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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광호 Dec 10. 2018

창문 없는 방_6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라는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에 대해 그가 강력하고도 확고한 저항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순 없다. 나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하는 따위의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그 일이 하기 싫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편의점이나 공장, 공공기관, 기업 같은 곳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분명하고. 그러나 소수의 창조적인 개인들, 대표적으로 예술가들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예술가뿐만 아니라 산업, 과학, 언론, 정치 같은 분야에서 어떤 혁신과 진보를 이뤄내는 소수의 사람들은 먼저 거론된 다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다. 이런 소수의 사람들에게 무미건조한 바코드 찍기나 따분한 관료적 일평생, 거대조직의 부속품으로 단조로운 야근을 반복해야 하는 기업체 직원의 일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수에 속한다. 따라서 나는 보다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 그것은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저널리즘이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아직 내가 인식하지 못한 다른 어떤 일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먹고 입고 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아닌 일을 억지로 하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일을 그만둬야겠다. 그만두고 좀 쉬면서 생각을 해봐야겠다. 나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인 실직 상태로 돌입한 지 이주일이 지난 그날 아침 열시에 그는 또 다시 시작된 하루를 벗어날 수 없는 어두컴컴한 관에서 깨어남으로 맞이했던 것이다. 손을 더듬어 책상위의 스탠드를 켜자 방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로 1.5m 세로 1.85m, 방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침대, 책상, 책꽂이가 하나로 붙어있는 일체형 가구. 그 일체형 가구를 뺀 공간은 그가 채 두 걸음도 내딛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아직도 머릿속엔 옥상 난간과 기분 나쁜 벌레의 잔영이 맴돌고 있었다. 그는 그 악몽의 찌꺼기를 밀쳐내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물통을 집어들어 안에 든 물을 마셨다. 물은 더운 날씨와 높은 실내 온도 탓에 미지근하다 못해 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절반쯤 남아있던 물을 모두 마셨다. 물통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은 그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오전 10시 23분. 늦잠을 잤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스마트폰으로 오늘 아침 새로 올라온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뇌물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 한 정치인의 투신자살, 경기침체의 심화와 가계대출의 기록적인 증가세, 보복 운전 끝에 사고를 낸 30대 젊은이에 관한 기사 등 구역질나는 소식뿐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내던진 후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찾아들었다. 통장에 남아 있는 돈 156만 원이라는 숫자, 고시원 공동 주방에 있는 전기밥솥의 맛없는 밥과 쉰 김치로 아침을 때울까 아니면 근처 식당에서 5,500원짜리 백반을 사먹을까 하는 고민, 벌써부터 쪄오기 시작하는 날씨가 이따 두 시쯤 되면 얼마나 맹위를 떨칠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들…….  


그렇게 한동안 침대 위에서 두서없는 생각들을 이어가던 그가 결심한 듯 일어나 책상 귀퉁이에 놓여있던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찬란한 햇살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근처의 허름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 없는 방》(홍성사, 2018)의 출간을 알리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영풍문고에서 《창문 없는 방》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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