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의 하루는 책상 위에서 끝난다.

하루를 움직이고, 밤에야 나를 만난다.


전기 기술자의 하루는 몸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진짜 하루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완성된다. 기술과 사유, 땀과 기록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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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작업복을 입고, 공구 가방을 챙긴다.
머리는 말끔히 감겨 있지만, 손은 늘 거칠다.
나는 전기 기술자다.

철근과 콘크리트, 배관과 배선.
정신없이 움직이고, 땀으로 하루를 지운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남는 건 피로뿐인 날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피로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는다.
작업복을 벗고 나면, 그 자리가 오늘 하루의 진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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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 마음의 일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음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간절하게 마음을 돌볼 시간을 원한다.

나는 그게 ‘책상 위에서의 시간’이라 믿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밤,
노트북 화면 불빛 하나로 충분한 공간,
그곳에 앉아 책을 펴거나,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가끔은 블로그에 그날 있었던 일을 글로 적는다.

그 짧은 시간이 쌓여서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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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자는 몸이 자산이지, 뭘 그렇게까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어느 순간 기계처럼 살아갈 것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일과를 반복하며
‘나’ 없이 하루를 복사해 붙여 넣는 삶.

그게 싫었다.
그래서 피곤한 날에도 책상에 앉는다.
그 하루를 나의 언어로 정리하고 나면,
적어도 내가 내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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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나의 전기에너지다.

작은 습관 하나가 사람을 바꾼다.
전기 한 줄이 건물의 생명을 움직이듯,
나에겐 글쓰기와 공부가 그런 에너지다.

기술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생각이 삶을 지탱하게 한다면
나는 그 둘을 동시에 갖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술자의 손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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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의 삶도, 사유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현장에 나간다.
먼지와 소음, 무거운 장비들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매일 밤, 책상 앞에 앉는다.
그곳에서 나는 기술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고,
기록하는 사람이며,
나를 다시 발견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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