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 문답>
사슴벌레 문답은 한계를 초월한다. 사슴벌레는 어떻게든 어디로든 들어올 수 있다. ‘든’ 고작 이 한 글자 앞에 어느 질문이든 무력해진다.
<무구>
무구한 땅을 무구하지 않은 인간들이 사고 판다고 까분다. 득실을 보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얼척없는.
<깜빡이>
접근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이의 선량함. 신호를 받는 이의 무신경함.
<기억의 왈츠>
내가 나를 잊고 지내게 만들어버린 세월의 잔혹. 대항할 수는 없으나 붙잡을 수 있게나마 해주는 것은 기억이었다.
기억은 왜 이리 고통스러울까. 후회되는 것을 잊지 못해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그리워서, 나를 나이게 하는 것들을 잊고 있어서 등의 사람 수만큼의 사연이 있다. 미래는 안 그런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불확실한 미래는 불확실해서 두렵고 확실한 미래는 오지 않았으면 해서 두렵다. 이런 혼돈에 현재의 나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뒤집어진 채 방 한가운데에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들어와 살아내는 내가 있다.
너무 길어질까 봐 그냥 생략한 <실버들 천만사>는 특히나 좋았다. <사슴벌레 문답>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