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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Jun 09. 2024

높은 고도에서 살아가는 일

고요했던 연휴를 보내고 한주를 마무리하고 있어. 신나는 연휴일줄 알았는데 조금은 가라앉아 있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있으니 언젠가 지금의 마음에 대해서도 네게 편지를 쓸게. 오늘은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고민하다 얼마 전 미국의 덴버라는 지역에 출장을 다녀온 기억을 꺼내기로 해. 그곳에 가본 적 있다던 친구가 그 지역은 주 전체가 우리나라의 금강산만큼 고도가 높다고 말해주었어. 가면 왠지 모르게 머리도 아프고 구역질이 난다고, 고산병에 걸릴 수 있으니 약을 챙겨가라고 잔뜩 겁을 줬었지.


친구의 말을 듣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덴버는 도시의 고도가 약 1마일이나 되는 탓에 마일하이 시티라는 별명이 있다더라. 겁이 많은 나는 곧장 공항에 있는 약국에서 고산병약을 사서 비행기에 올라탔어.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그곳은 4월인데도 폭설이 내리는 신비한 도시였어. 일정 내내 거리에 내려앉은 포근한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걸을 수 있었어. 4월에도 좋아하는 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추운 거리에서 잠든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어.


날씨뿐만이 아니었어.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고 심장이 조금은 더 빨리 뛴다더니 정말 그렇지 뭐야. 이상하게 그렇게 높은 고도에서 며칠을 지내보니 나는 평소보다 체력이 떨어지고 쉽게 지치더라. 계획했던 일을 하나도 마치지 못하고 일정을 끝내고 나면 잠들기 바빴던 걸 보니 이상한 일이었지. 그렇게 평소보다 조금씩 더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컨디션이 나빠져서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있잖아. 이따금 햇빛이 쏟아지지만, 흐린 날이 더 많던, 눈을 마주치면 자주 인사를 건네던 그 도시의 사람들이 요즘 들어 자꾸 생각이 나. 나는 물리적인 고도가 아닌 마음의 고도가 높은 것만 같아서일까?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도시가 나를 닮아 있는 것만 같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남들보다 높은 고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것만 같아. 낯선 곳에서 겉으론 누구보다 잘 지내지만 속으로는 긴장을 많이 하고는 아닌 척 스스로를 포장하곤 해야 했으니까. 원하지 않아도 늘 타인의 감정이 감지되는 센서가 있는 나머지,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엄청난 불행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마음을 주면 끝내는 법을 모르는 스스로가 두려워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치기도 했어.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일인 줄 모르고.


대신 타인보다 고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건 하늘과 조금 더 가깝고 햇빛을 한 움큼 가득 받아낼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 그 감정들로 남들보다 풍부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고 더 따스한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아마 몇 마일 높은 마음으로 세상을 비출 수 있을 거야. 선한 영향력으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까. 중간중간 흔들리더라도 내가 너에게 가는 그 길 끝에서도 나만의 방향과 고도가 같았으면 바랄 게 없을 듯해.


다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떠올리며 하루를 떠나보내. 오늘 쌓였던 감정들을 글자에 실어 비우고 또다시 채우는 무한한 굴레에 대해서 생각해. 이런 방식을 알게 되어서 감사해. 한 주 또 더 많이 웃으며 보내볼게. 곧 또 편지할게.


2024년 6월

내일이 기대되는 마음으로, 네 평생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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