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이를 가지면 어떨 것 같아?
너를 기다리며 #3
임신 준비를 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아이에 대해 상상했다. 맞벌이를 하고 있으니 아이가 밤낮으로 울어 우리들의 단잠을 깨울지라도 각방을 쓰지 않기, 누구 한 명도 소홀함 없이 우리 둘이서 힘을 합쳐 아이를 키우는데 집중하자고 주로 그런 말들을 하면서 미래의 시간들을 그려 나갔다.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이의 교육방식이 구체화되었던 건 어느 평화로운 저녁시간이었다.
"그런데 우리 고등학교 때 기억나? 야자시간 때문에 10시까지 있었잖아!"
"그러게. 야근하는 것도 힘든데 그 어린 나이게 어떻게 학교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지?"
우리는 학교에서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던 시간들을 학교에서 채워나갔던 것을 떠올렸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수학 문제 30문제를 더 풀어 봤자 이 시간들이 수학 수능점수를 10점을 올려줄 것인지 20점을 올려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수능시험과의 시간 전쟁은 참 목표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지 않으면 기술을 배우도록 유도하자."
"재테크 가정교육 어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돈에 대해 자주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태권도나 복싱 호신술 이런 거 가르치자!"
"층간소음에 피해 끼치지 않도록 단독주택으로 이사 갈까?"
우리는 돈이 많아야 사회적 우위의 위치에 선점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에게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질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심어주고 싶다. 맞고 오는 것보다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고, 능력이 되는 한 아이가 마음껏 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교육방식, 우리가 원하는 아이를 그려나가는 시간은 우리의 세계관을 견고히 하면서 아이를 더 바라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꼈던 건 하나의 감탄사가 나올만한 인류 문화의 콘텐츠들을 마음속 깊이 묻었을 때였다. 우리 아이도 이런 콘텐츠들을 누리고 감동받고 그 속에서 날개를 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누리면서 이 세상 속에서 행복함을 깨달아가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남편의 생기부를 봤을 때 시부모님의 직업 희망란을 보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 한 구절이 나의 마음속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이 원하는 직업은 공무원이 아니었던가. 나는 저녁이 끝나가는 즈음에 혼잣말을 하듯 속삭였다.
"그냥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커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