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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별 Nov 23. 2022

퇴사 준비생의 일기 20.

소개팅 까인 여자


15분 일찍 계약장소에 도착했다.


화려한 건물의 외관과 다르게 썰렁하고 낡은 내부,

좁은 방 안에서 고시원 양도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3500만 원이라는 권리금을 네고해 달라고 하자

상대편과 다시 얘기 후 나타난 중개사 아저씨는

빨리 양수하는 조건으로 3200까지 조정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조건을 수락하며 1달 뒤 잔금을 하기로 했고,

그렇게 모두가 한 계약 테이블로 모여 앉아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양도인이 9일 안에 잔금을 해야 한다며

9일 후면 자신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니

그 조건을 수락해야 양도하겠다는 새로운 얘길 꺼냈다.


소방교육을 이수하고, 임대차 계약을 하고,

잔금까지 다 하는 데에 남은 기간이 일주일 남짓이라니.


촉박하게 진행하는 것을 극혐 하는 남편은

정확한 입실자 명부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결국, 계약을 파투 시켰다.






사실은 나도 확신이 없었다.


대출이 40억이나 있는 이 건물에

보증금 보호도 못 받는 임차인으로 들어가야 했고


9일이면 날림으로 양도를 해도

상대가 숨기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단 몇 줄로 요약되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2시간 넘게 이어진 협상의 결론이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아이까지 데리고

긴장하며 서두른 결과 치고는 너무 허무해


그날 몇 시간 내내 나는 혼이 나가 있었는데

넋 나간 표정을 보던 남편이 말했다.


"자기, 지금 표정이 소개팅 까인 여자 같아."


인사이트 무엇?

그래, 나는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퇴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21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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