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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25. 2018

소설이라는 예술_5


소설예술에 대한, 내가 접해본 것 중 가장 뛰어난 통찰이 담긴 구절. 


<소설의 예술>에 대한 강연이 뜻밖에도 서사적 예술정신의 찬미가 되더라도 관대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강력하고 위엄 있는 정신으로, 포괄적이고 생기에 차 있으며, 단조롭게 흔들리는 먼 바다처럼 광대하고 대규모적인 동시에 정확하고, 가곡적이며 현명하고 신중한 정신입니다. 그것은 단편,에피소드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한히 많은 에피소드와 개별적 사건들을 담은 세계, 하나의 전체를 원합니다. 이런 서사문학의 정신은 에피소드마다 마치 그것들 하나하나가 다 특별난 것처럼, 자기를 망각한 채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사문학의 정신은 급히 서두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시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내와 성실의 정신이자 참고 견뎌나가는 정신, 사랑을 통해 향락적으로 되는 느림의 정신인 까닭에 모든 사물의 근원적 시작이 아니고서는 시작하는 법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도대체가 끝내려 하질 않습니다. 


서사적 작품이란 바다를 마시듯 펼쳐지는 모험의 기적으로서, 거기에는 다량의 삶과 인내, 진지한 예술적 근면, 참고 견디며 매일 영감을 새롭게 하는 성실이 투입됩니다. 서사적 작품은 개별적인 것이 전부인 양 그것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적인 것을 확고히 주목하는 거인적 세밀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 <소설의 예술 Die Kunst des Romans> 중 


놀랍도록 정확하고 명확하며 세밀한, 소설예술의 본질에 대한 뛰어난 통찰이다. (사실 이 짧은 덩어리의 문장들 자체가 일종의 ‘예술’이다. 결코 길지 않은 두 문단에서 토마스 만이 사용한 다채롭고 적절하며 매력적인 어휘들을 보라) 그저그런 글 아닌, 진정한 소설문학의 창작을 위해 신음해본 기억이 있는 모든 예술가는 그의 이 발언에 깊은 공감과 만족감-자신의 노력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정의 내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데서 오는 기분좋은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체험들을 이용하는 것이 내게는 항상 모든 것이었습니다. 허공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는 것은 나와는 결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세계를 나의 천재보다 더 천재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환상력에 대한 강한 거부는 속도감과 돌발적 사건, 수많은 에피소드로 긴장을 가져오는 외적 줄거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지적이고 성찰적인 소설원칙의 결과였다. 만은 이런 의미로 <소설의 예술>에서 ‘소설은 내적 삶을 더 많이 서술하고 외적 삶을 더 적게 서술할수록 그만큼 더 품격 높고 고귀한 것이 됩니다.’라고 쇼펜하우어를 인용한다. “서술문학의 비밀이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을 흥미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드러내어 해명하려는 것은 전혀 가망이 없는 듯합니다. 또한 사소한 것을 흥미 있게 만드는 데 대한 쇼펜하우어의 핵심적 언급이 서사예술의 ‘내면화’에 대한 관찰과 결부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내면화의 원리는 우리가 그 자체로서는 전혀 무의미한 것에 숨도 쉬지 않고 귀를 기울이다가, 그 단계를 넘어서서 격렬히 자극하는 거친 모험에 대한 취미를 완전히 망각하게 되는 모든 비밀들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로만 카르스트 <토마스 만_지성과 신비의 아이러니스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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