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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스러운 곰 Apr 05. 2019

작품이 원작과 만나는 시간.
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입니다.


분명 같은 내용을 다루는 영화와 소설인데도 그것이 합쳐졌을 때의 느낌은 또 사뭇 다릅니다.


<비 비포 유> 역시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원작과 비교하기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든 소설이든 무엇을 강조하고 드러내고 싶은지는 그 매체를 만드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미 비포 유(Me Before You)]

                                                                                                           저 JOJO MOYES





                            Topic1. 소설과 영화에서 인물의 차이


                                                           [루이자]



그녀는 몹시 명랑하고 적극적인 성격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매우 자신 있어하죠. 영화에서 보면 그녀의 그런 밝은 면 때문에 윌의 간호 도우미로 뽑힌 것으로 나옵니다. 사지마비 환자인 윌을 안락사를 바랐고, 윌의 어머니인 카밀라는 어떻게든 아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따르면 설정이 좀 다릅니다. 영화 중간에 보면 윌의 팔에 붉은색의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윌의 자살기도의 흔적입니다. 루를 채용하기 몇 달 전에 부모님과 전담 의료사인 네이선이 잠깐 윌을 신경 못 쓰고 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윌은 자신의 휠체어를 조종해 벽에 튀어나와있는 못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렸고, 조금만 늦게 발견됐어도 죽을 번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윌의 부모님은 항상 그의 상태를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즉 '자살 감시역'이 바로 그녀의 진짜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기 옆에 사람을 붙여 놓았다고 처음부터 윌이 그렇게 언짢은 듯 행동했던 거죠.


윌의 부모님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그녀는 그 일로 너무 화가 나 부엌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옵니다. 결국  카밀라 트레이너는 결국 그녀의 집 앞까지와 제발 돌아와 달라고 설득까지 하게 되죠. 


이 일로 그만둘까 고민했던 그녀지만, 사실 저 사실을 알게 된 계기로 정말로 윌을 살려내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윌과 여행을 떠나는 버킷리스트가 만들어집니다.




                                                       [윌 트레이너]



영화에서는 그는 오토바이에 치여 사지마비가 된 인물로 나옵니다. 윌은 스스로 몸을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되어 혈압약, 소화약, 진통제, 혈당약 등을 때에 맞춰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혼자서는 무엇하나 하기 힘든 그는 자살기도 후 2달 뒤 안락사는 원한다는 뜻을 부모님께 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6개월의 기간을 가지고 약속된 날 8월 12일에 스위스의 안락사 지원 전문 병원인 디그니타스 병원에 예약이 잡힌 상태죠. 사실 영국에서는 안락사는 법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윌은 결국 부모님께 말씀드려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그의 부모님도 이미 수긍하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남은 6개월 동안 아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의 부모는 단지 윌이 급단적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고 윌과 마찬가지로 6개월 간 마음의 준비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영화가 생명의 숭고함을 더 부각하고 싶었다면, 소설에서는 그가 느끼는 현실적 고통, 비통하지만 아들을 마음을 이해해줄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소개됩니다.


(좌) 결혼식을 방문한 두 사람                                                                     (우) 페렴으로 쓰러진 윌


영화에서 윌과 루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로맨틱한 연출을 보고 있으면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있고 보게 되죠. 하지만 소설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건강한 느낌을 일부러 더  보여주고 싶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서는 결혼식을 다녀온 윌은 폐렴으로 쓰러지게 되는데, 사실 이 장면은 소설에 따르면 루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나머지 윌을 제대로 간호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원작대로라면 윌의 건강은 훨씬 나쁩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부정적이고 고통을 설명하는 부분의 비중은 줄이려 했지만, 원작에서는 더 자주 그리고 자세하게 언급됩니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윌은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루는 고심한 계획을 전부다 취소해야 하나 전전긍긍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막상 여행을 가서도 4일 동안은 '창백하고 파리한 얼굴이었고 괴상하게 축 늘어진 어깨와 머리'라고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젠 고통에 지쳐 전부다 지긋지긋해했고 계속 혼자 있고 싶어 했다.'라고 직접적으로 묘사되죠.









                               Topic2. 소설과 영화의 내용상의 차이





Fact1. 윌의 아버지가 바람을 펴서 윌의 부모님들은 이혼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윌의 어머니인 카밀라의 직업이 치안판사라고 소개됩니다. 하지만 윌이 사고를 당하고 난 뒤로 휴직을 하게 되고 아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리고 루를 고용한 뒤로는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죠.


그리고 아버지 쪽인 스티븐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한다고 언급되지 않습니다. 가끔 볼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는 정도로 묘사됩니다.


윌의 비정상적인 건강상태에 황급히 전화를 거는 루


영화에서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네이선은 차가 막혀 늦게 되고 루가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이날 카밀라는 출근을 하고 남편 스티븐은 집에 남아서 루에게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잠시 뒤 윌은 고열에 시달리며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루는 주위의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시급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 있어야 할 스티븐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때 스티븐은 밖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소설의 따르면 붉은 머리의 젊은 여성이며 몰래 외도를 즐기다 밖에서 루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놀라게 되죠. 영화에서 아들이 죽는 날까지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그의 모습이 기억나신다면 배신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이러한 비밀은 아내인 카밀라는 물론이고, 아들인 윌, 그리고 네이선까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영화로 치면 더 뒤의 얘기이고 소설로서는 마지막 부분인데, 윌이 죽고 나서 스티븐과 카밀라는 별거하다 헤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결국 아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소설에 따르면 카밀라는 남편이 몹시 미우며 화가 나있습니다. 자신의 외모를 칭찬할 때면 오히려 다른 여자라 비교당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기분 나빠합니다. 


이젠 저 아가씨까지....


스티븐이 루를 밝고 예쁜 아가씨라고 칭찬하자 위와 같이 카밀라의 직접적인 독백까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오직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태격태격 할 뿐 이러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Fact2. 루는 사실 윌보다 가족과 남자 친구 때문에 훨씬 마음고생이 많았다.


영화에서는 윌과 루 두 사람의 사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장면들이 나열됩니다. 윌의 부모님 문제도 그렇기에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소설에서 루의 주위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그녀가 가족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루의 동생 카트리나와의 대놓고 하는 차별부터 시작해서 그녀를 가족이 돈벌이 기계로 여깁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관심과 사랑을 전부 빼앗기며 자란 루는 동생 카트리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도 댈 수 있다고 얘기하죠.


앞서 한 번 언급했던 윌이 고열이 생겨 루가 그의 곁에서 간호를 해야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루는 하룻밤 야근을 해야 했죠. 그녀는 자신을 걱정할까 봐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반응은 딱 이랬습니다.



혹시 자고 가면 수당이 더 나오니? 정말로! 들었어요 여보? 돈이 더 나온데


정확하게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고까지 나옵니다.

실망한 그녀는 혹시 몰라서 남자 친구 패드릭에게 문자를 보내봤지만 그의 답장도 정상은 아닙니다.


오늘 밤에는 크로스컨트리 스노우러닝을 하러 갈 거야 노르웨이를 대비한 멋진 훈련이지.



저 예쁜 다락방은 소설에선 창문 하나 없는 감옥같이 묘사했다.


위에 보이는 루의 방은 사실 동생 카트리나의 방입니다. 루는 저 방을 쓰기 전에 더 넓고 창문도 제대로 달려 있는 방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어린 나이에 아이가 생겨버린 동생 때문에 졸지에 방을 뺏겨버리게 됐습니다.  루는 이 일로 동생에 대한 적개심이 더 강해졌고, 카트리나가 대학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원래의 방을 탈환하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다정해 보이는 두 자매는 방 문제 때문에 밀치며 욕을 쓰고 싸우게 되죠. 이때 동생 카트리나는 루를 향해 이런 말을 합니다.



언니가 제대로 된 직업도 못 구할 돌대가리가 아니었으면 지금 쯤 독립했을 거야.
아니면 패트릭이 영영 청혼할 거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거야?


루는 27세라는 나이에 아직 집에 붙어 있다는 사실에 자격지심도 가지고 있었고 가족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년 넘게 만난 남자 친구는 자신에게는 관심도 별로 없으며 결혼 얘기는 꺼내지도 않습니다. 루도 패드릭이 그렇게까지 진지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루는 사실 패드릭과 정반대로 운동을 싫어한다.




Fact3. 루는 중간에 패드릭의 집으로 옮겨가 동거를 했었다.


어찌 보면 영화만 보았던 사람들 입장에선 가장 충격받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반대의 성격 때문에 잘 맞지 않던 패드릭과는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윌과의 사랑이 싹트는 전개였으니까요. 그런데 중간에 남자구와 같이 살림을 합치고 '동거'를 시작하다니 느낌이 좀 이상합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그 이상함 때문에 영화에서는 빠진 내용입니다. 동거를 먼저 제안한 것은 패드릭입니다. 발단은 루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이때 별다른 생각 없이 좋은 느낌으로 패드릭도 루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죠. 하지만 막상 루와 윌을 보니까 패드릭의 마음엔 큰 질투가 생깁니다.




이후에 패드릭은 루를 만나 경제적 이유와 가족의 상황을 언급하며 같이 동거하는 것의 타당성을 얘기합니다. 루의 입장에서도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이젠 더 진지한 관계를 생각해야 할 때였고, 루도 언제까지나 가족 눈치를 보며 집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패드릭은 못을 하나 박습니다.



이게 그렇다고 결혼을 전제해서 한 생각은 아닌데, 아무튼 자기로서도 좋은 거잖아


패드릭은 루에게 진지하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그녀를 만날 뿐 자신의 관심사와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죠. 루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했죠.


그리고 뒤에 이 사건 때문에 일이 터집니다. 퇴근하던 차에 집으로 가는 얘기를 하자 눈치가 부족한 루는 사실을 다 윌에게 얘기해버립니다. 그리고 윌은 이 얘기를 듣고 크게 낙심하여 며칠 동안 계속 우울한 상태에 힘든 모습을 보여주게 되죠.


 이런 아들의 상태를 보고 있던 카밀라 트레이너와는 어느 날 루와 단 둘이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루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며 남자 친구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얘기합니다. 그러자 카밀라는 엄청 놀라며 대노를 합니다. '항상 윌이 루의 얘기를 한다.' '루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등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어떻게 아들의 앞에서 그렇게 행복을 과시할 수 있냐며 질책을 하죠. 이에 격분한 루는 당신이 나에 대해 뭐를 아냐며 똑같이 화를 내면 받아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거도 결국 패드릭이 루의 여행 계획을 보고 끝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와 똑같이 서로의 입장이 달라 이해하지 못하게 갈라서게 됩니다. 이때 이후 루는 짐을 싸고 아파트를 나오게 되죠.

그렇게 패드릭과 루의 관계는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패드릭의 뒤는 그렇게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윌과의 여행이 끝나고 루는 윌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신의 사랑으로 어찌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휩싸여 방에 들어가 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갑자기 기자들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옵니다. 윌 트레이너의 죽음에 대해 곁에서 지켜본 입장을 얘기해달라는 질문을 하면서 말이죠. 슬픔도 떨쳐내지 못했던 루에게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범인은 패드릭이었습니다.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안락사를 시도하려는 부잣집 남자와, 이것을 곁에서 방관하며 지켜준 간호 도우미라는 이슈를 제보했던 것입니다.


이런 비겁함에 치를 떨게 된 루는 패드릭에게 전화를 걸어 한껏 저주를 퍼붓고 둘은 영영 끝나게 됩니다.




Fact4. 루는 윌이 스스로 글을 쓸 수 있게 기계 장치를 달아주었다?


영화가 끝날 때즘에, 루가 길가에 있는 카페의 의자에 앉아 윌이 남긴 편지를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 감동적이면서도 여운을 주는 장면이지만, 누군가는 저 편지를 대체 누구를 시켜서 썼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윌이 누군가에게 이런 내용을 받아 적게 했을 이미지도 잘 상상이 안 가니까요.



소설에서는 윌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기 위한 루의 부단한 노력들이 나옵니다. 영화같이 순진하고 백치미 있는 모습이랑은 좀 다른데요. 그녀는 사지마비 환자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의 채팅방에 들어가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여행에서 윌과 함께 했던 야외활동만 해도 그녀가 이미 의학적으로 다 공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얻은 데서 간추린 아이디어입니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고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낸 것이죠.


하지만 루는 윌이 무엇을 밖에서 할 수 있게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함께 그 스스로 무언가라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조사하다가 알게 된 것이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서 입력 신호를 받아 글자를 입력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였죠. 다행히도 트레이너 가는 돈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윌은 스스로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몸이 불편한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접적 의사 표시 행동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윌은 대체적으로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소설에서 처럼 자주 아프고 그의 상태에 가 심각하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기계에 의존하여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은 좀 핀트가 맞지 않아 불필요한 장면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루의 입장과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해피엔딩을 바라게 됩니다. 윌이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고 루와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윌의 진짜 속마음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현실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심리상태와 다양하게 얽혀있는 인물관계 때문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듯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정보다는 인물 사이 겉으로 드러나는 배우의 표현에 초점을 더 두려고 했던 것이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Topic3. 소설과 영화의 주제 차이



단어 Before에는 1. (위치상) 앞에   2. (시간상) 전에 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Me Before You라는 작품의 제목을 생각해보게 되면 자연스레 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루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를 주목해봐야 합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꿀벌을 닮은 무늬의 스타킹


그녀는 패션에 대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만족해 살고 있던 그녀가 자신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관심사였죠.


영화에서 그녀는 윌에게 언젠가 패션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실현할 의지와 능력은 없습니다. 적극적인 그녀의 성격에 비해 자신의 길은 진취적으로 개척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앞두고 윌은 그녀가 '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녀의 진짜 가능성은 사람과 쉽게 친밀해지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늘 남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기를 좋아했다.


즉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패트릭 같은 남자 친구를 만나면 별로 좋은 영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남의 기분을 맞춰주다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성장할 동력이 생기지 않았죠.


하지만 윌을 돕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윌과 함께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루 자신은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패드릭과 달리 자신을 이해해주고 관심을 가져다주는 윌이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영화에서는 수동적이란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찾았다기보다는 남을 통해 기회를 얻고 그것을 잡았다는 전개로 보이는 것이죠.


영어 Wil에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 뜻 말고도 의지유언장이란 뜻이 있습니다. 유언장이란 뜻이 있다는 시점에서 윌을 결국 죽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복선이었고, 윌 트레이너(Will Trainer  : 의지를  훈련시키는 사람)가 두 번째 복선이었습니다.



윌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루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떠납니다. 덕분에 루는 이후로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죠. 그래서 루는 이제 패션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신이 무언가 하나라도 한 구체적 행동이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녀가 일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선 것은 맞지만 완전히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울타리는 바로 윌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결말에서 윌이 남긴 여운에서 Me Before you란 의미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시간상 이전이라는 Before의 뜻으로, 윌이 루보다 이전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비록 윌이 세상을 떠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변화시켜 준 멘토로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전 영화의 주제가 자신을 뛰어넘게 해주는 사랑의 울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루는 영화와 다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 카트리나와 대화하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윌의 집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저금을 했으며, 이젠 등록금을 낼 수도 있고, 패션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말이죠. 이에 카트리나는 그럼 윌은 어떡하냐고 묻습니다. 이때는 윌이 아직 살아있었고 루도 윌이 마음을 돌려 계속 살아갈 것이라 믿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자 루가 얘기합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의 옆에서 간호를 할 수는 없어.



그렇습니다. 그녀는 윌이 마음을 돌려 세상을 살아가게 되리란 결심을 하게 되더라도 그의 곁에서 쭉 있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이하고 싶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동생이 다니고 있는 대학에게 패션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면접을 보러 오라는 답장이 오게 됩니다. 이 시기는 윌과의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은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면접을 보고 오고,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됩니다.


원작에서의 루는 이미 윌을 뛰어넘었습니다. 윌은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그녀 삶의 전부는 아니었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윌이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외부적 영향의 요인이 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부적 성장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의 주제를 생각할 때 Before이 ''이라는 뜻이 더 걸맞다 생각합니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던 가족이나 심지어 윌도 이젠 자신의 앞에 없습니다. 언제나 가장 앞은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전 소설의 주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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