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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31. 2019

다문화주의자_9

10년차를 넘어선 많은 선배들은 그가 보기엔 기자라기보단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야근과 잦은 술자리, 그에 따라 손상되어가는 건강, 증발해버린 소명의식……. 물론 그럼에도 그들은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중앙 일간지 기자라는 알량하고 속물적인 자부심 말이다. 하긴 그것마저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계속 버티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이해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동정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되고 싶은 건데? 불의를 고발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가 되고 싶은 거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더는 그런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현실이란 아이들이 꿈꾸는 것처럼 이상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 그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계속해서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선배 기자들처럼 될 거란 거였다.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부정적인 전망 아니냐고 묻고 싶은가?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과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기반으로 내린 객관적인 결론이었다. 그 결론대로 될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았다. 그래서 그는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도주욕구를 자극하기라도 하듯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나날이 타락해가고 쇠락해갔다. 광고주의 중요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고, 기사 작성의 자율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높아지지도 않았다. (데스크로부터 작성한 기사의 논조를 완화하라는 요구를 받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짜증스러웠지만 따라야했다. 계속 기자로 일하고 싶다면 말이다) 이런 내부적인 양상과 더불어 신문의 대외적인 영향력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발행부수 감소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었고, 신뢰도 또한 방송만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기자’와 ‘쓰레기’란 단어의 합성어인 ‘기레기’란 말만 떠올려도 알 수 있지 않은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918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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