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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적휘적 Apr 08. 2021

소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으로 오고 있음을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한강 작가의 소설은 쟁점을 아주 적나라하고 첨예하게 다루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쉽지가 않다. 때문에 『소년이 온다』를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서도 한참동안이나 못 읽었다. 5.18혁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행해진 폭력과 인간의 잔혹함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 냈을지 무서웠기도 했으리라. 그러다가 겨우 책장을 펼친 건 2019년 봄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다시 읽은 지금, 왜 이제야 읽었나 싶은 마음뿐이다. 더 일찍 읽었더라면, 좀 더 일찍 손을 내밀었을 텐데.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혁명을 소상히 그려내고 있다.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은 그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까지도 버텨내는 다양한 부류의 삶을 그려낸다. 그 열흘간의 시간을 견뎌냈을 그들과, 견뎌내지 못한 그들, 그리고 그 이후를 견뎌내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숨이 답답하게 쉬어진 까닭은 이것이었을까. 견뎌냈고, 견뎌내지 못 했고, 견뎌내는 중인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제목이  『소년이 온다』인 이유 또한 그러할까. 작품에서 죽은 소년이 ‘온다’라고 표현된 것은, 소년의 가족은 아직 소년에 대한 제자리에 멈춰버린 소중한 기억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니까 역시 끝나지 않은 비극임을 나타내고 있지 않을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p.99


그렇다면 광주에서 고립되었던 시민들이 군인에게 맞선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들의 힘에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탱크와 헬기와 기관총과 저격수에 맞서 칼빈 소총 한 정 겨우 들고 맞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 p.114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양심’. 질 게 뻔한 싸움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맞섰던 이유는 세상에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신군부의 쿠데타는 잘못된 행동이다. 이제 이 땅에서 독재는 사라져야한다. 그러니 우리는 지더라도 싸우겠다. 죽더라도 보여주겠다. 그 결연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 p.117


결국 그들은 군부의 악행에 맞섰지만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무기를 들고서도 그 무기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에게도 ‘양심‘을 지킨 것이다. 인간은 존엄해야 하기에. 그렇게 잡혔고, 죽임 당했고, 고문 받았고, 지금껏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는 양심을 지켰다는 이유로 받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대가가 아닌가.


소설에서는 선이 결여된 인간의 잔혹성의 밑바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더 잔인하게 굴 수록 포상을 내린다는 상부의 명령과 이에 미친개처럼 날뛰는 계엄군의 폭력성은 과연 이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마저 갖게 만든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 p.133


항복하러 나온 성인이 채 되지 않은 학생들을 향해 총을 난사 하고 영화 같지 않냐고 이를 드러내는 계엄군의 폭력성은 단순한 선의 결여에서 온 것일까.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었을 뿐,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 아이히만이 겹쳐 보인 이유는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잔혹하게 짓밟고 탄압했음에도 결국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누군가에게 전해지어 진실이 바로 서는 날이 온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는 꽃 핀 쪽으로 귀결되는 어떤 힘이다.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며 먼저 간 이들까지도 따뜻하게 감싸는 힘. 한강에게는 그런 따뜻함이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지켜낸 꽃은 결국 만개할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39년전 광주에서 자행 되던 잔혹한 살상을. 수많은 생명들을 세상에서 지웠지만 그렇기에 더 강력하게 기억되고 있으니.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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