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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Sep 26. 2022

퇴사준비생의 일기 1.

퇴사 권유


나는 10년차 회사원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포함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밥값은 해야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질 연차가 된 것이다.


언젠간 명예퇴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러운 퇴직 사례들이 그렇듯, 빨리 나가는 대신 돈을 많이 얹어준다고 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며 미련 없이 사표를 낼 생각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회사는 내 사회적 가치가 하향곡선을 그릴때가 되어서야 퇴직자 명단에 올려줄 것이 분명한데, 막연히 그때쯤이면 자산을 꽤 일궈놓았을 것이라 믿었다.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해 봐."


실수로 고객에게 수수료 3천 원을 받지 않아 전화씨름을 하다 온 날이었다. 고작 3천 원을 쿨하게 메꾸지 못하는 내 모습을 한심하게 보는 주변 태도에 더 속이 상해 버스정류장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 날.


마침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하원한다며 속상한 티를 낸 날이기도 했다.


"자기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쓸데 없는 대상과 시간에 너무 많이 그걸 쏟아붇고 있는 것 같아. 스트레스 받는 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커리어가 쌓이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아이와 보낼 시간도 없잖아. 체력이 달리니 부부싸움도 잦아지고. 이렇게 평생 일만 하다 죽기 싫지 않아?"






일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누리는 대출, 복지혜택, 건강보험, 월급과 상여금 속에서 나는 발목에 쇠사슬을 묶어 키운 아기 코끼리처럼 학습된 무기력의 길을 가고 있었던 걸까.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에 익숙해져가며, 반복되는 불편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고객의 무례한 표현과 요구, 상사의 저열한 농담, 근무시간을 초과하게끔 만드는 업무량은 당연하게 넘겨야 했고, 숨가쁜 업무에 과호흡 증상이 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달랐을까.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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