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
우리는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다. 은혜를 기다려볼까 싶기도 했으나, 은혜에게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밤의 서울역은 내 상상보다는 한적했다. 서울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두 개 먹었다. 은원은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가 소화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덮쳐오고 있었다.
어디로든 멀리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KTX에서 제일 먼저 오는 것을 골랐다. 그리고 제일 멀리 가는 강릉역을 목적지로 전했다.
“바다 보고 싶어.”
“나도.”
간만에 뜻이 맞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물을 두 병 샀고 기차가 오기 15분 전에 전광판을 보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기차는 밤인데도 금방 찼다. 기차 안은 우리 집보다 훨씬 따뜻하고 훈기가 돌았다. 늦은 밤이어서인지 승객 대부분이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들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설레서 정신이 또렷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건 은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한껏 소리를 낮추고 속닥였다. 우리가 언젠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다면 이런 모습일지도 몰랐다.
“은원아, KTX 타본 적 있어?”
“음.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럼 어릴 때 어디로 놀러 갔었어? 아니면 아예 안 놀러 갔어?”
내가 은원을 매년 해외여행쯤은 손쉽게 가는 애로 봤던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은원에 대한 내 시선이 편견에 가득 차 있었음을 인정했다.
“영어 배우면 좋다고 캐나다에 있는 친척집에 몇 달. 근데 별로 좋은 기억은 아냐. 그 집 친척들이랑 사이가 안 좋았거든.”
“재미없었겠다.”
“응.”
“난 경마장으로 자주 놀러 갔었어. 경마공원, 마상 박물관…… 뭐 그런 데나 다녔지. 아, 말 타는 건 재밌었어.“
여상한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나 또한 경마장에 가지고 있는 좋은 기억은 없었다. 나는 평생 경마장에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나는 줄곧 아빠가 경마잡지와 형광펜과 컴퓨터용 사인펜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봐왔다. 아빠는 내게 ”소선이도 해볼래? 어떤 말이 제일 잘 달릴 것 같은지 맞히는 거야“ 하며 단승식이니 복승식이니 하는 걸 알려줬다. 어린 나는 그게 우리 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나는 가장 건강하고 윤기 흐르는 말을 골랐다. 그 말들이 일평생을 달리다가 기껏해야 세 살이면 퇴행성 관절염에 걸려 안락사당하는 운명의 불쌍한 녀석들인 줄도 몰랐다.
나는 경마장 홈페이지에서 모르는 말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이벤트를 하고 액자에 담은 말발굽을 몇 개 받았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짤막한 설명이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거기엔 이들의 가격이 대략 몇천만 원쯤 하는지와 혈통이 얼마나 좋은지도 나와 있었다. 내가 알기로 걔들은 단 한 번도 일등을 하지 못했다. 천상천하라는 이름을 붙인 말은 일 년을 살다가 말고기가 됐고 바리공주라는 말은 이년을 살다가 한 목장으로 갔다고 했다.
경마공원에서 처음으로 만난 커다란 말은 내가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컸다. 조심스레 안장에 앉으면 몹시 흔들렸다. 나는 고삐를 붙잡고 좁고 긴 길을 한 바퀴 돌았다. 정해진 길을 느린 속도로 터벅터벅 걸어야 하는 말이 불쌍했다. 나는 말이 나를 멀리 던져버리거나 밟아버리는 상상을 했다.
경마장에서 경기가 시작되면 경마공원까지 관중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콘서트장에서 듣는 응원 소리랑은 좀 달랐다. 비명 같기도 하고 야유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혹은 커다란 솥단지에 사람들을 밀어놓고 팔팔 끓이면 그런 소리가 날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내게 공포를 주는 기억으로 남았다는 거다.
나와 은원은 창밖에 무언가 지나갈 때마다 그걸 주제로 소소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뒤늦게나마 은원이 왜 장미를 좋아하게 됐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너 진장미 좋아하는 거 티 나더라.”
우리 아빠의 얼굴로 부끄러움 타는 걸 보는 건 징그러웠지만, 나는 무슨 바람인지 은원의 연애 사정이 궁금해졌다. 은원은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오느라 연애라고는 한 번도 안 해봤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런 애의 짝사랑 상대가 하필 진장미인 게 신기했다.
“왜 진장미야? 얘기해주면 안 돼?”
“자, 장미 예쁘잖아…… 이름도 그렇고.”
“그게 끝? 진심?”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야, 됐어. 창피하면 얘기 안 해도 돼. 너 고백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냐.”
“얘기할게, 하면 되잖아.“
나는 뭐라고 더 놀릴까 궁리하려다가 그러면 은원이 입을 꼭 다물어버릴 것 같길래 참았다. 은원이 해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반장인 은원이 같은 반 아이들에게 청소하라고 전했는데, 아이들이 그걸 듣지 않고 몽땅 도망가버린 것이다. 별수 없이 은원이 혼자서 청소를 도맡았고, 그를 안쓰럽게 여긴 장미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은원은 그때부터 장미와 친해지고 싶어서 계속 들이댔단다.
은원이 장미와 있었던 일을 내게 들려주는 것이 어딘가 어색했다. 나는 분명히 내가 장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은원이 더 장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장미와 은원이 아는 장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은원의 장미에서도 내가 아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은원이 보는 장미도 역시 내가 아는 장미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맞아, 걔가 그런 구석이 있었지.”
“그래서 난 장미처럼 살고 싶었어.”
우린 진장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진장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있잖아,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넌 분명 장미에 대해서 잘은 몰랐잖아. 걔가 어떤 집에서 나고 자랐는지도 몰랐고. 그런데도 장미처럼 살고 싶어?”
“난 내가 장미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 안 해. 그리고 걔의 환경 같은 건 나한테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그냥 걔가 나한테 보여주는 모습이 좋았던 거야. 걔가 똑 부러지고 배려심이 있어서 좋았던 거지.”
나는 은원이 장미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사람을 볼 때 은원과 같은 방식으로는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은원처럼 좋아했다고 한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은원이 장미를 생각하며 하는 말은 어쩐지 장미가 내게 했던 말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장미가 내게 했던 말의 의도를 되짚어본다. 장미가 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저 내가 장미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이었다. 그건 장미 나름의 애정표현이었다. 그 말을 하는 데에 있어 내 가정환경 같은 건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꼬여서 받아들였을까 싶다. 나는 그제야 의문이 풀려서 얼떨떨한 얼굴로 은원을 바라보았다.
비록 짧은 시간 은원을 보았지만, 은원은 장미와는 다른 장점을 갖고 있었다. 굳이 장미의 장점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은원은 친절하고 이타적이며 총명하다. 나는 은원의 못돼먹은 부모나 집 나간 여동생과는 관계없이, 그 상황에서도 타인을 챙기려는 은원의 자애심에 감탄한다.
“가끔 그런 생각도 했어. 장미였다면 은혜를 떠나지 않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내가 아니라 장미였다면, 은혜가 어딜 가든 잡아 왔을 텐데. 걔는 그런 거 진짜 잘했을 텐데.”
“그런 거라면 난 이은원 너처럼 살고 싶은데.”
진심이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은원이었다면 진작에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에둘러서 경마장에 가지 말라고 얘기하거나, 함께 놀러 가자고 얘기하거나, 싸움을 말리거나 해서 우리 집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불과 하루 전의 나는 은원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은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은원의 재력만을 부러워했다. 어쩌면 나는 다른 누구보다 돈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보다 가난을 혐오하느라 타인의 장점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봤던 은원은 용기 있고 선했다. 나는 은원을 더 알아갈 수 없는 게 슬프기까지 했다. 은원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나도 이걸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장미가 나를 좋아하고 은원이 장미를 좋아했듯이, 나도 은원을 더 깊이 좋아했으면 좋았을 텐데.
“뭐야, 정말. 너무 띄워주지 마.”
“진짜야.”
나는 은원이 내 말에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아는 애라서 좋았다.
도착한 강릉은 내 예상보다도 관광지였다. 막연하게도 도착하자마자 파란 바다가 반겨줄 줄 알았는데, 서울에도 있는 체인 브랜드들이 많았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본 맛집 중에 가까운 곳에 들렀다. 메뉴는 꼬막 비빔밥이었다. 걔는 조금밖에 먹지 못했지만 나는 이런 게 처음이라 위장에 넌덜머리가 나도록 먹었다. 다음에 갈 곳도 생각보다 쉽게 정해졌다.
여행을 가면 싸운다던데 우리는 예외였다. 둘 다 여행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직접 가본 적은 당연히 없고, 그렇다고 간접적으로 남의 여행을 지켜본 적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여행 유튜브나 예능을 보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블로그나 인스타에서 몇몇 게시글을 찾아 은원의 앞에 들이밀며 여기 어떠냐는 질문을 했고 은원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가기 싫은데 좋다고 하는 거 아니고?”
“정말 아냐. 난 바다만 보면 돼. 여기 좋아 보인다.“
한 번 의견이 받아들여지자 그 다음번부터는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꼭 아이가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졸랐다. 나는 엄마에게는 그래 본 적 없다. 먹고 싶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는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줄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걸 말하면 엄마도 나도 상처받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만 할 뿐인 말을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들어줄 수 있는 투정이라는 건 정말로 달콤한 것이었다. 나는 들뜬 아이처럼 은원에게 하고 싶은 것을 늘어놓았다. 은원은 날 오냐오냐하며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뒤늦게서야 그 애가 자기 동생에게 해주지 못해서 후회했던 것들을 내게 대신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가 내 말을 다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랐고, 은원은 누군가의 말을 다 들어주고 싶다고 바랐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셈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아버지와 은원의 영혼이 바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그저 은원이 바라고 내가 바라서 아니었을까?
내가 고른 카페로 가서는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했다. 카페는 3층으로 지어져 무척 컸고, 서울에서는 보기 어렵게 좌석이 넓고 쾌적했다. 이곳의 바다를 형상화했다는 시그니처 메뉴를 하나씩 주문했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의 커피가 나왔다. 단 한 번도 먹기 전에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는데, 그걸 보고서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엄마랑도 같이 오고 싶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SNS에 일상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애들의 심리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곳을 좋아하는 사람과 오면 자랑하고 싶다. 세상에 알리고 싶다. 내가 행복한 모습을 이곳저곳에 자랑해서 내 결핍을 모르는 척하고 싶다. 나는 아빠도 있고, 아빠가 나와 함께 강릉까지 와주는 데다 귀여운 카페에서 커피를 같이 마셔준다는 것을 온 동네에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빠.”
주위에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쭉 은원을 아빠라고 불렀다. 그러자 나는 정말로 그가 은원 같기도 하고 우리 아빠 같기도 했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정한 아빠가 있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해본다. 눈앞의 이것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내가 계속해서 이 순간을 그려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은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은원의 눈에는 아무런 증오나 혐오가 보이지 않는다. 그게 못 견디게 기뻤다. 나는 어느 순간서부터는 아빠를 바라보는 것이 참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아빠가 나를 버리기 전부터 버려지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나 보다. 아빠는 나에게 쓰이는 돈을 종종 아깝다고 말했다. 나 같은 건 머리가 비어서 나중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싹수가 노랗다고 욕을 했다. 그러므로 나한테 쓰이는 돈이나 수고는 곧장 바로 아까운 것이 되었다. 아빠는 자신은 잃을 것이 없다고 말하며 나를 할머니 댁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고 언제는 보육원에 버리겠다고도 했다. 또 언제는 같이 농약을 마시고 세 식구가 함께 죽자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빠한테 평생 받을 상처는 다 받은 줄 알았다. 내가 아빠 앞에서 몇 번이고 날 버리지 말라고 울거나 잘못했다고 빌거나 한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로 화를 냈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빠는 나와 한 번도 소통한 적이 없다. 나는 아빠를 불가해한 재난쯤으로 생각했다. 아빠와의 연락이 끊겼을 때는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드디어 버려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데에 아무런 재능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관계를 끌고 나갈 바에는 아예 끊어버리는 게 낫다고 여겼다.
은혜와 절교한 이후 몇몇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도 무시했던 건 내가 그들과 대화할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자애들이 떠들 주제라고는 학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어제 본 남자 아이돌의 자체 콘텐츠, 얼마 전에 산 화장품의 지속력, 그리고 최근에 가족과 갔던 식당 등등이다. 나는 어떻게든 걔들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했으나, 정작 걔들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없어서 곧장 대화를 포기하고는 했다. 걔들이 원하는 정상적인 가정의 정상적인 나를 꾸며낼 재간이 없었다. 할 수 있기는 했어도 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카페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나도 그들에게 속해있었다. 물론 나만이 가짜였지만, 그걸 아는 건 나와 은원뿐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완전했다. 은원이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아빠와 함께 강릉 여행을 갔다는 추억이 생겼다는 것. 나도 그 기분을 알 수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다.
“우리도 나가서 걸을래?”
“그래, 그러자.”
테이블을 정리하고 해변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시야가 뿌옇고 흐렸다. 그러나 파도 소리만큼은 선명했다.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있자 한 커플이 내 앞에 핸드폰을 내밀었다.
“저희 한 번만 찍어주세요.
나는 은원을 돌아봤다. 은원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그들로부터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은원은 능청스러운 말투로 조금 더 웃어보라느니 가까이 붙어보라느니 말하며 커플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부녀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세요. 저희도 찍어드릴까요?”
“감사합니다.”
나는 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은원이 대답했다. 나는 커플들에게 내 핸드폰을 맡기고 바다를 배경으로 은원과 나란히 섰다. “팔짱 껴보세요!” 그 권유에 어정쩡하게 아빠의 팔뚝에 손을 얹었다. 사진을 확인해보니 흐린 배경에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잘 나온 사진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둘이서만 여행 오신 거예요?”
“네, 저만 휴가를 받아서요. 아이 엄마는 서울에 있고요.”
“어우, 부럽네요.”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할까. 잠시 잡담이 이어졌다. 걔는 저녁에 먹을 맛집 추천까지 받았다.
우리는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건 은원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기도 했고 아빠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 아빠가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됐는지는 늘 궁금했다. 아빠가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상처를 받은 적 있기에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됐는지 알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이 모두 형편없었던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아빠와 같이 바다를 간 적이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튜브에 올라탄 나를 아빠가 계속 밀어줬던 것 같다. 나를 정말로 괴롭게 하는 건 그런 기억들이다. 아빠 때문에 괴로웠던 기억이 아니라 아빠 덕분에 행복했던 기억들 말이다. 그럼 나는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어진다. 아빠를 마냥 괴물로 바라볼 수 없어지고 만다. 어린 시절 몇몇 개의 기억이 떠오르면 나는 심장이 꽉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면 아빠가 내 손을 잡는다.
“소선아. 슬슬 택시 타고 순두부 마을로 갈까? 거기 짬뽕 순두부가 유명하대. 지금 대기 걸어놓으면 도착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다나 봐.“
“그래, 가자.”
식당을 줄 서서 기다리는 건 처음이었다. 자리에 앉자 곧장 빨간색의 짬뽕이 나왔다. 이번에도 은원은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고서야 특가로 나온 호텔을 찾아보았다. 운 좋게도 중고 거래를 통해 반값으로 호텔 숙박권을 살 수 있었다.
“여기 어때?”
“난 좋은데. 괜찮겠어?”
“안 될 건 또 뭐야.”
호텔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잘 닦인 도로에 20층이 넘는 호텔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허리를 꺾을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꼭대기가 보일 정도였다. 무엇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런 건물은 서울에서도 종종 보았지만, 이 중에 내가 머물 곳이 있다는 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개중에 그나마 싼 곳을 골랐음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여길 무슨 정신으로 예약했는지 모르겠어. 1박에 15만 원이나 되는데. 평소라면 절대 안 할 짓이야.”
은원은 내가 돈 얘기할 때 입을 열어봤자 내 화를 돋울 뿐이라는 사실을 학습했는지 입을 꼭 다물었다.
실은 이곳까지 오는 내내 15만 원이나 사용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지만,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휘황찬란한 조명과 거대한 조각상을 보자 여길 예약하길 잘했다며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꾸었다. 탁 트인 천장에 가슴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와, 여기 좋다.”
“미쳤어.”
나보다 호텔을 많이 다녀봤을 은원조차 감탄했을 정도니 알만했다. 15만 원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잘 수 있다면 대체 20만 원, 50만 원, 100만 원짜리 방은 어떨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직원들은 하나 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긋나긋한 음정으로 말했다. 집 근처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이었다. 은원은 카드로 된 키를 챙기며 어메니티에 치약과 칫솔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물어봤다. 나는 어메니티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나머지 기가 죽어 은원의 한 걸음 뒤에서 체크인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방 내부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여기가 즐거운 우리 집이구나.”
체크인을 마치고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카드키를 대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머물 곳은 22층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와 함께 내 기분까지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낡은 금속 열쇠가 아니라 카드키, 반지하가 아니라 22층. 마치 거지가 왕자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만은 제대로 왕자로 살아보겠노라 다짐했다.
복도까지만 해도 들렸던 다른 투숙객들의 목소리가 문을 닫자 완전히 들리지 않았다. 방음까지 완벽했다. 이런 고요함을 경험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방의 내부였다.
“치, 침대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 옆에 침대가 있어.”
기억도 안 나는 아기 때 이후로 침대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오늘 이곳에서 잘 수 있는 게 꿈 같았다. 은원이 보고 있지 않았다면 침대 위로 올라가서 방방 뛰었을 것이다.
“나 좀 울어도 돼?”
“진짜?”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대답하기 창피해서 혼자 욕실에 들어갔다. 거긴 또 욕조가 있었다. 세면대조차 감지덕진데 욕조가 있을 줄은 또 몰랐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도 감을 잡지 못하고 욕실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욕조 바닥이 따뜻한 거나 화장실에 비데가 있는 거나 충격적이었다. 얼음장 같은 바닥에서 빠르게 옷을 벗고 덜덜 떨면서 몸만 겨우 적시는 게 씻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샤워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애들이 있었구나. 이런 곳에서 샤워할 수 있다면 나도 샤워가 좋았다. 나는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나도 늦지만 깨달았다.
“나 먼저 씻을게!”
그렇게 말하고는 욕조에 물을 채웠다. 욕조에 물을 받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5분이면 채워질 것 같았던 욕조는 20분이 지나서야 들어갈 정도로 물이 찼다. 이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런 삶이 있구나. 이런 삶이……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나만 누리지 못하는 걸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좋은 데에 있으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번 돈으로 누리고 있는 주제에 엄마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속상했다. 엄마와 통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엄마도 이런 걸 겪어본 적 있을까. 적어도 겪은 지 무진장 오래됐을 텐데. 나중에 꼭 엄마랑 같이 와야지.
한겨울 밤의 꿈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김소선 너 왜 이러냐. 너 지금 호강하잖아. 행복한 건데 왜 울고 그래. 너 바보야? 지금을 즐겨. 하지만 이게 내일이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너무 슬펐다. 누군가는 이걸 계속해서 누릴 텐데 나는 딱 하루 즐기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게 비참했다.
따뜻한 물에 코까지 담그고 바닥을 바라봤다. 하얀 욕조 바닥에 내가 내뱉는 공기 방울이 닿을 듯 가까워지다가 이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정말로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 늦긴 했지만 나도 이걸 경험했다. 나도 이런 인생에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비참함과 희열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면 좋을지 몰라 얼굴을 물에 담가버린다. 나는 온몸이 푹 익어서 현기증이 날 때까지 있었다.
“너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어. 하도 안 나와서.”
“야, 내가 그 농담 못 받는 거 알잖아.”
은원이 킬킬거렸다.
“내가 얼마나 있었는데?”
“2시간.”
“와, 그 정도로 지난 줄 몰랐어.”
“진짜 좋았나 보네.”
“응.”
정말로 좋았다. 인생에 이런 순간이 언제 있을까 싶게 좋았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 공간이다. 드넓은 서울에는 내가 그리워할 공간 하나 없다. 이런 날들만 계속된다면 인생이 살아볼 만하겠다고 느꼈다. 그랬더니 또 은원의 죽음과 장례식이 생각나 슬퍼졌다. 나는 어쩌면 계속 맛볼 수도 있겠지만 은원은 이게 끝일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은원을 바라본다.
“너 장미한테 연락해봐.”
“관둘래, 죽어서 연락하는 거 징그럽댔잖아. 네 말 생각해보니까 틀린 게 없더라.”
“아냐, 그때는 내가 실언했어. 장미도 너한테 좋아한다는 얘기 들으면 기뻐할 거야. 난 네가 날 좋아 해줬다고 하면 기분 좋을 것 같은데.”
“난 너도 좋아해, 아니, 그런 뜻 아니라.”
“알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때맞추어 핸드폰이 진동한다. 전화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진장미였다. 기막힌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