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GONE GIRL)
가끔 보면 우리가 아는 영화나 노래의 제목들이 기존에 알던 것이랑 다를 때가 있습니다.
해외의 작품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부제가 추가로 달리거나 아니면 제목이 조금 바뀌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원래라면 <Gone Girl>이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왜 나를 찾아줘란 이름을 하나 더 달아주었을까요?
영화만 놓고 본다면 부부란 상징을 통해 둘 사이 갈등의 신랄함과 밑바닥의 추악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소설을 보시면 하나의 인간이 대체 어디까지 괴랄하고 그로테스크해질 수 있는지 놀라실 겁니다.
저 Gillian Flynn
[닉 던]
닉은 한 때 뉴욕에서 잡지를 쓰는 일을 하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닉의 아내 에이미도 마찬가지로 잡지에서 심리 퀴즈 코너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같은 모임에서 만나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러던 중 미국 경제에 불황이 닥치고 글을 쓰는 많은 직종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시대가 이제 손으로 글을 쓰지 않고 전부 다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러한 일들은 더 필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여파를 닉과 에이미도 피해 갈 순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닉의 어머니가 암인 것이 발견되자 둘은 닉의 고향인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됩니다.
큰 시련을 겪은 닉은 상황이 예전보다 나빠지자 조금씩 성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설명되는 그의 성격이 바로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의 아내에 대한 내면 심리에 맞춰 조명을 합니다.
닉은 기분이 좋으면 밝고 친절하며 유머러스한 남자지만,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비밀이 많고, 신경질적이며, 꽉 막힌 사람이 됩니다. 당연히 사람 누구나 이런 경향이 조금씩 있습니다만 그의 경우에는 좀 다릅니다. 그가 그런 상태가 되면 꼭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든요.
바로 그의 아버지입니다. 이제는 치매가 와서 스스로 다니지도 못하고 요양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닉이 어릴 때 그가 보아왔던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 그 자체였습니다. 집에서 늘 소리 지르고, 집어던지고, 화를 내고, 어머니를 못 살게 굴었죠. 결국 부모님은 갈라지고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와 살게 된 뒤로도 닉은 아버지를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그의 삶의 목표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노라고, 겉으로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고 살려고 합니다. 물론 닉의 노력은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실제로 '그런 사람'에 가깝게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아내도 닉의 그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하지만 그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항상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상황에 따라서든 사람에 따라서든 부정적 감정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노련해지게 되었지만 정작 부정적 상태일 때는 어떻게 통제할지 몰랐던 겁니다.
결국 그가 부정적인 상태일 때는 그의 '아버지'처럼 변합니다.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상대방을 무시하며, 깔보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이 보고 자랐던 그대로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스스로 그런 상황에 처하자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부부 사이는 같이 응원하고 이겨내야 하는 관계인데 남자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그는 실직이나 경제적 문제같이 힘든 일이 있을 때에 아내에게 마음을 터놓지 않습니다. 그는 그럴수록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혼자 끙끙대며 괴로워합니다. 스스로의 무기력함에 화가 나고 부부 사이에 대화는 줄어듭니다.
그는 밝은 모습일 때 아주 스위트하고 좋은 남자이지만 나쁜 남자일 때는 다른 인간이 돼버립니다. 결국 부부 사이에 제일 중요한 표현이 부족한 것인데, 노력한다면 서로 같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의 경우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이 바로 에이미 엘리엇이었으니까요.
[에이미 엘리엇]
에이미는 작가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그들이 저술한 책은 '어메이징 에이미'라고 하는 이름의 아동도서로, 실제 그들의 딸이 모델이긴 하지만 교육의 목적으로 아주 완벽한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에이미가 그 책의 아이와 자신은 별개로 다른 사람이며, 부모님이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라고 얘기합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사람들은 진짜 에이미보다는 '어메이징 에이미'를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선 다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 소설을 쭉 의식하며 자랐습니다. 자기 부모가 자신을 모델로 책을 쓰고 있는데 신경을 안 쓴다는 게 이상하겠죠. 그렇게 그녀는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에이미처럼, 항상 남들보다 완벽하고 우월해지려고 행동하며 자랐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에이미를 낳기 전에 5번의 유산과 2번의 사산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에 태어난 에이미는 그들에게 아주 귀한 딸이었죠. 그런데 에이미의 독백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 앞의 7명은 세상 밖에서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로 끝났지.
그런데 나는 살아 있고 또한 난 얼마나 대단한고 가치 있는가!
저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며 컸다고 생각하니 대단합니다. 그런데 저런 에이미가 닉과 만나고, 결혼을 한 뒤로는 달라집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쿨한 여자가 돼버렸습니다. 간섭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기에 닉을 위해서라면 그런 여자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아주 괜찮았습니다. 서로 행복했고 좋은 날들이 많았죠. 서로의 성격이 완전하진 않아도 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각자의 안 좋은 모습이 한 번씩 나와도 사랑했으니 다 좋은 눈으로 보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부부모임이 있었는데 닉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간다고 오지 않고 밤이 돼서야 술에 취해서 들어옵니다. 닉이 나빴던 것도 맞지만, 닉에게는 가족끼리 따뜻한 모임이나 다정한 분위기는 어색합니다. 그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충실하는 것만 잘할 뿐이죠. 몇 번이고 그런 일이 있었지만 에이미는 화가 나도 쿨한 여자는 남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다 나라 전체에 불황이 닥칩니다. 실직자가 쏟아지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부채는 급증합니다. 하지만 둘 다 직업을 잃고 집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부유했던 그녀의 부모 덕분에 그녀의 신탁기금은 꽤 많았고 적당히 절약하면서 지낼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이 파산한 채로 빚을 지고 그 돈을 받아가게 됩니다. 경제적 위기는 불안해져 가던 부부 사이에 직격타였죠.
상황이 나빠지고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하자 드디어 서로의 본래 성격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닉은 그의 따듯한 성격이 아닌 그의 아버지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에이미는 쿨한 여자가 아닌 빈정거리며 압박하는 여자로 변해갑니다.
영화를 보면 그냥 권태기가 와서 사이가 멀어지고 있는 부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소설에 따르면 처음 만났을 때의 성격이 아닌 각자의 진짜 모습을 보자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는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영화에서 과거의 장면은 에이미의 시점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닉을 미치게 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놓고 싸우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말려 죽이기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게 뭐야? 원하는 게 뭐야? 무엇을 어떻게 할까? 이런 얘기가 나오면 에이미는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싫은 티와 빈정거림은 계속됩니다. 무시하는 표정과 말투가 닉을 더 자극하고 그를 더 감정적으로 바꿉니다.
부부관계가 망가지고 닉이 외도를 할 시점에는 그녀의 대꾸는 이렇식으로 바뀝니다.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그래그래.
뭐, 닉답네
그렇다고 그녀가 아내로서 해왔던 것이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시부모에게 맞추고, 요리도 하고, 남편의 주위 사람과도 사이좋고 친절하려고 애썼죠. 다만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그녀는 애초에 시골이 싫었습니다. 자신의 지인이랑 친구들은 다 뉴욕에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결국에 스스로 실종사건을 꾸미게 됩니다. 남편이 얼마나 싫었으면 저럴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종사건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랑 친구들, 그녀의 부모님까지 모두 패닉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적과 달성을 위해서라면 주위 사람은 얼마든 이용할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녀는 소시오패스입니다.
실종 7일 차즘에 그녀가 그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내가 왜 내 부모에게 미안해야 하나? 그들은 날 이미지로 삼은 책으로 인세를 그들이 독차지했다. 그리고 친구도 돈도 없는 시골에 던져 넣은 벌을 그들도 받아야 한다.
Fact1. 닉의 고향은 망해가는 중소도시였다?
닉의 어머니가 암에 걸린 뒤로 이사 온 곳에 대해서는 영화에서 설명이 딱히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도시 외곽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 느낌이죠.
영화에서 보면 밝고 좋은 동네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불황이 닥치면서 상권이 몰락하고 인구도 빠져나가 황폐해진 도시입니다. 밤의 거리엔 실직한 부랑자들이 돌아다니고 마을 치안상 썩 그렇게 좋지도 않습니다.
닉은 이곳에서 바를 열어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을에서 장사를 한다고 그렇게 잘 될 리도 없거니와 몇 년째 계속 적자인 상태였죠. 그래도 닉은 자신의 바에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보급화 돼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 글을 예전처럼 읽지 않아 많은 작가들이 사라졌습니다. 인쇄공장이 망하고 출판사들도 대거 사라졌지만 술집은 남아 있습니다. 닉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감성과 그 상징이라는 면에서 그 바를 좋아합니다.
이곳은 형사 보니가 수사하기 위해 방문한 이곳은 오래전에 망한 쇼핑몰입니다. 몰락한 중소도시의 망해버린 상권의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어릴 때 닉이 이곳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따라 자주 오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버려진 이곳엔 돈이 없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위험한 분위기의 이곳은 범죄의 소굴 같기도 합니다. 소설에 따르면 원래 닉의 고향에는 '블루 북'이라고 하는 책을 내고 인쇄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불황에 망해버린 그곳 근로자들은 갑작스러운 퇴직 선고를 받게 되고 퇴직금조차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항의를 하고 데모를 하지만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돈과 집입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쇼핑몰은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마약 유통을 전담하는 이들의 아지트이기도 하죠.
영화에서 에이미가 이곳에서 총을 사려고 했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영화를 보면 뜬금없이 총을 사러 마을의 어두운 쇼핑몰 지하로 갔다고 나오는데, 미국이니까 그럴 수 있다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소설에는 시대적 배경과 마을의 설명이 간간히 나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까 인물을 소개할 때 에이미가 자기 부모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를 방치하고 내팽개쳤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영화에선 오직 적은 닉 한 명뿐이니까요.
그녀가 아무리 성인일지라도 부모님이 그녀에게 무관심했던 것은 맞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몰랐고 이사를 간 몇 년 동안에도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죠. 그러다가 그녀가 실종되고 당연히 장인과 장모도 이 마을에 왔습니다. 처음 오는 마을에서 이곳저곳 둘러보고 수사를 하던 장인은 닉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솔직히 말하겠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푸르름, 사과나무, 앤티크 한 헛간.....
그러나 실제로 이곳은 너무나도 흉측하군.
Fact2. 닉을 포함한 용의자들은 다 에이미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에서 보면 에이미가 실종되고 경찰은 과거에 그녀와 문제가 있었던 사람을 용의자로 추적합니다. 그의 학생 때 교우관계가 있었던 사람부터 전 남자 친구들까지 다 용의 선상에 올랐죠.
대표적으로 영화에서는 토미가 나옵니다. 그는 닉과 사귀기 전에 에이미가 만났던 남자입니다. 에이미는 닉과 만나면서부터 쿨한 여자였던 거지 그전에는 권위적이고 상대방을 낮게 보는 성격이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소개되는 이런 인물들은 대게 예쁘거나 직위가 높으면 인기가 많지만 동시에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합니다.
톰 역시 에이미와 만날 때 점점 그녀의 성격을 알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그녀를 점점 멀리하고 만나지 않을 핑계를 늘려갔죠. 그러다 새로운 여자를 알게 되고 에이미와 헤어질 생각이었습니다. 닉과 흐름이 아주 비슷하죠. 그런데 에이미는 그를 한 번 만나자고 하고 그와 관계를 맺은 뒤 성폭행으로 신고를 해버립니다. 의도적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묶인 자국을 연출하면서 말이죠. 토미는 순식간에 범죄자가 돼버리고 직장을 가지기는커녕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리고 토미는 한 달 뒤 에이미한테 문자를 받습니다.
다음엔 두 번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소설에는 영화에서 언급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나오지 않는 '수지'란 별명을 가졌던 친구가 나옵니다. 에이미의 부모님에 따르면 그는 에이미를 너무 닮고 싶어서 그녀를 따라 하고, 질투하며, 계단에서 밀쳤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에이미는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델로서 주위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수지는 책에 나오는 에이미의 조수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과거에 그런 일로 격리 조치를 당했던 수지와 대화를 하던 닉은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시골에서 에이미가 다니던 학교로 어릴 적 전학을 왔습니다. 그리고 항상 권위적이고 남을 조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에이미를 만나게 되죠. 순수했던 그녀는 에이미가 '수지'란 이름을 붙이고 시종처럼 부리는데도 친구라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시험성적에서 자신이 에이미보다 잘 나오고, 친구 모임에서 에이미가 초대받지 않고 자신이 초대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에이미는 그녀를 불러내 자신과 같은 금발이 더 어울리니 염색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이미의 부모님에게 장난전화로 '전 에이미가 되고 싶어요. 내가 진짜 에이미예요'라고 하자고 합니다. 어린 그녀는 순진하게도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에이미는 곧장 몸에 상처를 내고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그동안 그녀가 자신을 계속 쫓아다니며 위협을 하고 오늘은 계단에서 밀었다고 얘기합니다.
영화에서 닉이 에이미의 고등학교 때 남자 친구인 데시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설에선 집에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지만 영화에선 밖에서 얘기하다 박대를 당합니다. 사실 저 집에는 데시와 그녀의 어머니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중에 데시가 에이미를 숨겨줄 때 자신의 집이 아닌 별장에 데려간 것이죠.
데시의 어머니가 에이미가 거짓 실종사건을 알게 되는 것도 곤란하지만 사실 둘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에이미는 데시와 만나던 중 그녀의 어머니와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도 같은 수법으로 몸에 상처를 내고 어머니가 자신을 싫어해서 못 살게 군다고 얘기합니다. 이 일로 데시는 자신의 어머니와 한 달 동안 차갑게 지내다가 결국 화해를 하게 되죠.
Fact3. 에이미는 정말로 아이를 가지기 싫었을까?
닉은 정말로 에이미와 아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닉은 새로운 희망을 갖습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또한 에이미와 자식을 가질 거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소설에 따르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에이미와 자신, 그리고 함께 있는 아이가 상상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이고요.
그렇습니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설마 그녀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리라는 걸요. 결혼을 하고 어느 날 조심스레 그녀에게 아이를 가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때가 되면 그러자"라고 하면서 태연히 피임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피임약을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계속 먹습니다.
닉이 은근히 원하는 티를 계속 내자 에이미는 성의를 보이는 의미로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 정자 샘플을 냉동 보관하게 됩니다. 딱히 둘의 신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닉을 잠시 누그러뜨릴 수 있었죠.
닉은 항상 꿈꿔왔습니다. 에이미,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강, 공원, 바닷가에 누워 다리를 모아 휘저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랐습니다. 닉은 초조하고 답답했습니다. 결국 닉은 에이미에게 직접적으로 아이를 바라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짧게 '그래'였습니다.
소시오패스인 그녀가 남편이 원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득 될 게 없는 아이를 가질 이유는 없었습니다. 닉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바랐지만 에이미는 그저 닉만으로 충분했죠.
그러던 중 부부 사이가 점점 멀어지자 에이미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웃 여자의 아이들을 보아도 어떤 애틋한 감성도 느끼지 않던 그녀지만 부부에게는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닉에게 아이를 갖자고 얘기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목적의식과 동기부여가 되고 서로에게는 새로운 출발이 될 거라고 얘기합니다. 말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닉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녀에게 아이는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그녀의 '수단'일뿐이었던 거죠.
그리고 소설에 따르면 그것이 닉을 오랫동안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에이미와 자신의 아들에 대한 백일몽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집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미래 아이 계획에 대해 얘기를 했어야 했을 텐데 좀 의아하긴 합니다.
Fact4. 에이미는 왜 다시 닉에게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영화에서 보면 에이미는 실종사건을 꾸미고 나중에는 자살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죽기에는 나쁜 건 닉인데 왜 내가 죽어야 하냐며 생각을 바꿉니다.
게다가 돈도 많고 자신을 숨겨주며 잘 챙겨주는 데시가 있는데 그냥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데시는 과거에 그녀에게 집착하여 자살소동을 벌였던 용의자라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에이미에게 집착을 보이며 편지를 몇 통 쓰죠. 에이미는 데시의 편지를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며 그와의 연락을 무시하고 피하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 따르면 그 자살소동도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녀는 언젠가 데시가 분명히 쓸모 있을 거란 걸 알고 있었죠. 그와 연락을 이어가며 언젠가는 그를 이용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범죄 관련 블로거가 나옵니다. 술이 너무 먹고 싶었던 닉은 몰래 후드를 뒤집어쓰고 인근의 술가게에 있다가 그 블로거에게 들키게 됩니다. 그 블로거는 상황을 당신을 위해 써주겠다며 제발 인터뷰를 해달라 부탁하고, 닉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닉은 이것이 어쩌면 대중의 마음을 돌리고 어딘가에 있을 에이미의 생각도 바꿔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그렇기에 에이미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이야기를 지배해 닉. 포주 같은 대중들은 내 말을 믿을 거야. 지금 이 순간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찾으려고 하는 남자야. 응원을 받을 수 있는 남자야. 아내를 사랑하는 순종적인 남자야.
그리고 에이미가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합니다. 결과적으로 블로거와 인터뷰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에이미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인터뷰를 본 에이미는 자신의 분노가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끼며 물렁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됩니다. 마침 데시가 너무 거슬렸습니다. 그는 에이미를 집에 숨겨준 뒤로 간섭이 많이 심했습니다. 별의별 이유로 그녀를 따라다니며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그녀의 옆에 있으려 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침 자신의 실종 사건 후로 기금이 많이 모였고, '어메이징 에이미'의 소설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그녀는 예전의 궁핍해져 버린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거죠.
영화에선 인터뷰 한 번으로 끝이었지만 소설에선 닉의 노력은 계속 됐습니다. 닉은 알게 된 블로거를 통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의상, 장신구, 대사까지 준비하여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에이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통합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닉은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분명 저 말이 다 거짓인 것은 알아.
하지만 누구보다 날 잘 이해한다는 게 중요해.
그렇다면 그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지배하면 돼.
원래 제목이 GONE GIRL이라면 일차적으로 그냥 에이미가 사라졌다는 의미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올 때에는 나를 찾아줘라는 부가적 설명이 따라서 들어옵니다.
내용상 애초에 에이미가 닉에게 스스로 실종된 자신을 찾아달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저것은 단순한 의미의 찾아줘 가 아닙니다. 따라서 '찾는다'라는 것에는 이 작품에서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은 먼저 '죽는다'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겠습니다.
죽음 역시 이 작품에서는 일차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작품에서 에이미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그녀의 존재가 옅어지고 언젠가는 영영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에이미는 닉을 만나 사랑을 하고 원래의 자신을 감췄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렸습니다. 진짜 정체성이 상실된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개인이자 객체야.
난 당신과 살면서 진짜 에이미를 죽여야만 했어.
이런 의미가 잘 드러난 에이미의 대사입니다. 반면에 영화에서 닉은 죽여야 할 자신이 없습니다. 에이미와의 결혼생활 동안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입니다. 에이미를 사랑했던 때의 자신도 그의 진짜 모습이고, 에이미에게 분노하며 마음속의 아버지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던 것도 본인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에이미는 계획이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사건을 벌이고 자살을 그만둔 뒤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진짜 자신을 찾을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간식도 마음대로 먹으면서 살도 찌고, 남의 눈치도 안 보면서 진짜 에이미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돈도 떨어지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런데 기가 막히게 조건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이 그녀에게 생각납니다. 그녀는 상대방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고 항상 우위에서 조종해야 하는 괴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서로를 증오하지만 한 때는 너무나도 사랑했던 닉은 조건을 갖춘 남자입니다.
분명 닉이라면 '진짜 자신'을 숨기지 않고 행동해도 나의 행복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게 닉의 행복은 아니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 닉에게도 행복을 만들어주면 될 일입니다. 닉도 자신을 이용할 수 있게 말이죠.
그게 바로 임신입니다. 닉도 아이를 원했었고, 아이가 생기면 닉도 자신의 곁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으로서 에이미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언젠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정자를 얼려서 보관시켰던 거죠. 그녀가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고, 상처 주고, 조종해.
그래, 그게 결혼이야
그들은 상대방에 숨어 있는 '진짜 모습'을 찾아줄 수 있는 유일한 서로입니다.
부부니까 양보하고, 받아들이며, 서로 닮아가는 그런 아름다운 얘기랑은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나를 찾아줘'와 주제의 의미는
영혼의 동반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협박 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닉의 정체성입니다. 소설에 따르면 닉의 집안과 그가 살던 고향 도시는 허무주의식으로 소개됩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많은 가게들이 문 닫고, 실직자들이 떠돌며 마약에 쉽게 손을 댑니다. 그렇게 황폐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독 절망에 취약합니다. 작은 자극에도 낙담하고 큰 스트레스를 받죠. 에이미도 유독 닉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좌절을 얘기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던 가문인 닉은 자신의 이름인 닉 던(Nick Dunn)에서 던(Dunn)이 영어의 끝났다라는 Done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용해 자기 집안은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영화에서는 그의 밝은 성격과 삐뚤어진 성격 모두가 그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착한 모습이라도 말이죠.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게 모두 진짜에 가까운 가짜라는 암시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를 베껴 만든 성격을 만들어낸 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그는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밝은 모습의 성격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극복이 아닙니다. 진짜 자신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안 좋은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죠.
위에서 소설에는 닉이 에이미를 보는 순간 아이를 가질 것을 확신했다고 나오는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는 하지 못했지만 자신은 아이에게 온전하고 순수한 사랑을 쏟는 다면. 그리고 자신의 부모와는 달리 서로 너무 잘 맞는 인생의 반쪽을 찾아 행복할 수 있다면. 닉은 자신을 오랫동안 움츠리게 했던 허무와 좌절을 넘어서고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믿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공간적 배경과, 가족 배경이 나오지 않기에 그의 진짜 바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에이미가 임신을 이유로 협박을 할 때, 그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을 공감하기 힘드신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살인에 협박까지 하는 여자와 계속 살 강심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설에서 닉은 진정한 자신을 원했지만 에이미처럼 예전의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습니다.
따라서 소설에서 닉이 바라는 '나를 찾아줘'는
당신과의 미래에서 그리고 싶은 새로운 나 란 의미가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