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내장하지 않은 문학, 가지가지 욕망의 주문에 따라 기획되고 전시되는 문학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한쪽 구석에는 그러나 아직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의 간절함을 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는 문학이 쓰이고 읽히고 있다고 믿고 싶다. 가끔 뜻밖의 치유가 일어나는 곳이 그런 곳이라는 것도.
요동치는 세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혹은 그 때문에 더욱 자기 문학을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욕망의 억제, 세상과의 거리두기, 일종의 초연함일 것이다. 하기야 모든 것을 흡수해버린 시장의 한복판에 살면서 이런 것을 지킨다는 것이 용기 없이 가능한 일 같지는 않다.
-이승우 <소설가의 귓속말>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