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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05. 2018

창문 없는 방_2

2    


눈을 뜬 무신을 맞이한 것은 어둠이었다. 그는 지금이 아침인지, 아니면 낮잠 끝에 마주친 오후 5시 저무는 햇살의 영역인지, 그도 아니면 지금 이 어둠과 꼭 같은 한밤중인지 헷갈렸다. 왜냐하면 벌써 일 년 넘게 그가 자신의 지친 육신을 누일 곳으로 삼고 있는 그곳은 창문이 없어 한줄기 햇살마저도 허용치 않는 한 평 크기의 고시원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생활한지 육 개월쯤 지난 어느 날 그는 돈 몇 만 원을 더 주고 창문이 있는 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걸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그러나 때맞춰 발생한 그의 일터였던 작은 공장의 파산으로 그 꿈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그 후 그는 다시는 그곳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빛도 들지 않는 좁디좁은 공간을 ‘관’이라고 부르며 관속으로 던져지는 시체처럼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그곳으로 기어들곤 했던 것이다.


그의 삶이 이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무렵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곧 이어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는 가장의 재기를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지었다. 가정의 재정적 붕괴 후 이 사회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들 네 식구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학자금 대출만으론 생활비와 교통비, 기타 학교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질구레한 금전적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휴학 후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기로 마음먹은 그는 졸업을 한 해 앞두고 학업을 중단했다. 그 선택이 대학과의 영원한 작별이 될 거라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 채로. 노가다 일은 힘들고 위험했지만 보수는 괜찮았다. 그는 그렇게 몇 달간 더 일하면 다시 학업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버텼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사업실패 후 잠적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어머니와 이혼 후 어머니의 월세 방으로 들어온 누나, 그리고 여섯 살짜리 조카 지아의 생활비를 대야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이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건설현장 막노동, 편의점 알바, 음식점 서빙, 치킨집 배달, 호텔 주방 보조,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경비일, 심지어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꽃게잡이 배를 타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와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일터를 전전하는 사이 그는 학교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시작하게 된 경영학 공부를 접는 데는 아쉬움이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라는 사실, 안정된 직장이란 인생의 다음 단계로 이르게 해줄 사다리를 상실했다는 막막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심리적 허탈감을 완화하기 위해선 단순히 경영학이 그리 고상하고 매력적인 학문이 아니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학업을 그만두며 그것은 원하지 않는 전공 대신 흥미를 느끼는 영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버티며 일을 해 돈을 모아서 다시 수능을 봐 영화연출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방송 아카데미 같은 데서 영상제작에 관한 공부를 할 계획도 세웠다. 그것은 피상적인 계획이었다. 그러나 끔찍한 자신의 현실에 좌초하지 않고 미래와 희망이란 단어를 계속해서 부여잡기 위해선 최소한 그런류의 계획이라도 있어야 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누가 그것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창문 없는 방》(홍성사, 2018)의 출간을 알리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창문 없는 방》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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