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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08. 2018

창문 없는 방_4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분노한 것은 늦게라도 깨닫게 된, 아들이 진짜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그가 믿고 있는)에 대한 그녀의 몰이해와 함께 지난 몇 년간 그가 가족들을 위해 쏟았던 노력과 희생에 대해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청춘의 낭만 대신 갖가지 육체노동과 함께했던 지난 몇 년을, 그 몇 년이라는 시간의 희생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계속 어떤 서운함을 느껴왔던 것이다. 그 서운함과 이해받지 못한 꿈이 불러일으킨 분노가 융합하며 폭발한 것이 그날 있었던 모자간의 큰 언쟁의 본질이었으리라. 


물론 어머니 편에서 보자면 목동의 큰 평수 아파트에서 풍족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은 사라지고 빚쟁이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낡고 조그만 부천의 월세 집으로 옮겨와 궁색한 삶을 이어가야만했던 데 대한 충격과 허망함이 그와 같은 아들에 대한 성마르고 거친 태도를 만든 것이었다고 이야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의 말다툼이 초래한 비극을 생각할 때 그와 그의 어머니 모두 조금만 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자신의 감정표출을 자제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다툼은 거의 임계치까지 쌓인 그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어머니라는 한 사람에게 그 분출구를 발견한 양상으로 발전해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모두와의 절연 선언 후 집을 뛰쳐나오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됐던 것이다.         



3    


그렇게 고아아닌 고아로 삼년의 시간을 살아온 그였지만 아주 가끔 부천의 집에 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나의 딸 여섯 살짜리 조카 지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 작고 귀여운 꼬마에게는 다른 가족에게선 느낄 수 없는 애정을 느꼈던 것이다. 지아는 그를 잘 따랐다. 그를 보면 항상 “무신이 삼쫀!”하고 외치며 달려와 안기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두 팔로 조카를 훌쩍 안아 올려 자신이 컴퍼스의 꼭지점이 되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재밌어? 지아야, 재밌어?”하고 묻곤 했다. 그러면 지아는 “와!”하고 소리치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삶의 기쁨을 환기시켜주곤 했던 지아와의 만남도 벌써 육 개월 넘게 이뤄지지 못했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작년 말 부천 집을 찾았다 우연히 마주친 매형과 그가 충돌한 사건이 그것이다. 아니, 충돌이라기보단 그가 일방적으로 매형을 폭행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물론 그것은 잘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신은 언젠가 한번은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형이 처음부터 싫었었다. 그의 매형은 일반적으로 결혼적령기 딸을 둔 50, 60대 여성들에게 사윗감으로 인기를 끌만한 남자였다. 듬직해 보이는 체구와 인상,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그럴듯한 소개, 이정도면 딸을 맡겨도 잘 데리고 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배포 두둑한 선물공세. 그러나 무신은 그 남자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허영심 강한 사기꾼일 뿐이란 사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챘다는 말이다. 그는 무슨 사업을 한다고 했었는데 무신은 그 사업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에게 반한 누나와 어머니의 합작으로 결혼은 성사되었고 덕분에 기울기 시작하고 있던 그의 가정 경제는 1억 원에 가까운 지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결혼은 이루어졌고 무신은 누나가 그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어주었다. 3년 정도는 무신을 비롯한 가족 모두의 소망대로 결혼생활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무신이 의혹에 찬 눈길로 바라보던 그 남자의 알 수 없는 사업이 엎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인해 그는 사기혐의로 구속되었고 남편이 짊어진 엄청난 액수의 채무에 엮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하게 된 누나는 역시 사업 실패로 인해 잠적해버린 아버지 없는 옛 가정으로 갓 세 살된 어린 딸과 함께 복귀하게 된 것이다. 


무신은 자신의 누나에게 그런 불행을 안겨준 매형을 증오했다. 그러나 구치소 안에 있는 그를 찾아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혼자서 분을 삭였었다. 그런데 문제의 지난겨울 어느 날, 조카를 보기 위해 찾아간 부천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고 말았던 것이다. 보석으로 나온 그를 본 순간 무신은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야 이 자식아!”


난데없이 나타난 처남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광경을 본 누나는 달려와 무신의 뺨을 때렸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 좋았던 건 이 모든 아수라장을 지아가 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아빠를 위협하는 무신은 그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더 이상 ‘삼쫀’일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날 이후로 무신이 가지고 있던, 그리 많지 않은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주던 관계 하나가 상실되었던 것이다. 


《창문 없는 방》(홍성사, 2018)의 출간을 알리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창문 없는 방》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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