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연인이 외계인이나 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너무 달라서, 너무 대단해서, 너무 멋져서 등의 이유로 말이다. 권혁일의 상상력은 이것이 실제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일상적 인물이 마주하는 비일상적, 비현실적 상황과 인물을 통해 전개하는 로맨스 단편집 <첫사랑의 침공>이 바로 그것이다.
표제작 <첫사랑의 침공>은 전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잔잔했던 일상에 침공하듯 찾아와 온 마음을 흔들어놓고 떠난 첫사랑의 그녀는 정체가 무엇이든 아련한 첫사랑의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세상의 모든 노랑>은 ‘당신은 나를 완성 시킨다’라는 영화의 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사랑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둘이 만나 서로를 완성시키려는 의지나 열망이다. 이별을 맞이한다 해도 ‘이별은 어찌 보면 연인 사이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라는 작가의 말에서 사랑과 이별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마냥 쓰라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앞의 두 편은 평범했던 일상에 찾아오는 비일상적인 인물과의 사랑, 이별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뒤의 두 편은 세상에 그들만 남겨놓은 채 보여주는 사랑의 이야기다.
<광화문 삼거리에서 북극을 가려면>의 세상은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 종말일 뿐 서현의 정서는 진즉에 종말의 상태에 있었다. 어차피 나를 사랑해 줄 존재는 세상에 없다는 짙은 고독이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찾아올 것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때를 기다려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SF의 향이 짙은 로맨스다.
마지막 단편인 <하와이안 오징어볶음>의 두 주인공 정훈과 민정은 작품 내 유일한 부부 커플이다. 간첩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위장결혼한 민정은 결국에는 정훈이야말로 자기가 바라던 삶임을 깨닫는다. 끝이 안 보일 것만 같은 역경도 그 둘은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부부의 사랑의 모양은 이런 것인가 짐작해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권혁일의 작품들은 특유의 상상력이 매번 돋보인다. 그의 상상력은 무거울 수 있는 소재도 경쾌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세상과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랑의 힘이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드는 요즘이었다. 그런 때에 다시금 사랑을 믿게끔 해준 작품이었다.