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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10. 2018

창문 없는 방_5


 그 사건이 있은 후 그는 가족과는 완전히 교류를 끊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가장 친한 친구 명우뿐이었다. 명우는 무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은 놈’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우연히 같은 반이 되어 친해진 이래 16년째 명우는 그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소중한 친구였다. 그가 명우를 그토록 특별한 친구로 여겼던 이유는 명우가 그를 진짜로 좋아했기 때문이 첫째이고, 둘째는 그가 선량하고 진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신의 인생이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가면서 그의 곁에서 즐거운 대학시절의 초반기를 함께했던 많은 친구들은 마치 간조 때 썰물이 빠져나가듯 하나둘 그를 떠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궁해진 무신이 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돈 삼십만 원, 오십만 원을 그에게 빌려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요청이 반복되고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일이 점점 더 요원해지면서 친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자존심 강한 무신에게 그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지나자 수치심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친구에게 등을 돌려? 그러고도 너희들이 친구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너희 같은 놈들은 필요 없어! 그러나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친구들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더 이상 무신과 엮이지 않으려고 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우정의 붕괴 현상 속에서도 끝까지 무신의 곁을 지켜준 친구가 바로 명우였다. 물론 그로 인해 명우는 약간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무신의 말처럼 돈 몇 푼 때문에 전화조차 받지 않았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명우는 자신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무신의 경제적 어려움에 원조를 보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그가 무신을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신이 자신과 잘 통한다고 느꼈고, 비록 현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 또한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친구에게 격려와 위로를 제공해주었던 명우는 무신에겐 둘도 없는, 없어서는 안 될, 최후까지 남은 소중한 한 사람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명우도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무신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야근 많고 바쁘기로 유명한 광고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것은 이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에 비해 한없이 비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무신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4    


힘겨운 노동과 죽음 같은 어둠으로의 복귀가 반복되던 어느 날 무신은 생각했다. 


‘나는 인간인가, 개미인가? 개미, 그것도 일개미다! 죽어라고 일을 하나 그 열매는 몽땅 다 여왕개미에게 바치는.’ 


위험하고 힘든 공사현장의 막노동 아닌 치킨집 배달일이나 편의점 알바로 그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고작 백만 원 남짓이었다. 그 중 고시원 방값, 학자금 대출 이자, 휴대폰 요금, 교통비와 식대를 제하면 그의 수중에 남는 돈은 이십만 원가량이 고작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걸로 어떻게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결혼은? 일 년에 이백만 원씩 꼬박꼬박 모아서? 그래 그렇게 한 오년 일해서 천만 원 정도 모았다 치자. 신혼살림은 어디다 차리지? 여기 고시원 방에? 어둠 가득한 관에? 과연 그에 동의할 여자가 있을까? 도대체 누가 나를, 아니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춘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왜 이런 지옥 같은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가? 이 현실이, 이 체제가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개미로 남은 사십년의 삶을 여왕개미를 위해 노동하며 바쳐야 하는가? 이렇게 살면서 TV 오락프로나 보며 낄낄대다 잠들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런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됐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분개와 답답함 속에서도 그는 또다시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창문 없는 방》(홍성사, 2018)의 출간을 알리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창문 없는 방》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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