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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감감무 Nov 24. 2023

사랑에 대한 단상 1~3

1.

방금 전 출근하는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세 자리가 비어서 가운데에 앉았다. 앉고 나서 보니 아직 서있던 한 커플과 눈이 마주쳐서 한쪽으로 비켜 앉았다. 까랑까랑한 발성으로 감사하다 말하는 여자 쪽은 신나서 남자친구의 손을 끌어 두 자리에 함께 앉았다. 내가 책 읽고 있는 걸 힐끔 보더니 남자친구와 서로 가장 좋아하는 책, 영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까랑까랑한 두 커플의 목소리로 열차는 가득 채워졌다. 하필 목소리 큰 둘이 만난 게 신기했다. 닮은 사람끼리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더욱 닮아간다. 날을 잡아 서로 좋아하는 작품을 몰아보자는 말을 하며 서로 신나하는 둘의 모습은 내게 영화적으로 보였다. 지금의 내게 사랑은 현실이 아니다. 그들의 현실은 사랑이다. 그들은 영화를 살아간다.


2.

그러나 영화라고 행복한 장면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벽 위에 주성치와 주인은 거리를 둔 채 마주하고 말없이 서있다. 둘 사이에는 조용하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른다. 서유기 선리기연의 막바지 장면이다. 이런 장면은 현실에서도 흔하게 보이곤 한다. 운동이 끝나고 땀에 전 채 집에 가고 있었다. 오르막이라 투덜거리며 올라가는데 집 앞 가로등에 오늘의 주성치와 주인이 조명을 받으며 말없이 서있었다.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선 눈을 흘기고 있는 여자와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는 남자의 한 쌍이었다. 오늘의 갈등이 누구의 잘못인지는 지나가는 개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내 경험상 여자가 화가 났는데도 만나주거나 집에 안 가고 있다면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손오공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성치와 주인이 뜨겁게 포옹하며 그 둘만의 해피엔딩을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화도 애정이 있어서 내는 거였다. 화를 낼 때가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때 일 수도 있다. 둘의 사랑은 화로써 더욱 제련될 것이다.


3.

지하철 개찰구 앞.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 커플이 그 앞에서 똬리를 트고 있다. 앳돼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삶 어느 하나 익숙한 게 없을 나이이건만 서로에게만은 익숙해 보인다. 불콰한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을 바라보는 나를 남자 쪽에서 의식한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는다.

옆 집 대문 앞에 한 커플이 앉아있다.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지나가는 한 명인 나는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신기해 그들을 바라본다. 내 시선을 의식한 듯 잠깐 눈이 마주치나 얼마 가진 않는다. 그들의 초점은 다시 서로를 담는다. 다른 건 잠깐 흘깃 볼뿐 그들의 눈은 금세 자신의 연인만을 담는다. 돌아갈 곳이 있는 눈은 다른 곳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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