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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Oct 01. 2022

퇴사 준비생의 일기 6.

고통에 내성이 생기면    


개구리 냄비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갔다.



#1.


두 달의 밤 11시 퇴근에 이은 한 달의 새벽 2시 퇴근.


20대의 나는 젊었고, 건강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슬리퍼를 신기엔 아직 눈치가 보이던 시절, 새벽까지 구두를 신고 일하다 보니 버티다 못한 관절이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느 때와 같던 퇴근길, 갑자기 계단을 오를 수가 없었다.


무릎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없었다면 오밤중에 가족들을 깨웠어야 했을 것이다.


며칠간 조심한 끝에 무릎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원래의  상태로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구두를 신고 일했다.






#2.


인원이 모자라 주말 새벽 출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새벽 6시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하는데,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새벽부터 아버지를 깨워 고속도로를 달렸다.


하루는 비가 왔다.


그날 아버지는 운전 중 내비게이션 경로 취소를 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차의 브레이크를 적시에 밟지 못했다.


차는 도로를 빙글빙글 돌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멈추었다. 조금 더 심하게 박았거나, 가드레일 밖으로 튕겨나갔다면 목숨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는 폐차되었다.


부러진 곳은 없었어도 후유증으로 온몸이 아팠고, 무릎을 세게 부딪혀 더는 하이힐을 신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날 출근을 했다.






#3.


우웩- 웩-


입덧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었다.


화장실까지 기어가 간신히 씻고, 울면서 출근. 옆자리 직원 옷에서 나는 식당 냄새에 오후엔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초기 임산부를 위한 단축근무 제도가 있었지만, 신청은 할 수 없었다. 단축근무를 쓰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고스란히 누군가의 부담이 되었다. 

 

가뜩이나 늦은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더 늦게 만들고 혼자 일찍 퇴근을 한다는 건, 몇 사람 없는 부서에서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입덧 약을 먹으며 버티다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어른이라면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만두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우위라고 여겼다.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은 지나고 나면 익숙해졌고, 점점 더 끓는 냄비 속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솔직히 여전히 두렵다. 회사를 벗어난다는 것이.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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