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꼭 아이를 가져야 해? 왜?
너를 기다리며 #4
신포도 효과라는 방어기제가 있다. 목적이나 욕구가 좌절될 때, 그 욕구와 현실 간의 괴리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자기 정당화를 내세우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정당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질문의 시작은 "꼭 아이를 가져야 해?"였다.
능력도 리더십도 없으면서 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 사장의 자식들과 나의 삶을 비교하면서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을의 인생을 재생산하는 것밖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유전자 세상이다. 서울대 나온 부모들이 서울대 가는 자식을 낳을 확률이 높고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부모들이 풍요로운 자식의 삶을 보장한다.
주말의 낮잠을 힐링 시간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육아가 주는 단어도 당황스러웠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책 읽고 싶을 때 책 읽고, 영화 보고 싶을 때 영화 보고 그런 삶에 나는 만족하고 있다. 항상 아이를 나에게 맡겨 놓아야 영화 볼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을 가지는 언니를 보면서 육아는 자신을 속박하는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아이를 가지면 행복을 만드는 나만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경제적인 여유로움도 현실에 맞닿은 벽이다. 현재 맞벌이하면서 적금도 차곡차곡 쌓이고 전혀 모자람 없는 삶이다. 옷 사고 싶을 때 사고, 게임기 사고 싶을 때 사고, 외식하고 싶을 때 외식을 한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안 맞는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도 고민될 것이며, 적금하지 못하는 삶, 투자하지 못하는 삶을 살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인간들이 파괴한 환경 때문에 지구의 수명이 6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언젠가는 지구도 사라진다는 유튜브 영상을 볼 때마다 회사생활의 끝은 퇴사인 것처럼 어차피 인류의 끝도 종말일 텐데 아이를 낳아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아이를 낳는 것은 그저 인류의 본능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주변인들의 '아이를 갖지 않으면 부부 사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자식이 없으면 노후 생활이 쓸쓸하다'는 진심 어리지 않는 말들도 되새긴다. 아이가 있음으로써 부부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면 그 부부의 관계는 건강한 것이 맞는가. 노후 생활이 걱정된다면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아껴 실버타운에서 평화로운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가 아닌가. 아이를 부부간의 연결고리로, 노후생활의 대비책으로 낳는다면 낳지 않는 것이 옳다. 자식은 도구로서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존재 그 자체이다.
이 모든 이유를 상쇄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아직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질문의 답은 아직 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단편의 글이 그 대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