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감감무 Jul 17. 2023

자꾸만 투명해져요 - 권혁일

5억 년 버튼이라는 유명한 만화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돈을 주는데 대신 현실과 분리된 어느 공간에서 5억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설정이다. 까마득한 시간을 보내는 그곳의 나와 현실의 나는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다. 현실의 나는 그저 버튼을 누르고 뗐더니 현금을 받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곳의 나와 이곳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순간부터 두 명의 다른 존재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쌓아온 기억으로 만들어져 현실에서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다. 그곳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다. 기억은 나를 구성한다

그런 기억들이 모두 아름다웠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다. 어느 유명 의사이자 작가의 블로그명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이란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를 유지하고 있다.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면 참 좋겠지만 삶은 치트키를 쓰고 진행하는 게임이 아니다. 차근차근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을 해야 하는 성장형 RPG 게임과 같다. 그래서 기억에는 자주 아쉬움이 담겨있고 때로는 고통이 담겨있다.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면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혼자서 힘들다면 손을 잡고 걸어나가면 된다. 이끌려 잡힐 때도 있고 언젠가는 내가 먼저 내밀 때도 있다.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세연 덕분에 트라우마를 극복한 평호와 결국은 그 복도에서 평호에게 말을 걸게 된 세연처럼.

작가들마다 작품에서 내비치는 고유의 정서가 있다. 권혁일의 정서는 연민인 것 같다. 아파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선물 같은 혹은 선물을 선사하려는 착한 마음이다. 앞으로 구축해나갈 그의 작품세계가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낮의 시선 - 이승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