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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산 Oct 27. 2024

아버지 죽이기 (6)

오르페우스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은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진장미의 문자를 보고 답장할 수 없는 이 현실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은원이 어디 갔을까 하는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은원의 장례식장뿐이었다. 그 애의 집이나 친구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은원의 장례식장을 알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모인 카톡방만 봐도 교복을 입고 은원의 장례식에 가겠다는 아이들이 쇄도했다. 나는 익숙한 번호의 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장례식장은 유명한 대학병원과 붙어 있었고 나도 종종 지나가면서 본 곳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죽음이 존재했다는 게 생경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우리 학교 애들은 이미 오전쯤에나 들렀는지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도 교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에서 모르는 여자애가 손을 씻고 있는 것에 시선이 갔다. 얼굴은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옷차림이 독특했다. 90년대 록스타 하면 떠오를 만한 차림새였다. 세면대에 그 애가 찬 체인이 덜렁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거슬렸다. 난 그 뒤에서 기다렸다. 최대한 모르는 척하면서 손을 닦는데 걔가 말을 걸었다.

“언니, 담배 있어요?”

목소리는 꼭 중학생 같았다. 나는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 애를 내려다봤다. 렌즈를 꼈는지 눈 색이 초록색이었다.

“……없는데.“

“성인 아니죠?”

“어.”

“아, 아쉽네.”

다행히 그 대화를 마치고 여자애는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순순한 태도가 의외였다. 불량아인 건지 아닌 건지 모를 태도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주변에 죽음이랄 게 없었기에 첫 방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외조부모님은 양쪽 다 정정하셨고 친할머니께서도 아흔이 넘은 나이에 정정하셨다. 나는 주위 눈치를 보고는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의 공기는 내가 가봤던 어떤 장소의 공기보다도 남달랐다. 그 대상이 어떤 인생을 살아온 어떤 인물이든 간에 장례식장 전체에 음울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 특히 은원의 장례식은 은원이 어린 데다가 부모가 상주여서인지 유독 깊이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아까 화장실에서 보았던 조그만 여자애가 나를 앞서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설마 했는데 저 애도 은원의 장례식에 온 거였다니. 저런 타입의 여자애가 은원과 아는 사이인 게 신기했다. 은원은 늘 모범생들이랑만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여자애가 들어서자 장례식장의 공기가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이은혜! 네가 어디라고 여길 와!”

“이런 정신 나간 계집애를 봤나.”

은원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은혜라고 불리는 조그만 여자애를 물어뜯느라 나한테 관심도 주지 않았다. 정적인 검은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날뛰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사람에서부터 나보다 네다섯 살 많아 보이는 사람까지 모두 그랬다. 눈치가 빠른 누군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나가자며 자리를 내뺐다. 여자애는 상주로 보이는 인물에게 등짝을 맞고 성질을 부렸다. 꼭 어린 치와와 같았다.

“하지 마! 그냥 언니 보러 온 거니까! 인사만 하고 갈 거야!”

“너 요즘 어디서 뭘 하니? 미쳤어? 몸 파는 기집애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래?”

여자애의 입에서 나온 ‘언니’라는 호칭. 나는 불현듯 여자애가 은원의 동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여자애의 둥그스름한 이목구비가 어쩐지 은원의 생전 얼굴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은’이라는 돌림자가 들어간 이름도 그랬다. 은원에게 동생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어쩐지 챙겨주는 게 익숙했던 은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대화를 가만히 두고 보고 있기 싫었다. 내가 은원이었다면 처맞는 은혜를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은원은 지금 내 아버지의 몸을 빌리고 있으니까, 따지고 보면 저 여자애는 내 고모뻘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이상한 방향으로 사고가 뻗었다.

“저기……”

내가 말을 걸기 위해 손을 뻗자 주변의 나이 든 중년 남자가 고개를 다급하게 저었다. 끼어들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하고는 은원의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에게 꿋꿋하게 말을 걸었다.

“은원이 친구인데요.”

그들의 옆에 바짝 붙어 꾸역꾸역 말을 끊었다. 은원의 어머니는 나를 수치심과 당황스러움이 담긴 얼굴로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다 몇 시간 전에 왔다가 갔는데…….”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은혜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빈소로 들어갔다. 은혜는 눈물이 차올라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순순히 따랐다. 씨근덕거리는 표정이 아직 한참 앳된 느낌을 준다. 알 수 없는 안쓰러움에 마음이 갔다.

기독교 집안인 모양인지 절을 하지 않고 꽃만 두고 오면 되었다. 영정사진 속의 은원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은원은 저렇게 생겼었다. 우습게도 ‘진짜’ 은원의 몸과 이렇게 가까이에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어제 내내 붙어 다녔는데도, 이곳의 은원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옆을 힐끔 쳐다봤는데 은혜는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었다. 언니를 많이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울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은원은 나와 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단지 내 아버지의 몸에 들어갔을 뿐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나는 은원의 인생에 안타까움을 느끼기에는 그 애에 대해서 아는 게 부족했다.

차라리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조만간 우리 아버지도 이런 장례식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감옥에 간다면 아빠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장례식에서 엄마도 나도 울고 있다면 그건 아빠를 지극히 사랑했던 평범한 가족으로 보일 텐데, 그 꼴을 당하기는 싫었다. 아빠가 우리에게 준 상처는 고스란히 무시하고 아빠를 위해 울어주고 싶지 않았다. 아빠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허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사를 마친 나는 아는 사람도 없고 근처에 은원이도 보이지도 않아서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은혜를 향한 드잡이는 계속되었다. 다들 외부인인 내 눈치도 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른들이 입을 모아 어린애를 괴롭히는 게 여간 흉한 꼴이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라 테이블에서도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그 가출했다는 동생이지, 대체 뭘 하고 지낸대, 염치없게 장례식에는 왔네, 둘이 어릴 땐 사이가 좋지 않았나.

은원과 은혜의 이야기가 그런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늘 겪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아빠가 무슨 사고를 쳤고, 우리 엄마는 또 무슨 고초를 겪고,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딴 섬처럼 홀로 남겨진 기분을 잘 알았다. 나는 그들이 단지 자신의 삶이 빈약하여 아무런 주제를 품고 있지 못할 뿐이라며 속으로 경멸해왔다.

폭이 좁은 인생인 그들의 눈에 우리는 딱 좋은 이야깃거리인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지 못하면서 우리를 뜯어먹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제 딴에는 용기를 내서 언니를 보러왔을 은혜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은혜가 형체도 없이 해체당하기 전에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어차피 입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저, 진정하세요.”

아까 나를 노려보았던 중년 남자가 말을 이었다.

“학생, 남의 집 일에 끼는 거 아니야.”

“근데 애를 너무 쥐 잡듯이 잡길래…… 은원이가 뭐라고 생각하겠나 싶어서…… 얘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어요.”

내 말의 도중에 은혜가 크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은혜가 제발 입을 닫아주길 바랐지만, 은혜에게는 닿지 않았다.

“씨발, 웃기네. 엄마. 처음 본 사람 눈에도 우리 집이 존나 병신 같나 보다.”

“이은혜!”

은원의 어머니는 은혜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은혜의 앞을 막아섰다. 내가 특별히 정의로운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 주걱 같은 손으로 뺨을 얻어맞았다가는 가녀린 은혜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뺨을 처음 맞아봤다. 어설프게 끼어든 바람에 뺨이 아니라 턱쯤을 맞긴 했지만 말이다. 얼굴의 반쪽이 후끈거렸다. 은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내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은원의 어머니는 갑자기 끼어든 나 때문에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머, 얘…….”

멀리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은원의 어머니의 손목을 누군가가 낚아챈다. 고개를 들어보면 아빠였다. 아빠는 190에 가까운 키 덕분에 누구에게든 위협인 인상이었다. 나는 언제나 아빠를 올려다봤고, 그래서 아빠가 배로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빠가 와서 안심했다. 이상하게도 정말 그랬다.

“그만두세요. 애들 보기 좋지 않습니다.”

아. 또 이은원이다. 아빠가 아니다. 우리 아빠는 절대 그렇게 차분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빠는 다혈질이고 곧잘 욕을 한다. 화를 낼 때는 물건을 던지고 목청부터 높아진다. 은원은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 내린다. 은원의 어머니는 황급히 손을 빼내 뒤로 감춘다.

“어,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몸 앞에서 그들은 모두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아까는 상식도 도덕도 없던 인간들이 하나 같이 주춤거리는 것을 보자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제 딸입니다. 친구 추모하고 싶다길래 데려다주기만 하려 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은원은 차분하게 사건을 해결할 줄 알았다. 우리는 몇 번이고 사과를 받았다. 은원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소정의 병원비까지 주었고, 나는 그걸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어색한 인사를 받으며 빈소를 빠져나왔다.

“나가자.”

“응, 아빠……”

나는 뒤를 계속 힐끔거렸다. 은혜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소란이 있었으니 은혜를 대놓고 나무라기에도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다.

우리는 별말을 없이 장례식장에 나가서 한참을 걸었다. 나는 은원에게 폭언에 대한 사과를 먼저 하면 좋을지, 아니면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먼저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머지않아 깜깜한 놀이터가 하나 나타났고 나는 들어가는 게 어떨까 의사를 물었다. 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어린이용 그네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덩치 큰 아버지의 몸이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은원은 자기가 어떤 꼴인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까먹었을 수도 있다. 방금 자기 장례식에 다녀온 참이니까.

나는 은원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장례식장에 갔고, 거기서 집 나간 동생을 봤고, 또 그 동생을 학대하려는 부모를 마주친 건 감히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느긋하게 그네를 앞뒤로 움직였다.

“어릴 땐 동생이랑 그네를 자주 탔어.”

“둘이 사이 좋았나 봐.”

나는 모르는 척을 했다. 아까 테이블에서 둘이 어린 시절에 꼭 붙어 다녔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 걔가 날 많이 따랐어. 내가 몇 시간이고 그네를 밀어달라고만 해도 그대로 따랐어. 자기는 안 타고 말이야. 진짜 착하지.“

“아, 첫째 행동 미쳤네.”

내가 장난스럽게 나무라자 은원이 키득거렸다.

“크고 나서는 안 그러더라고. 사이가 안 좋아져서…… 부모님이 공부 잘하는 나만 예뻐하고, 은혜는 자꾸 혼냈거든. 내가 보기에 은혜는 공부에 별로 소질이 없었지만. 그래도 걔는 그거 말고도 잘하는 거 많았어. 옷도 어디서인지 잘 사다 입고, 올영 들어가면 세 시간 동안 구경만 하고. 매일 무슨 팩하고. 근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걸 다 쓸데없는 거라고 뭐라 했거든. 솔직히는 나도 그랬고……”

“전교 1등 행동.”

“그만해라.”

“어.”

몇 시간 전의 싸움을 무마하려는 시도가 물 건너갔다. 그건 아빠가 나한테 자주 쓰던 방법이기도 하다. 아빠는 내게 화를 있는 대로 내놓고서는 며칠이 지나면 ‘소선아, 아빠랑 내기할까?’ 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풀고는 했다. 나는 그 행동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쯤 아빠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줄지 기다리는 행위를 멈추지 못했다. 내가 아빠처럼 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참지 못할 정도로 나를 향한 혐오감이 들었다. 나는 울렁이는 속을 내리누르고 입을 다물었다. 은원은 내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그 뒤로는 계속 안 좋았어. 우리 서로 대화 안 한 지 몇 년이 지났거든. 걔가 엄마 아빠한테 맞는 거, 그거 나는 모르는 척했어. 어릴 때부터 공부 안 하면 굶고, 맞고, 이러는 일 많았는데……. 사실 나는 몇 번 당한 적 없거든. 그게 무서워서 공부하기도 했고. 다행히 공부하는 게 적성에도 맞았으니까. 근데 그러는 게 점점 심해지다가 한 번은 걔 얼굴이 이만큼, 부었던 적 있는데……. 그 뒤로 집을 나갔어.“

“뭐?”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을 전해 듣는 기분이었다. 음성이 문자로 치환되어 머리로 해석되긴 했지만,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아빠한테 개처럼 처맞은 적 없다. 아빠는 내 머리를 후려치거나 날 향해 의자나 프라이팬 같은 걸 던진 적은 있어도 내가 죽을 만큼 작정하고 팬 적은 없다. 나는 어쩌면 죽을 만큼 맞아본 적이 없어서 맞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빠 앞에서 설설 기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빠는 날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나는 아빠가 날 때린 기억이 왜 이렇게 선명한 걸까? 왜 때린 사람은 없고 맞은 사람은 있는 걸까.

게다가 우리 집은 내 성적 따위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애초에 내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학부모 회의나 체험학습 때에 부모님이 오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아빠는 내가 몇 학년인지도 자주 까먹었고, 엄마는 아빠보다는 관심을 가졌지만 ‘소선이가 알아서 하겠지’라며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서부터 엄마에게도 성적표를 보여드리는 걸 관둔 지 오래였다.

이렇게 나는 또 은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아픔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겪든, 또 무슨 이야기를 듣든 내가 입은 상처가 떠오른다. 내 삶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입어 얼룩덜룩하다. 과거를 잠시 잊은 채로 인생을 살아가다가도 상처를 입었던 때와 비슷한 흔적이 보이면 흉터가 아려왔다.

나는 은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은원은 마트에서 가장 싼 물건만 고르는 삶 같은 건 겪어본 적이 없다. 은원은 언제나 따뜻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공부했을 거다. 은원은 비가 새는 천장이나 머리끝까지 아려오는 추위, 곰팡이 냄새나는 벽 같은 걸 견딜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은원은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고 책을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은원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겠지만, 나는 은원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따위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게 아쉽게 느껴졌다. 은원에게 이럴 때 뭐라도 그럴듯한 한 마디를 건네며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은혜가 나가고서 힘들었어. 왜냐면…….“

은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그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은원이 가진 풍요로움 속의 고독은 내가 알 수 없는 상처였지만, 은원이 은혜로부터 얻은 상처는 나도 짐작이 갔다. 은혜가 비명을 지르며 맞고, 가출하여 거리를 방황하는 동안, 은원의 마음이 얼마나 곪았을지 짐작이 갔다. 엄마가 공황장애로 쓰러지고 일을 쉬는 동안 다들 나의 상처는 돌보아주지 않았던 것처럼, 엄마를 괴롭힌 가해자로 몰아가는 시선이 있었던 것처럼. 은원도 똑같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은원이 은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은원은 은혜를 사랑하고 미워했을 것이다. 은혜의 고통은 모두가 알지만, 은원의 고통은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은원을 가해자의 일원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은원의 상처가 보였다. 은원의 상처는 나의 것과 닮았다.

“괜찮아. 말해도 돼. 너랑 은혜는 그냥……. 상황이 나빴던 거지. 내 눈에는 서로 아끼는 게 보이더라.”

“……아닐지도 몰라. 난 걔가 처음 나갔다는 말을 듣고 엄청 배신감 느꼈거든. 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줄 생각보다도, 나도 이 집에서 버티고 있는데 왜 너만 혼자 빠져나가냐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참……. 별로 좋은 언니가 아니었지.”

“너도 힘들었을 텐데.”

“걔가 더 힘들었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네가 더 잘 버텼다고 네가 안 힘든 건 아냐.”

나는 함부로 은원과 은혜 중에 누가 더 힘들었다고 확언하지 않았다. 혹자의 시선으로 은원은 정말로 가해자일지도 몰랐다. 은혜는 지금도 은원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은원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힘듦을 고백하는 시간 말이다. 내가 진장미에게 말하고 싶었고, 어쩌면 은원도 진장미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그 순간이다. 은원의 눈, 나의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그래, 맞아. 나도 힘들었어. 나도 새벽까지 공부하기 싫었어. 친구들이 맨날 떠드는 드라마, 유튜브, 다 궁금했고. 학교 끝나고 놀러 가는 거 다 따라가고 싶었고. 수학여행도 가고 싶었어.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죽고 싶었어.“

“죽고 싶었다고?”

“응. 나 그래서 그날도 죽으려고 했어.”

은원이 토하듯이 말했다.

“나 트럭에 치인 적 없어. 나 자살했어. 내 방에서.”

괴로움이 가득한 은원의 눈이 보였다. 은원은 어쩌면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멋대로 은원의 인생을 어림짐작하고 나의 기준으로 그를 판단하려 들었던 것이 미안했다. 나는 은원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은원의 죽음이 슬펐다. 장례식장에서는 은원의 죽음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은원도 울고 있었고 나도 어느샌가 따라 울었다. 더는 은원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울었다. 몇 번이고 내게도 찾아온 순간들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길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밥을 먹다가도. 문득 그냥 죽어버릴까, 그냥 죽으면 누군가 내 고통을 알아줄까, 하고 생각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은원은 또 다른 나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을 뿐이었다. 흐르는 눈물 탓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이 삼켜진다. 네가 왜 죽어. 내가 살아 있는데 왜 네가 죽어. 나는 죽지 못할 정도로 슬펐는데 왜 넌 혼자 죽어버린 거야.

“네가 그대로 우리 아빠 몸에 있었으면 좋겠어.”

“뭐?”

그런 말은 꼭 툭 하고 튀어나온다. 나도 말하고 나서야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곧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아빠 별로 좋은 사람 아니었거든. 근데 네가 들어가니까 우리 아빠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서. 네가 날 구하러 왔을 때 정말 좋았어. 경찰들 앞에서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너 말 잘하더라. 어른 같았어.”

은원은 쑥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좋아. 너랑 있을 수 있어서.”

“나, 나랑?”

은원에게 잘해준 기억이 없어서 말을 더듬었다. 은원은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너랑 있으면 옳은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즐거워. 너랑 있으면 나도 더 용기 있어지는 것 같고.“

나는 은원의 말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아빠를 닮은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사실 아빠를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내가 아빠를 보고 듣고 배우지 않았다면 아빠도 내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나쁜 사람이야. 아빠가 그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인걸. 게다가 지금은 이렇게 된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까지 하니까……”

“난 이제 너네 아빠잖아. 난 괜찮아.”

은원은 이상할 정도로 확신에 차서 말했다. 기이한 것은 나도 이제 은원이 내 진짜 아빠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은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과 아빠의 목소리로 전해 듣는 ”난 괜찮아“라는 음성이 반복해서 머릿속을 울렸다. 아빠는 괜찮아.

“그렇지만 난 네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말도 안 걸었을 거야. 네가 행복해 보였으니까……. 지금은 네가 나처럼 불행해 보여서 겨우 얘기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누구나 그래. 누구나 자기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럼 상대가 떠나버릴 것 같으니까.”

“근데 들켜버렸잖아.”

“근데 난 안 떠났잖아.”

그래. 은원은 떠나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이고 진장미가 떠날 것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은원은 지금 내 옆에 있었다. 나는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시 외로움을 잊었다. 이대로 은원과 함께하고 싶다. 은원과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다. 내가 그렇게 물은 건 충동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여행 갈래?”

“여행?”

“나도 수학여행 가본 적 없거든. 가족 여행은 전부 망했었고.”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건지, 은원과 처음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몇 번의 국내 여행은 좋았던 적 없다. 가끔 아버지의 기분이 내키면 낚시터나 저수지로 함께 떠나곤 했다. 아버지는 운전 중에 시비가 걸리거나, 약수터에서 시비가 걸리거나, 함께 낚시 중이던 친구와 싸움을 하거나 했다. 아버지는 오는 시비를 무조건 받아쳐야 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보복 운전으로 다른 차를 쫓다가 과속을 하는 일이 몇 번 있었고, 나는 140km가 넘는 속도계를 보며 사고가 나진 않을지 벌벌 떨곤 했다.

엄마와 나는 둘 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낚시를 좋아했다. 아빠가 낚시를 하는 동안에 엄마와 나는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기다려야 했다.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저수지가 무서웠지만, 아빠가 화내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티 낼 수 없었다. 언제는 차를 타고 낚시터로 가던 중 차 안으로 커다란 벌이 들어왔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벌이 싫다고 비명을 질렀고 그에 아버지는 크게 분노했다. 이렇게 약해 빠져서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느냐는 거였다. 매우 더운 여름이었는데, 아버지는 기분이 상했으니 혼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나와 엄마더러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엄마와 나는 국도 한복판의 뙤약볕을 걸었다. 아빠가 핸드폰과 지갑도 두고 내리라고 했기 때문에, 나와 엄마는 그로부터 몇 시간을 더 걸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를 벌준 다음에야 돌아왔다. “잘못했어, 안 했어?” 그럼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그러고서야 에어컨 켜진 차에 탈 수 있었다.

여행을 간다는 건 내게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면 몰라도, 둘 이상이 가는 여행이 즐거울 리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디로든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으로. 내가 상처받은 흔적들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머리 아픈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고서. 그리고 그게 은원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치만 놀러 가면 돈 써야 할 텐데……”

은원이 제법 나 같은 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내가 또 돈 때문에 법석을 떨까 봐 겁먹은 거지, 정말로 가기 싫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냐,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돈 쓰자. 너희 부모님께 돈도 받았잖아.”

“그거 써도 되는 거야? 병원 가야 할 텐데.”

“별로 안 아파. 정말.”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밤바람을 맞고 있으니 정말로 달아올랐던 뺨이 식은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괜찮아.”

은원이 웃는다. 그러자 정말로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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