소설은 영화처럼 종착지에 도착한다거나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자신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소설에서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제는
나이란 한계조차 그에겐 발자취가 돼버린 그의 인생 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