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여자에겐 언제나 운동장의 9분의 1쯤 허락되어 왔다

by 수산

너무 재밌다.

그냥 재밌다.

진짜 재밌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책을 읽어서 신난다. 이럴 수가. 이 작가님 에세이를 너무 잘 쓰신다. 오랜만에 글 읽으면서 깔깔 웃기도 하고 슬쩍 눈시울도 붉혀봤다. 이 책…….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된다는 휴먼드라마시트콤코미디액션활극성장어드벤쳐감동익스프레스장르다. 직접 봐야 한다. 진짜 재밌다.


내가 얼마 전 스포츠와 윤리 강의 때 '스포츠 상황의 성차별'을 주제로 과제를 썼는데 그때 이 책을 길~게 언급했었다. 그러니 편리하게 그걸 가져다 붙이겠다.


<스포츠 상황의 성차별>


공학을 나왔던 중학생 때와 여자뿐이었던 고등학생 때의 체육 경험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당장 이 ‘스포츠와 윤리’ 강의만 하더라도 남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여자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여자에게 좋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읽기 자료에 언급된 김혼비 저자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재밌게 읽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유독 축구는 어려서부터 남자들만의 운동이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들은 40대 미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저자는 30대 기혼이고 이 글은 쓰는 나는 20대 미혼인데 겪은 경험은 똑같았다. 2018년에 출간된 김혼비 작가의 저서에서 ‘우리 팀 총무 언니의 딸은 미술 숙제로 축구하는 엄마를 그려갔더니 아빠로 착각하는 담임과 반 아이들에게 “여자도 축구해요”라고 설명해야 했다.’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지금도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건 체육 선생님에서부터 유구하게 자행되는 차별이었다. 자유시간을 주면 여자애들은 피구를 시키고 남자애들은 축구를 시켰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항상 운동장의 한구석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남자애들은 운동장의 모든 구역을 자유롭게 뛰어다녔다. 피구를 하다가 축구장으로 공이 넘어가면 운동장 전체를 쏘다니는 남자 중 하나가 구석에 있는 피구장으로 바람 빠진 공을 높이 걷어차서 돌려줬다. 그게 당연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간혹 여자와 남자가 섞여서 축구를 할 때도 있었지만 드문 일이었다. 남자들이 ‘여자는 빠져’나 ‘여자니까 골키퍼 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체육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남자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하는 재량 학습 시간에는 여자애들은 방송댄스와 요가를, 남자애들은 축구와 탁구를 했다. 체육대회에서도 남자는 축구를 여자는 피구를 했다. 여자에게 허락된 운동과 남자에게 허락된 운동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남자에게 더 많은 것을 허용한다. 새 축구공과 축구화를, 넓은 운동장, 남자 탈의실(우리 중학교에는 남자 탈의실만 있었다)을 말이다.

그런 일을 겪어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달라졌다. 여자중학교를 나온 애들은 축구를 정말 잘했기 때문이다. 운동장에 언제나 축구하는 여자들이 있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면 ‘이제 축구나 피구 하고 싶은 애들은 해라’라고 말했다. 선택지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몸을 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그늘진 스탠드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에 열중했다. 성인이 되고 여자들이 모여 축구할 기회가 이렇게 없을 줄 알았다면 그때 하는 건데. 정말 아깝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 개방되어 있길래 들어갔던 적이 있다. 때마침 운동장에는 비치된 축구공이 하나 보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편을 갈라 축구를 했다. 인원수도 못 채웠지만 골대에 골을 넣으면 득점이라는 방식은 똑같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공을 차는 일이 생각보다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껏 내가 그만큼 많이 공을 차본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기도 했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들에게 스포츠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축구처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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